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21
2026년 10월 30일 ~ 2026년 12월 12일
“모든 과정은 초에 켠 불빛을 마주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작업의 목적은 초의 외형을 묘사하는 데 있지 않다. 빛이 만들어내는 찰나의 상태와 온도를 담아내고자 하기에, 빛을 집요하게 바라보는 묵상의 과정이 그 자체로 중요하다. 이 응시의 시간은 나를 강렬하게 개개인의 삶과 죽음으로 이끌며, 무수히 많은 비통한 죽음으로부터 생의 고유함에 닿게 한다. 작업은 묵묵히 그 시간을 통과함으로써 만들어진다.”
— 김지영
P21은 김지영(b. 1987)의 개인전 《휘청이는 새벽》(Wavering Dawn)을 10월 30일부터 12월 12일까지 개최한다. 2024년 《밤의 목덜미를 물고》 이후 P21에서 2년 만에 선보이는 개인전으로, 2025년부터 2026년까지 제작한 신작 회화 연작 〈푸른 빛〉(Blue Glow) 9점과 관련 드로잉 22점을 비롯해 디지털 프린트, 파라핀 왁스 작업 등 총 35점을 소개한다. 이번 전시는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적 사건을 다룬 초기 〈파랑 연작〉(2016–2018)부터 불과 촛불을 통해 삶의 유한함을 탐구해 온 〈붉은 시간〉(2020– )에 이르기까지, 김지영의 작업을 관통해 온 삶과 죽음, 시간에 대한 사유가 새로운 회화적 언어로 확장되는 지점을 보여준다.
전시의 중심을 이루는 신작 〈푸른 빛〉은 촛불 아래쪽에서 관찰되는 푸른 불꽃에서 출발한다. 흔히 촛불을 노란빛이나 붉은빛으로 기억하지만, 불꽃은 연소 과정과 위치에 따라 서로 다른 색을 띤다. 밝은 노란 불꽃이 약 1,200°C에 이르는 데 비해, 연료와 산소가 반응하며 푸른빛을 내는 영역은 약 1,400°C에 도달하기도 한다. 김지영은 이 작고 희미하지만 뜨거운 푸른 불꽃이 대기와 만나 흔들리고, 심지를 따라 솟아오르다가 마침내 사그라드는 과정을 오랫동안 관찰해 왔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불꽃의 형태와 색, 미세한 움직임을 캔버스 위에 옮기는 과정에서 작가는 순간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현상을 물감의 층과 붓질의 흔적으로 붙잡는다. 멀리서 보면 단색의 색면 추상처럼 보이는 화면은 가까이 다가갈수록 서로 다른 색의 층위와 촘촘하게 축적된 붓질을 드러낸다. 추상적인 색면과 구체적인 대상의 재현 사이를 오가는 이러한 회화는 눈앞에서 사라지는 빛을 지속적인 물질의 형태로 남기는 시도이기도 하다.
김지영의 작품 세계에서 촛불은 인간의 삶과 시간의 흐름을 상징하는 중요한 모티프다. 하나의 심지를 따라 타오르며 점차 소진되는 초는 되돌릴 수 없이 흘러가는 시간과 삶의 유한함을 환기한다. 전시 제목 《휘청이는 새벽》 역시 이러한 시간의 감각과 맞닿아 있다. 노을의 붉은빛이 새벽의 푸름을 거쳐 아침으로 이어지듯, 삶은 멈추거나 되돌릴 수 없는 흐름 속에 놓여 있다. 작가는 그 이행의 순간을 온화하거나 평온한 풍경이 아닌, 끊임없이 흔들리고 불안정한 빛의 상태로 포착한다.
이번 신작에서 두드러지는 파랑은 김지영의 이전 작업과도 긴밀하게 연결된다.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제작한 〈파랑 연작〉에서 작가는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적 사건을 보도한 신문 이미지를 변형해 32점의 재난 풍경을 그렸다. 종이에 오일 파스텔로 그린 이 작업에서 파랑은 사건에 대한 즉각적인 감정적 반응을 넘어, 비극의 현실을 냉정하고 명료하게 바라보기 위한 색이었다. 이후 2020년부터 이어온 대표 연작 〈붉은 시간〉에서는 초와 불이 본격적인 회화의 관찰 대상으로 등장했다. 붉은색을 중심으로 전개된 이 연작이 불의 열기와 화염, 생명력을 환기했다면, 신작 〈푸른 빛〉은 같은 대상을 파란 불꽃을 통해 다시 응시하며 그 안에 내재한 불안과 소멸, 죽음의 감각에 한층 가까이 다가간다.
이러한 변화는 회화의 제작 방식에서도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김지영은 색의 순도를 유지하기 위해 서로 다른 색의 물감을 섞지 않고 사용하면서, 개별 색채의 물질성과 붓질의 흔적을 화면에 축적한다. 특히 〈붉은 시간〉에서 사용했던 녹색, 주황색, 적색 등을 밑색으로 깔고 그 위에 파랑을 중첩해 다층적인 색의 깊이를 만들어 낸다. 화면의 표면을 이루는 푸른빛 아래에 이전 연작의 색채가 남아 있는 셈이다. 이는 두 연작 사이의 연속성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시간의 축적과 변화라는 작업의 주제를 회화의 물질적 구조 안에 구현한다.
전시장 입구에 설치되는 사진 작품 〈청색 소음〉(Blue Noise, 2026)은 이번 전시의 출발점이자 제목 《휘청이는 새벽》을 짓게 된 계기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신작 회화 〈푸른 빛〉이 촛불의 움직임과 색채를 오랜 관찰과 붓질을 통해 화면에 옮긴 결과라면, 〈청색 소음〉은 전시의 출발점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단서가 된다. 전시는 〈푸른 빛〉 회화 9점과 〈푸른 빛을 위한 드로잉〉 22점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캔버스에 유채로 제작한 회화는 소형 작품부터 두 폭으로 구성된 작품, 가로 243.8cm에 이르는 대형 회화까지 다양한 규모로 선보인다. 종이에 유채로 그린 드로잉은 전시장에 낮게 설치되어 관람자가 화면 가까이에서 붓질과 색채의 미세한 차이를 살펴볼 수 있도록 한다. 파라핀 왁스로 제작한 〈이 짙은 어둠을 보라〉(2024) 3점이 소개되며, 회화를 중심으로 이어져 온 작가의 탐구를 서로 다른 매체로 확장해 보여준다.
전시 서문을 집필한 독립 큐레이터 최희승은 김지영의 푸른 빛이 멀리 있는 관념적 색채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과 일상에 가까이 존재하는 빛임을 강조한다. 김지영의 푸른 빛은 “호화롭거나 공포스럽지 않고 모호하거나 현학적이지 않는 저변의 빛”이다. 작가는 사라지는 불꽃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그 흔적을 화면에 쌓아 올림으로써, 익숙하기에 쉽게 지나치는 삶의 감각을 다시 마주하게 한다. 《휘청이는 새벽》은 이처럼 빛과 색채에 대한 지속적인 관찰을 통해 삶과 죽음이 맞닿아 있는 시간의 깊이를 조용하지만 집요하게 드러내는 전시다.
참여작가: 김지영
출처: p21
* 아트바바에 등록된 모든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
운영시간
월요일 휴관
화요일 11:00 - 18:00
수요일 11:00 - 18:00
목요일 11:00 - 18:00
금요일 11:00 - 18:00
토요일 12:00 - 18:00
일요일 휴관
휴관: 일요일, 월요일
모든 프로그램은 주최측의 사정으로 변경될 수 있으니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