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2018년 11월 15일 ~ 2019년 2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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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관장 바르토메우 마리)은 《대한제국의 미술-빛의 길을 꿈꾸다》전을 2018년 11월 15일(목)부터 2019년 2월 6일(수)까지 MMCA 덕수궁에서 개최한다.
《대한제국의 미술-빛의 길을 꿈꾸다》전은 대한제국시대(1897-1910)라 불리는 고종(1852-1919)과 순종(1874-1926) 시기의 궁중미술을 조명하는 전시이다. 대한제국의 짧은 성쇠, 그리고 일제강점이라는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그간 대한제국 시기의 미술은 조선 시대의 우수한 미술 전통이 급격히 쇠퇴한 것으로 인식돼 왔다. 그러나 최근 공과가 모두 반영된 균형 잡힌 대한제국의 역사가 서술되며 대한제국의 미술 역시 과거 미술의 전통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한편, 외부의 새로운 요소들을 받아들임으로써 근대미술로의 변화를 모색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대한제국의 미술-빛의 길을 꿈꾸다》전은 당시의 회화, 사진, 공예 200여점을 통해 대한제국 시대의 미술이 어떻게 한국 근대미술의 토대를 마련했는지를 집중 조명한다.
전시는 1부 ‘제국의 미술’, 2부 ‘기록과 재현의 새로운 방법, 사진’, 3부 ‘공예, 산업과 예술의 길로’, 4부 ‘예술로서의 회화, 예술가로서의 화가’등 4개의 주제로 구성된다.
1부 ‘제국의 미술’에서는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바뀌며 발생한 미술의 변화와 전개를 살펴본다. 궁중미술의 경우 규범성이 강한 장르인 만큼 대한제국이 성립된 이후에도 조선 후기 이래의 전통이 이어졌지만 왕에서 황제가 된 고종의 지위에 맞추어 황제와 황후에게만 허용되는 황색의 용포와 의장물이 어진과 기록화에 등장하는 변화를 엿볼 수 있다. 검은 익선관을 쓴 황룡포 차림의 <고종 어진>과 대한제국의 군복을 입고 불법을 수호하고 있는 호법신이 그려진 불화 <신중도>, 짙고 화려한 전통적 화원화의 기법과 서양화법이 절충된 그림으로 19세기 말~20세기 초 궁중회화의 새로운 경향을 반영한 작품으로 국내 최초 공개되는 <곽분양행락도>, 2007년 국내에 소개된 후 10년 만에 다시 소개되는 <해학반도도> 등이 있다.
2부 ‘기록과 재현의 새로운 방법, 사진’은 고종을 비롯한 황실 인물들과 관련된 사진으로 구성된다. 고종을 비롯한 대한제국의 주요 인사들은 근대화의 일환으로 사진 수용에 적극적이었다. 1880년대 초 황철에 의해 최초로 서울 종로(당시 대안동)에 사진관이 설립된 이래 어진이나 기록화 같은 궁중회화의 상당 부분을 사진이 대체한다. 이는 사진이 특유의 표현방식과 특징을 갖춘 새로운 장르로서가 아니라 극사실성을 추구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기법으로서 회화를 보완, 혹은 대체하는 차원으로 수용되었음을 알려준다.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상황을 보여주는 육군 대장복 차림의 <순종황제>, 국내에 최초로 공개되는 김규진의 첫 고종사진 <대한황제 초상사진> 등이 있다.
3부 ‘공예, 산업과 예술의 길로’는 고종, 순종시기의 각종 공예품의 전반적인 양상과 변화를 조명한다. 당시 고종은 근대화의 일환으로 공예부문의 개량을 추진한다. 실제로 당시 공예는 미술공예와 산업공예로 나누어지며 서구와 일본의 공예 개념, 제작기법, 표현방식 등을 수용하면서 전개되었다. 1908년 대한제국 황실이 전통 공예의 진흥을 위해 설립토록 한 한성미술품제작소의 경우 운영의 난항으로 명칭과 운영 주체가 바뀌는 등 성격이 달라지기도 했지만 처음으로 공예를 미술품 혹은 미술공예품으로 지칭하였으며, 도안의 개념을 수용하여 완상(玩賞)용 공예품을 만드는 등 시대적 변화를 선도했다. 문양은 조선후기 백자항아리의 전통을 따르면서도 기법은 근대기 도입된 스탠실을 사용한 <백자운룡문호>, 국내 최초 공개되는 김규진이 그림을 그리고, 수를 놓은 12폭 병풍 <자수매화병풍>등이 있다.
