갤러리브레송
2017년 7월 5일 ~ 2017년 7월 14일
ⓒ 갤러리브레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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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산은 욕망의 산이며 자본주의의 추상공간이다. 반면 하얀 길은 욕망에 시달리고 지쳐서 돌아가는 죽음의 길이며 텅 빈 공간이다. 검은 산은 하늘로 올라가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 무더기이며, 하얀 길은 하늘을 쳐다보고 땅으로 돌아가는 텅 빈 길이다. 검은 산은 인간과 함께 오랫동안 존재했지만, 근대사회의 핵심 장소로서 인간에게 욕망의 공간이 되었다. 시커먼 석탄 무더기는 근대사회의 생존을 위한 필수품이 되었고, 오랫동안 자본주의 사회의 부의 상징이기도 하였다. 인간 사회의 욕망을 상징하는 산은 거칠고 검으며 그 욕망을 추구하다가 지쳐서 돌아가고야 마는 길은 적막하고 하얗다.
강원도 태백과 철암 근처 근방에 많이 흩어져 있는 검은 산. 겹겹이 쌓인 욕망처럼 검은 산은 하늘과 땅 사이에 첩첩이 있다. 그 욕망의 산에서 퇴출당해 빈손으로 돌아오는 하얀 죽음의 길은 욕망 사이에서 험하고 좁게 이어지고 있다. 검은 산은 욕망을 가진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하얀 길은 욕망을 찾아 왔던 사람들을 다시 빈손으로 세상에 돌려보낸다.
검은 산 사이로 눈 덮힌 하얀 길을 따라 고모부를 만나러 가던 젊은 시절. 기차를 타고 가던 그 시절의 검은 산 사이로 난 하얀 눈길은 동화처럼 빛났다. 그때의 검은 산과 하얀 길은 분주하고 현란한 저녁과 그 다음날 적막하고 쓸쓸한 아침과 함께 황홀함과 쓸쓸함으로 오랫동안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검은 강물이 흐르는 차창가의 풍경과 터널을 지나면 그 검은 강물 위에 내리던 하얀 눈. 밤이면 현란하던 황지(태백의 옛 이름)의 네온사인. 그리고 노래 부르면서 몰려다니던 사람들. 아무도 일어나지 않아 늦게까지 조용하던 아침. 젊은 시절의 검은 산과 하얀 길의 기억은 나이 들어서 다시 그 길을 찾아들게 만들고 그 때의 기억 속의 검은 산과 하얀 길을 눈앞에 남기고 싶게 한다.
그때 내가 본 것은 욕망의 검은 산을 통해 투사된 자본주의 추상공간이다. 태백은 거대한 추상공간이었다. 자본주의 추상공간은 인간의 활동을 노동으로 추상화시키고, 임금으로 대치한다. 추상공간 속에서 인간들은 욕망을 관리당하고, 결국 욕망의 노예가 된다. 자본주의 검은 산이 높아질수록, 인간들은 더 낮은 곳에 위치하게 된다.
이 사진들은 겨울이면 눈 속에서 더 검어지는 태백의 탄광을 찍은 것이다. 결국 마지막에는 죽음의 길로 내몰리게 되는 탄광촌의 노동을 잘 알면서도 삶을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욕망의 검은 산을 찾아가는 인간들의 흔적을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흔적이 각인된 공간은 사회적 공간이며 그 풍경은 ‘사회적 풍경’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그 사회적 공간에 서면 거기엔 욕망의 검은 산을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사람들은 없고 죽음으로 돌아간 하얀 길만 남았다. 그러한 삶의 장소는 사회적 풍경으로 지나간 시간을 우리에게 고스라니 보여주고 있다. 공간은 생산되고 다시 그 공간은 새로운 공간을 생산하기 위해서 파괴된다. 창조적 파괴와 파괴적 창조의 굴레바퀴 속에서 오늘도 욕망의 산은 새로운 욕망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문득문득 고향처럼 나를 오라고 불렀던 태백의 그 검은 산들을 찾아 다녔던 몇 년의 겨울....어린 시절부터 가슴에 담아두었던 탄광촌 풍경을 ‘사회적 풍경’이란 형식으로 되살리는 데에 도움을 준 박병문, 곽윤섭 그리고 김남진 세 분께 감사드린다.
출처 : 갤러리브레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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