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자
2015년 6월 5일 ~ 2015년 6월 28일
노상호, 네쌍둥이, 혼합 매체, 가변 설치, 2015

노상호 작가는 국립현대미술관 <젊은모색 2014>전에 참여한 이후 <데일리 픽션>이라고 명명되는 그의 드로잉 시리즈와 천막과 암실을 이용한 공간 구성, 장식적인 설치로 알려졌다. 본 시리즈 작업은 작가가 경험하고 수집한 이미지들을 몽타주한 뒤 먹지로 드로잉하는 과정을 필수적으로 거친다. 이와 동시에 이야기들이 만들어지면서 가상과 실재가 혼재된 세계관이 창조된다. 이 때 작가의 일련의 작업 과정에서 먹지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먹지를 매개로 구현된 이미지들은 손의 압력에 따라 질감이 틀려지는 일반적인 드로잉과는 달리, 일차적으로는 재료의 특성상 균일한 톤으로 정제된다. 부차적으로는 작가의 자기화 과정을 통해 혼합되면서 통일성을 부여 받는다. 이는 이질적인 이미지들과 현실의 경험을 합쳐주는 매개체로서의 작가 본인과의 유사성을 가지는 것이다. 먹지를 거치는 드로잉 과정은 작가가 경험하고 수집한 출처 없는 이미지와 그가 만들어내는 이야기들이 산발적으로 부유하지 않도록 한다. 트레이싱(tracing)이라는 물리적인 행위를 통해 문자 그대로 먹지의 흔적(trace)을 남김으로써 화면에 그것들을 붙잡아두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 때 흔적은 장-뤽 낭시가 말했듯이 어떤 살아있는 존재나 기계의 통과로부터 남은 것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어떤 경우든 흔적은 자신이 흔적이 된 바로 그것의 사라짐을 함축하고 그러므로 그것은 동시에 어떤 것과 그 어떤 것의 사라짐을 보여준다.
사실 노상호 작가는 그저 매일 한 장의 드로잉을 꼬박꼬박 그려나가는 페인터라기보다 천상 ‘이야기꾼’이라고 볼 수 있다. 그가 먹지를 통해 남겨진 흔적을 매개로 관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이야기’ 그 자체이다. 이에 작가는 모든 전시 기회를 각별히 여겨,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한 보여주기 방식을 세심하게 실험해왔다. 가령 암실 컨테이너에 벽화를 설치하고 손전등을 이용해 관객이 그림을 구석구석 살펴볼 수 있도록 한다던가, 변사를 통해 그가 만든 이야기를 관객에게 전달하는 등 공감각적인 디스플레이와 공간 구획을 실현해왔다. 따라서 그로서는 관객들에게 이야기가 묻혀있는 불필요한 것으로 공중에 흩어져 버리고, 벽에 꽉 채워 걸어놓은 드로잉들의 시각적 자극이 더 크게 남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항상 있어왔다.
이번에도 그는 다른 전시에서와 마찬가지로,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한 방식에 대해 고심했다. 그리고 단 하나의 드로잉과 이야기를 보여주되, 이를 거대한 유화 페인팅으로 제작하기로 했다. 사실상 벽에 걸린 페인팅은 남들로서는 전혀 새로울 것 없는 형식이지만 노상호 작가로서는 완전히 새로운 시도이다. 여태 자신의 작품의 분위기와 상황을 전달하기 위해 과장되고 장식적인 설치를 해왔던 작가로서는 이를 모두 제거하기까지 오랜 고민이 필요했다. 그가 찾은 해답은 기고자 공간 자체를 천막이나 암실처럼 활용하는 것이었다. 또한 이미 트레이싱된 이미지(드로잉)를 캔버스 천에 물리적으로 확대하여 다시금 트레이싱하는 과정에서, 작가는 본인이 만든 이야기임에도 이것이 스스로에게 확대되어 전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드로잉을 통해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전달하고 그것이 어떤 영향을 미치든 상관하지 않았던 그로서는 특별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그의 이번 시도가 관객들에게는 어떤 흔적으로 남을지 기대해본다. 글: 임다운
출처 - 기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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