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드서울
2015년 9월 10일 ~ 2015년 9월 24일
김시혜 개인전 : 산수유람
나는 산이나 꽃, 바다와 같은 자연이미지가 붙어 있는 병들을 수집한 후에, 그 속에 있는 자연의 이미지를 확장하여 그리는 작업을 해 오고 있다. 이 것은 판매를 목적으로 생산된 일회용 용기라는 하찮은 물건에서 발견한, 전략적으로 가공된 이상향에 대한 이미지이다.
어느 오후 카페에 앉아 마시던 ‘애리조나 그린 티’ -붉은 매화꽃이 디자인되어 있는- 을 보면서 문득 이런 질문을 하였다. “내가 실제로 붉은 매화꽃을 본 적이 있었던가?” 생각해 보니 한 번도 없었다. 아파트 분리 수거함은 버려진 플라스틱 생수병들로 가득 차 있다. 그 용기들을 유심히 보았다. 아니 그 것들에 붙어 있는 산을 보았다. 거기에는 백두산, 지리산, 한라산, 그리고 이름도 몰랐던 방방곡곡의 산이 있었다. 그렇게 만난 산들은 매우 작지만 꽤 멋졌다. 그 뿐 아니라 이슬에 맺힌 하늘이며, 오색빛 무지개도 볼 수 있었다. 한번 쓰고 버려지는 작은 용기에 거대하고 아름다운 자연의 이미지가 붙어있는 것이 흥미로웠다. 나에게 자연은 이렇게 발견되었다.
근대화, 산업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삶의 환경은 급격하게 변했고, 거대한 도시 속에 살게 된 사람들의 생활패턴은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제한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자연은 특별히 시간을 내어 찾아 가야하는 곳이 되었다. 동시대 사람들은 꽃이나 산, 바다와 같은 자연을 직접 경험하기 보다는 도시에 넘쳐나는 시각 이미지, 사고 팔리는 상품들을 통하여 더 많이 접하는 듯 하다. 작업실에 앉아 그 간 수집해 놓은 병들만으로도 전국의 산을 유람하고, 알프스나 히말라야도 다녀올 수 있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자연을 순수하고 아름다운 자연, 그 상태로 받아들이지 만은 않는다. 감각적인 컬러에 미끈하게 빠진 병, 그 안에 담긴 이미지와 함께 ‘수 만년 전의 산맥에서 형성된’, ‘미네랄이 풍부한’, ‘천연’ 광천수 와 같은 문구를 보면 어떤 거대한 전략이 느껴지기까지 한다. 이는 숨가쁜 도시와 맞물려 작동하는 현대의 소비문화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을 것이다. 자연의 이미지는 생산되고 소비된다. 그리고 금세 버려진다. 사람들은 물리적 제약 속에서, 어쩌면 전략적으로 가공된 자연의 이미지를 접하면서도 막연하게나마 그 것이 ‘깨끗하고’, ‘좋은’, 어떤 ‘멋진 것’ 이라는 느낌을 공유하고 있는 듯 하다. 동양에서는 전통적으로 정신수양의 공간이었다는 것을 굳이 이야기 필요도 없이, 자연은 과거나 현재에나 여전히 동경의 대상인 듯 하다.
영은 릴레이 전시에는 그 동안 모아왔던 페트와 병 등을 전시장에 내려놓았다. 항상 작업실 한 쪽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들이다. 작업실에서 내가 종종 그러듯이 산수유람 한 번 권해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이렇게 나에게 발견된 자연의 일부가 본래에는 어떤 모습이었을까를 상상해 보기도 했다. 이러한 작업를 통하여 나와 같은 세대가 자연을 경험하고 소비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였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글로벌화된 서울의 소비문화에 길들여진 나 자신을 돌아보는 작업이기도 하다.
출처 - 갤러리팔레드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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