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55
2020년 3월 1일 ~ 2020년 3월 20일
'코끼리의 변'
효율성, 마주하기는 싫고, 외면할 수도 없는 단어가 우리 사이를 부유한다. 가성비와 효율성을 추종하는 시대에서 예술가의 효율성은 무엇이고, 어떻게 평가될 수 있을까? 한없이 비효율적인 행위를 일삼는 작가들이 사방천지인 예술계에서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효율성(Effciency)의 기준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오늘날 예술가의 효율성은 노동의 효율성과 크게 다르지 않다. 노동의 형태를 육체노동과 지적노동으로 구분한다면, 육체노동의 효율성은 선사의 호모속이 최초로 도구를 사용한 시점부터 농경정착, 산협 혁명 등을 거치며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오늘날 생산의 핵심은 인간으로부터 비롯된 지체시간을 줄이고 생산량을 늘리는 것이다. 오늘날 예술가는 주어진 시간 속에서 자신의 노력을 투자하여 정량적인 결과물을 제작해야 한다. 다소 잔혹해보이지만, 육체적인 노동으로서 효율성을 추구하는 것은 쉬운 편에 속한다. 질적인 완성도는 개인의 기준에 따라 타협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식노동의 경우 효율성 계산이 훨씬 더 복잡하다. 지식노동의 결과물은 단순히 정량적인 생산물이 아니며, 투자한 시간, 노력과 상관없이 결과물이 효용성에 따라 가치가 결정된다.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가 작가들이 죽은 뒤에야 완성됐지만 우리가 그들 작업의 효율성을 감히 논할 수 없듯이, 지적노동의 효율성은 철저히 그 가치를 기준으로 한다. 정리해보면, 육체노동의 효율성은 물리적인 시간과 노력의 입력과 그에 따라 출력되는 생산성을 기준으로 하며, 지식노동은 지극히 결과물의 효용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둘 사이에는 큰 간극이 존재한다. 오늘날 예술가들이 직면한 문제가 바로 이 간극에 있다. 두 노동의 효율성의 기준은 서로 충돌하는데, 예술은 육체노동과 지식노동을 동시에 수반하기 때문이다. 작가의 어떤 창작물도 모순되는 두 개의 기준으로 부터도 자유로울 수 없고, 두 기준을 모두 충족할 때까지 예술가는 자신의 효율성을 비판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우리는 이중의 기준을 맞추기 위해 그 기준들로 짜여진 깐깐하고 복잡한 준거틀 위에서 예술을 실천하고 찾아나서야 한다.
참여작가: 엄아롱, 안민환
기획: 안종현
출처: 스페이스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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