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현대 본관
2019년 11월 6일 ~ 2019년 11월 30일
남관, 푸른 땅 (3), 1967, Oil on canvas, 114.5 x 87.5cm, 현대화랑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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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화랑은 ‘한국 추상회화의 선구자’인 남관의 회고전을 개최한다. <남관의 추상회화 1955 - 1990>전은 작가가 파리로 건너간 1955년부터 작고한 1990년까지 제작한 시대별 주요 작품 60여 점을 엄선해 선보인다.
남관(1911-1990)은 ‘동양과 서양을 융화한 세계’를 선사하는 추상화가로 프랑스 파리 화단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1955년 44세의 나이로 프랑스로 떠난 그는 몽파르나스에 화실을 마련한다. 세계 각지에서 파리로 모인 작가들의 아지트와 같던 아카데미 드 라 그랑드 쇼미에르(Académie de la Grande Chaumière)에서 3년간 현대미술을 공부하며 본격적으로 추상화 작업을 시작한다. (그의 초기 추상화 작업의 특징은 전시에 출품된 1957년작 <피난민>에 잘 드러난다.) 파리에 정착한 지 1년 만인 1956년, 파리시립미술관에서 기획한 《현대국제조형예술전》에 참여하고, 1958년 당대 파리 화단을 이끈 전위적 예술모임인 《살롱 드 메(Salon de Mai)》에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초대받는다. 남관을 초대한 평론가 가스통 딜(Gaston Diehl)은 “남관이야말로 서양문화를 흡수하고, 또한 동양문화의 어느 일부조차 희생시킴 없이, 동서를 분리시키면서 동시에 융합시키는 거의 독보적인 예술가”라고 높게 평가했다. 이후 남관은 이 단체전에 59, 61, 64, 66년 연이어 참여한다. 이 전시에 출품된 1961년작 <동양의 풍경>은 파리국립현대미술관에, 1962년작 <허물어진 제단>은 파리시립미술관에 소장된다. 1966년에는 권위 있던 망통회화비엔날레에서 <태양에 비친 허물어진 고적>이라는 작품으로 1등상을 수상한다. (그해 망통회화비엔날레에서는 안토니 타피에스가 명예상, 세르지 폴리아코프가 시(市) 대상을 받았다.)
195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 말, ‘파리 시대’의 남관은 고대 유물과 유적지에 영감을 받은 작품을 발표한다. 때 묻은 벽, 황폐한 뜰, 오래된 성이나 유적의 잔해처럼 보이는 풍경이 캔버스에 아스라이 모습을 드러낸다. 작가는 회색이나 자색 계열의 물감을 사용해 세월이 흘러 마모되거나 비바람을 맞아 녹슬고 부식한 듯한 표면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남관 회화의 독특한 질감은, 파리로 건너가기 전에 향토적인 주제로 제작한 구상회화에서도 잘 나타난다.) 허물어진 사적, 어두운 그림자에서, 동양의 제, 자색에 비친 고적, 태고의 유물, 허물어진 기념비, 동양의 추억, 동양의 환상 등의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그는 수많은 이야기가 응축된 시공간의 질감을 캔버스에 포착하고, 동양적이고 종교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일련의 추상화를 완성했다. 미술사학자 김현숙은 ‘파리 시대’남관 작품의 모티브를 작가의 전쟁 경험과 연결해 해석한다. 해군종군화가단으로 활동하며 전쟁의 참혹한 실상을 가까이에서 목격한 경험이 그의 작품에 운명처럼 녹아들게 된 것이다. 작가 역시 이를 부정하지 않았다. 한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작가는 전쟁터에 널브러진 인간의 연약한 신체를 고성의 돌 조각이나 부서진 유물과 연결 지었다. “내 그림의 모티브는 자주 전쟁의 기억에서 온다. 벌판에 쓰러진 젊은 병사의 얼굴, 토막 나 뒹구는 팔다리, 시체 위로 쏟아지는 햇볕, 전란으로 우왕좌왕하는 군중의 모습 … 얼굴, 얼굴들을 나는 길 가다가 땅 위에 구르는 이끼 낀 돌 위에서도 보고 고궁의 퇴색한 돌담에서도 본다. 나는 돌에서 참 많은 역사를 본다. 태곳적부터 비바람에 씻기고 닳고 버려져서 지금에 있고 또 미래에도 남을 돌과 온갖 풍상을 겪고도 살아남는 인간의 얼굴이 비슷하게 여겨지는 것, 이것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내가 그리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인간의 얼굴이다.” 또한, 작가는 1962년 무렵부터 고대 상형문자와 한자 등을 떠올리는 형상을 화면에 도입한다. 서체 모양으로 자른 종잇조각을 캔버스에 움직이며 화면을 구성하는 실험을 전개한 것이다. 그는 마음에 드는 구도가 결정되면, 그 위에 안료를 뿌리거나 칠하는 작업을 열정적으로 이어갔다고 한다.
