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프로젝트 서울
2025년 3월 18일 ~ 2025년 3월 29일
「사랑하는 세계를 위하여」
소녀들의 고유한 세계는 때로 전혀 다른 방식으로 곡해되고 다시 만들어진다. 순수와 사랑을 기대하는 소녀의 전형, 혹은 파괴하는 기계와 펑크라는 전혀 반대로 전형화된 장르들. ‘-core(코어)’는 인터넷미학, 패션 등 시각적인 양식(style)과 관련한 접미사로서 이미 서브컬처적 맥락을 내포하고 있다. 소수에게만 통용되는 코드는 아니지만 최소한 심미적 취향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기꺼이 향유하기 위한 자발성이 요구되는 셈이다. 《lovecore》의 두 작가, 김연우와 한고은은 아니메(Anime, 일본 애니메이션)의 조형, 혹은 세계관을 적극적으로 변주하며 각자의 기호로 사랑을 다시 말하고자 한다. 여기서 소녀는 그 자체로 세계의 주인일 수 있을까?
김연우는 미소녀 캐릭터와 이미지를 파편화, 콜라주하여 디지털 물성을 캔버스에서 재현한다. 서브컬처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해 그 주변부의 (무분별한) 인터넷 짤방, 공포와 같은 문화적 코드를 다뤘던 작가는 이제 사이버펑크의 세계관을 직접적으로 끌고 들어온다. 작가가 적극적으로 참조하는 대상인 사이버펑크 아니메의 디스토피아 세계관과 저화질 이미지는 공통분모를 갖는다. 새롭게 도래할 하이테크 기술시대에 대한 기대와 그와는 상반되게 나타나는 비인간적 고독, 여러 차례의 복제와 시간의 흐름을 거쳐 열화된 디지털 이미지의 재현은 상실과 좌절의 경험을 반영한다. 한편, 파괴의 주체이자 대상인 미소녀의 형상은 작가가 사랑하는 세계를 (거의) 그대로 보여준다. <아득한 내일>(2024), <껍질 소녀>(2024) 등에서 나타나는 헤지고 분해된 것 같은 기계 신체들의 미래는 낙관적인 것이기보다는 파괴와 해체를 상정한 결과로서 보여진다. 이미 익숙한 세계관과 반복적인 설정, 화면의 픽셀화와 이질적인 병치는 보는 이로 하여금 기시감을 불러 일으키면서도 어딘가 불안한 정서를 포착하게 한다. 작업의 동기를 “공간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욕망”으로 설명하는 작가에게, ‘사랑하는 세계’란 자신의 기호를 구성하는 것으로서 ‘나’의 세계와 같다.
한고은은 동화적 색채로 이상적인 미소녀의 세계를 다시 만든다. 작가가 창조한 세계-화면 안에서 흐리게 겹치는 형상들은 서로가 침범하고, 서로를 필요로 하며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몇몇 전작에서 드러난 염세적인 터치에서 엿볼 수 있었던 경계, 즉 타자화 내지 욕망의 대상이라는 미소녀 미학의 일반적 이해를 벗어나기 위한 방법으로서 파괴와 전복은, 이제 파괴로부터의 보호조치이자 안전하고 완벽한 유토피아로서 자신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랑하고 싶은 작은 세계로 다시 탄생한다. 근작인 <올리브색 강아지와 나방은 함께 뛰어논다>(2025), <나랑 놀자>(2024)에서 나타나는 불분명한 형태의 과잉은 생명, 관계, 더 나아가 이상세계의 은유가 된다. 화면의 소녀와 풀잎, 거미 같은 소재는 일견 귀엽고 사랑스러워 보이지만 양가적인 성질이 공존한다. 이렇게 교차하는 지점은 작가가 그리는 이상세계가 아름다운 것으로만 구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그럼에도 사랑하고 싶은 마음(<전우주적 마음압축팩>(2024))을 담은 화면은 분명 안전하고 완전무결한 비현실의 공간이다. 실제와 한발짝 떨어진 꿈의 세계에 와서야 비로소, 거대한 세상의 일부로서 “사랑하기에 존재”하는, 사랑으로 연결된 세계는 가능해진다.
다시 ‘-코어’로 돌아와서, 김연우, 한고은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브컬처에 대한 관심이 선행하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에는 언제나 오해의 소지가 있다. 미소녀로 대표되는 아니메 코어(Anime-core)에는 미소녀 ‘캐릭터’라는 이미지가 공유하는 시각적 환상과 욕망이 존재한다. 더 이상 단일한 기호가 아닌 미소녀의 의미를 읽어내는 것은 ‘어떻게 볼 것인가’에 달려 있다. 그러나 두 작가가 그리는 세계의 존재조건은 사랑이다. ‘Lovecore’라는 제목이 가지는 낭만적이고 로맨틱한 정서 위에서 파괴와 창조라는, 정 반대를 향하는 듯한 이 기묘한 열정은 전시장 안에서 교차되며 기형적인 균형을 이룬다. 따라서 우리는 화면에서 이상적인 비현실을, 이미지의 욕망을 읽을 수 있게 됐다. ‘사랑하는 세계’, ‘사랑하고 싶은 세계’의 반영. 《Lovecore》는 공통의 정서로 함께 있기를 바라는 타인을 향한 ‘말하기’이자 이상세계의 창조다.
글 손하늘
참여작가: 김연우, 한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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