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창동레지던시
2025년 10월 11일 ~ 2025년 11월 1일
옥선이자 혜림이며 인선
전그륜(독립 큐레이터)
전시장 풍경이 낯설다. 정연하게 걸린 큰 초상을 예상했지만 흰 벽에는 크기도 질감도 다른 사진이 뒤섞여 있다. 가까이 보면 사적인 아카이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시의 제목인 옥선, 혜림, 인선은 누구이며 작가는 어째서 아카이브를 가져왔을까. 어지러운 사진들, 수많은 얼굴은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2019년 이후 김옥선은 근현대를 살아간 여성의 삶에 관심을 보여왔다. 이번 전시는 1960-70년대 독일로 간 재독간호사를 촬영한 <베를린 초상>, 1920년대 하와이 노동 이민자를 위한 ‘사진 신부’에서 출발한 <신부들, 사라>와 맥을 같이 한다. 김옥선, 문혜림, 김인선은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 전후에 태어난 여성으로 작가는 이들의 생애를 경유해 근현대 여성의 역사를 되살린다.
작가와 이름이 같아 관심을 갖게 된 옥선은 제 7, 9, 12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1975년에는 유신체제 하에 박정희를 독재자로 비판하며 공민권을 박탈당한 바 있으며 정계에 입문하기 전 18세에는 지방에 모자원을, 20대에는 원산도와 장항에 학교를 설립하기도 했다. 옥선은 언제나 남자처럼 머리를 짧게 하고 정장을 말쑥하게 차려 입어서 “남장여자 정치인”으로 불리기도 했다. 혜림(본명 해리엇 페이 핀치백 문)은 미국인으로 1972년 문동환 목사와 결혼하여 서울로 이주하였다. 1970년대 남편과 함께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으며 1986년에는 동두천 기지촌 여성을 돌보는 ‘두레방’을 설립하였고 2022년 미국 자택에서 눈을 감았다. 혼외자로 태어난 인선은 1972년 22살에 독일로 이주한 재독간호사이다. 간호 활동을 하면서 이주민들이 자신의 문화대로 임종을 맞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노후자금 모아 2005년 호스피스 ‘동행’을 열었다.
김옥선은 이들에게서 기록되지 못한 역사를 읽어낸다. 그리고 그 역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아카이브를 전시장으로 불러온다. 이 자료는 세 명에게 요청하거나 작가가 조사한 것으로 김옥선은 이들의 삶에서 중요한 변곡점이거나 가장 활발히 활동했던 시기 등이 잘 드러나는 것을 선별했다. 그리고 작가는 이것을 전시장에서 뒤섞어 놓는다. 시기와 사진의 주인공 등 셋을 구분하는 카테고리를 만들지 않고 별도의 설명도 붙이지 않는다. 그래서 일부 정물이나 풍경은 그 주인을 전혀 알 수 없다. 이러한 방식은 초기작부터 근작까지 전시했던 《평평한 것들》(2023, 성곡미술관)과 닮아 있다. 김옥선은 당시 제작 시기, 연작 등을 기준으로 작업을 배치하지 않으며 작품 사이 위계를 없애고 모두 동등한 위치에 두었다. 옥선, 혜림, 인선은 서로 다른 나이, 배경, 사회적인 위치와 성과를 가지고 있지만 작가는 여기서 다시 한번 시간을 지우며 세 사람을 평평하게 둔다. 나란히 놓인 아카이브에는 각자의 특별함보다 ‘여성’, ‘공동체’ 그리고 그들이 맞선 사회적 곤경이 공명하며 떠오른다.
김옥선은 이 평평한 것들 사이 이공순, 문영미, 이수현을 함께 둔다. 공순은 옥선의 제자, 영미는 혜림의 딸, 수현은 인선의 연인으로 이들은 세 사람에게 돌봄을 받았으며 돌봄을 이어가고 있다. 공순은 아흔이 넘은 옥선을 돌보고 있고 영미는 혜림을 이어받아 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다. 수현은 인선과 40년째 함께하며 시니어 퀴어로 활동하고 있다. 작가는 옥선, 혜림, 인선만큼 이들에게도 무게를 둔다. 세 사람에게서 시작한 돌봄은 공순, 영미, 수현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공동체는 공동체를 낳고 돌봄은 돌봄을 낳는다. 이들은 이것을 증명한다.
세 사람 외에도 많은 여성이 여기 있다. 영미의 두 딸과 옥선, 혜림이 설립한 공동체를 이어 운영하는 여성들. 작가 자신과 어머니의 젋은 시절 사진도 작게 한구석 차지한다. 영상 작품 <oksun hyerim insun>(2025)에는 2000년대 초반에 촬영한 <Happy Together> 인터뷰와 퀴어퍼레이드 푸티지도 교차 편집된다. 이들은 모두 크고 작은 공동체를 이루며 서로를 사랑하고 각자가 맞은 사회적인 곤란을 이겨 나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개인적이고 미시적인 역사에서 시작한 작업은 이로써 보편적인 여성의 삶으로 확장된다. 김옥선은 전시의 제목에 쉼표를 넣지 않는다. 작은 공백이 낳는 평평함, 그 틈새에는 누구든 끼어들 수 있다. 차이와 깊이가 소멸된 납작한 세상에서 ‘옥선 혜림 인선’은 요동치며 미시사를 써 내려가는 수많은 여성이 된다. 서로를 지탱하며 살아가는 오늘의 이름, 옥선이자 혜림이며 인선이 된다.
참여작가: 김옥선
후원: 서울문화재단
* 아트바바에 등록된 모든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
운영시간
월요일 휴관
화요일 10:00 - 18:00
수요일 10:00 - 18:00
목요일 10:00 - 18:00
금요일 10:00 - 18:00
토요일 10:00 - 18:00
일요일 10:00 - 18:00
휴관: 월요일
모든 프로그램은 주최측의 사정으로 변경될 수 있으니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를 확인하시기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