1968년 귀국 이후부터 작고 전까지, ‘서울 시대’의 남관은 독특한 인간상과 색채를 탐구하고, 콜라주와 데콜라주(*콜라주 방식을 역이용하여 화면에 붙인 재료를 떼어내 그 부분에 다시 색을 칠하는 기법)을 통해 자신만의 추상 언어를 완성한다. 남관 회화의 핵심적 조형 언어로 꼽히는 얼굴(마스크) 이미지가 캔버스에 등장하며, ‘파리 시대’ 작업의 어두운 화면은 청색을 중심으로 차츰 환하게 밝아진다. 푸른 반영, 묵상, 정과 대화, 내 마음에 비친 상들, 어떤 환상, 방랑자의 꿈, 어떤 형태, 소녀의 꿈, 삐에로의 꿈 등의 제목에서도 드러나는 것처럼, 그의 ‘서울 시대’ 작품은 명상적이고 동시에 몽환적이며 환상적인 분위기로 가득하게 된다. 평론가 이구열은 남관의 이러한 작업을 “칠보공예의 찬란한 색상미 같은 효과를 창출”했다고 분석하면서, 추상과 구상의 성격을 동시에 지닌 양면성을 지적한다. “그 작품들 속의 시각적 콜라주 형상들은 작품에 따라 일종의 문자성과 기호성, 그 밖에 신비한 물상의 형태로 구체성을 갖게 함으로써 헤아릴 수 없이 내밀한 표상미를 조성시켰다. ‘마스크’로 주제 삼은 작품들도 그와 같은 성향으로 표상된 것이었다. 그것들은 이를테면 구상적인 추상 표현, 또는 추상적인 구상표현으로 말할 수 있는 양면성의 작업이었다.”
“그림이란 삶의 축적이자 나의 인생”이라고 말한 남관. 그는 1990년 생을 마칠 때까지 파리와 서울을 오가며 남다른 열정으로 창작 활동에 정진한다. 이번 전시는 현대화랑(갤러리현대)에서 열리는 남관의 5번째 전시다. 1972년 열린 남관의 개인전은 현대화랑(갤러리현대)의 첫 추상화 전시였다. 이후 1983년, 1988년, 1995년에 전시를 개최하며 남관 화백의 국제적 성공과 예술적 성취를 한국 미술계에 적극적으로 알렸다. 그의 시대별 주요 작품을 망라한 <남관의 추상회화 1955 - 1990>전을 통해,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인 남관의 아름다운 작품 세계가 재조명되고, 그 뛰어난 예술성이 다시 한번 널리 알려지길 바란다.
작가소개
남관은 1911년 경북 청송에서 출생. 14세에 일본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해방 전까지 생활한다. 도쿄 태평양(다이헤이요)미술학교를 졸업한 후, 구마오카 미술연구소에서 2년간 연구 과정을 수료하며 작가로서 활동을 시작한다. 문부성미술전, 동광회전 등에 출품했고, 후나오카상(1942), 미츠이상(1943) 등을 수상하며 그 실력을 인정 받는다. 해방 후 귀국한 그는 1947년 이쾌대, 이인성, 이규상 등과 조선미술문화협회를 결성한다. 1948년부터 1951년까지 숙명여자대학교와 홍익대학교 교수를 역임한다. 1949년 제1회 국전에서 서양화부 추천작가가 된다. 1954년 미도파화랑에서 도불기념전을 치르고, 1955년 프랑스로 떠나 파리에 정착해 13년간 활동하며 명성을 얻는다. 1968년에 귀국한 후에는 1978년까지 홍익대 미술대학 교수로 후학 양성에 힘썼고, 1969, 75-76년 국전 심사위원장을 역임한다. 포름화랑(1953, 도쿄), 삼보화랑(1970), 현대화랑(1972, 1983, 1988, 1995), 국립현대미술관(1981, 91)에서 개인전을, 파리시립미술관(1955), 파리시립현대미술관(1956), 도쿄현대미술관(1968), 샌프란시스코현대미술관(1972) 등에서 열린 단체전에 참여하는 등 세계 유수의 미술기관에서 전시를 개최한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파리국립현대미술관, 파리시립현대미술관, 룩셈부르크현대미술관, 스위스로잔공과대학, 토리노국제미술관 등 국내외 주요 기관에 소장되어 있다. 춘곡상(1967), 대한민국 문화예술상(1974), 대한민국 문화훈장(1981) 등을 받았으며, 작고 이후 대한민국 예술원상(1990)이 수여된다.
출처: 현대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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