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슬
2019년 1월 25일 ~ 2019년 3월 9일
작은 목소리로 찾아가는 감정의 균형
김지영 작가는 정사각형의 종이 위에 감정의 좌표를 그린다. 작가에게 정사각형 1면은 시간의 단위로 그 위에 걱정, 안도감, 소망, 희망, 설렘, 혼란스러움 등 작가가 느끼는 여러 감정을 측정하고 위칫값을 계산한다. 작가는 감정의 상태와 크기를 숙고한 후 그에 맞는 색깔을 정하고 때로 음표를 붙이기도 한다. 인간의 감정 변화를 설명하는데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말할 수 있을까, 많은 미술가가 주변 환경과 감정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김지영 작가의 작업은 오차 없이 재단한 흰 정사각형 화면 위 그래프, 도면, 악보가 보인다. 마음을 말하는데 이렇게 치밀할 수 있는가. 감정에 색상과 톤이 있을까?
감정의 세포들
작가는 각 감정의 크기와 그것에 할애하는 시간은 서로 다르며 여러 감정이 합쳐져 복잡하고 독특한 감정을 만들어 낸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행복은 안전함, 설렘, 잔잔함이 모였을 때 생성되는 것이다. 작가는 각 감정에 적합한 색감을 조색한다. 감정의 세포들은 각각 색깔과 이름을 가지고 있다. 혼란스러움의 세포는 크림색(cream), 설렘은 다홍색(scarlet), 걱정은 노란-연두색(yellow-green), 소망은 파란-연보라색(blue-violet)이다. 작가는 감정의 색상표를 만든 후 미세한 이동 과정을 그려서 특정한 감정 사이의 대립을 보여준다.
마음의 축척
평면도는 1:100, 1:1000 등의 축척을 적용하여 한눈에 담기 힘든 크기의 건물을 도면에 넣은 것이다. 작가는 본인이 느끼는 마음의 크기를 정사각형의 종이로 축소하고 작은 원들을 배열했다. 실제로 가늠할 수 없는 감정의 세포들을 작가가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축척으로 그린 것이다.
시간 체계
작가가 사용하는 정사각형의 종이는 시간의 단위다. 즉, 작가가 순서대로 배열한 여러 장의 종이는 시간의 흐름을 나타낸다. 시간의 사각형 안에 존재하는 선과 작은 원들은 같은 시간대에 존재한다. 같은 시간대 안에서 움직이는 감정의 세포들은 서로 간격을 조절하며 안정된다. 시간은 어떤 순간에 어떻게 의식하는가에 따라 다른 속도로 움직인다. 정사각형 안에 세워진 선의 방향, 그리드의 간격, 곡선 등은 작가만의 시간 체계로 감정을 느끼는 속도를 나타낸다. 또한 그는 감정의 크기와 강도를 표현하는 것을 연구하는데, 한 감정이 자라고 지속하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종이 위에 선의 길이와 도형의 크기로 세밀하게 기록한다.
대립(conflict) 시리즈
대립(conflict) 시리즈는 작가가 2016년부터 현재 진행 중인 작업이다. 서로 상충하는 감정을 나란히 놓고 우열을 가린다. 작은 세포들은 위, 아래를 다투며 하나의 상태로 수렴되거나 균형을 찾는다. 일정 거리를 두고 작품을 바라보면 가늘고 확신에 찬 선이 보이기 시작한다. 비록 스치면 지워질 듯한 여린 농도의 연필선이지만, 작가가 오랜 시간을 두고 측정하여 정확한 점을 찍은 후 연결한 마음의 위치이다.
음표
작가의 작품은 때로 잘 정돈한 악보처럼 보인다. 악보에는 작곡가의 의도가 기보법에 따라 나열되어있다. 연주자는 그 규칙을 눈으로 따라가며 아름다운 소리로 재현한다. 작가는 감정을 색상과 위칫값으로 표현하는 것에 그치지않았다. 감정에 음표를 지정했다. 일부 작품의 제목은 감정에 해당하는 음계를 더듬고 기록한 것이다.
걱정과 소망 사이의 대립 a
걱정하다=노란-연두색=음표=d(레)와 a(라)를 같은 옥타브에서 함께 연주한다
소망하다=연한 파란-제비꽃색=음표=c(도)와 g(솔)를 같은 옥타브에서 함께 연주한다
작가는 감정을 청각적으로 옮기는 과정을 기록했다. 피아노 위에서 두 가지 음계를 동시에 누르는 동안 발생하는 불협화음은 “감정의 대립”을 설명하기에 적절해 보인다. 음계가 작품의 제목에 등장하게 된 것은 아마도 작가가 수많은 감정의 악보를 그리며 자연스레 떠올린 결과일 것이다. 작가의 비밀스러운 수학 훈련에 감탄한다. 작가는 관객이 작품을 읽어주길 원한다. 악보를 읽는 것처럼 김지영 작가의 감정을 연주하고, 상상하며 추측하길 바란다.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수(數)를 다루는 것을 모른다. 음악은 비밀스러운 수학 훈련이기 때문이다.”
ㅡ 롤랑 마뉘엘, 음악의 기쁨1, 이세진 역(북노마드, 2014), 98.
출처: Whis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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