4부 ‘예술로서의 회화, 예술가로서의 화가’에서는 과거 기능적 장인에 가까웠던 화원 화가가 예술가적인 성격의 화가로 변모하는 양상을 조명한다. 과거 궁중화가들은 과거의 사례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그림을 제작하고 나서도 여타 회화와 달리 관지(款識)를 남기지 않았다. 고종, 순종시기에는 도화서가 해체됨과 동시에 다양한 외부의 화가들이 궁중회화의 제작에 참여하게 됐고, 오히려 ‘외주(外注)’ 화가로서, 전문가적으로 혹은 예술가적으로 대우를 받는 상황이 됐다. 자연스럽게 과거와 같은 익명의 그림이 아닌 자신의 이름을 분명히 남긴 궁중의 회화들이 제작됐다. 근대 화단에 풍속화의 새로운 전형을 제시한 채용신의 <벌목도>, <최익현 유배도>, 근대기 사군자화의 대표작가 해강 김규진의 <묵죽도> 등이 있다.
한편 이번 《대한제국의 미술-빛의 길을 꿈꾸다》전에는 배우 이승준이 특별 홍보대사를 맡았다. 최근 종영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굳은 심지로 근대 국가를 만들려던 고종을 연기한 이승준은 가이드 투어를 통해 대한제국 미술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관람객에게 깊은 감동과 여운을 전할 이승준의 가이드 투어는 국립현대미술관 모바일 앱(App)을 통해 만날 수 있다.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바뀌며 보여주는 궁중회화의 표현방식 변화, 사진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등장과 이로 인한 시각문화의 변동, 산업공예와 예술공예의 분화, 그리고 예술가적 화가의 대두 등은 대한제국시기의 미술이 그저 쇠퇴기의 산물이 아닌 근대화시기 변화를 모색했던 치열한 시대의 결과물”이라며 “이번 전시가 대한제국시기 한국 근대미술의 토대가 어떻게 마련되었는지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자세한 정보는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http://www.mmca.go.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전시구성
제국의 미술
1897년 조선왕조가 대한제국으로 전환되면서 궁중미술에도 변화가 생겼다. 규범성이 강하고, 보수성이 짙은 궁중미술의 특성상 대한제국이 성립된 이후에도 기본적으로는 조선 후기 이래로 전해져오던 전통이 지속됐지만, 황제가 된 고종의 위상에 맞춰 황제와 황후에게만 허용되는 황색의 용포龍袍와 의장물이 어진과 기록화에 새로이 등장하는 등 달라진 면모들을 살펴볼 수 있다. 여기에는 국가적으로 어렵던 당시의 상황 속에 황권을 강화하려는 고종의 의도가 반영됐다. 본래 궁중장식화는 본격적인 ‘그림’이라기보다 궁궐의 치장을 위한 일종의 ‘물건’으로까지 여겨졌기 때문에 그 변화가 극히 드물게 나타나곤 했다. 그러나 고종 시기에 이르러서는 서양 및 일본 미술 등의 사실적이고도 세밀한 화풍을 수용, 변화를 꾀했다. 이러한 면모는 궁중회화 이상으로 보수성이 강한 당시의 불교 회화에도 나타나는 부분으로,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태극과 오얏꽃 문양이 장식된 신식군복 차림의 호법신護法神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러한 양상은 모두 대한제국 궁중미술의 시차 없는 저변화를 보여주는 것이다.
기록과 재현의 새로운 방법, 사진
고종을 비롯한 대한제국의 주요 인사들은 근대화의 일환으로서 대표적인 서구의 신식문물인 사진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자 했다. 실제로 1880년대 한국에 사진관이 설립된 이래로 어진이나 기록화 등 궁중회화의 상당 부분은 회화가 아닌 사진으로 대체해 나갔다. 이는 사진이 특유의 표현방식과 특징을 갖춘 새로운 장르로서가 아니라 극사실성을 추구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기법으로서 회화를 보완하거나 혹은 대체하는 차원에서 인식, 수용되었음을 알려준다. 즉 당시의 초상사진이 초상화와의 뚜렷한 관련성 속에 회화의 표현방식과 특징을 받아들이면서 뿌리내리기 시작했고, 또 반대로 특유의 사실성이 회화에 자극을 주기도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황후의 초상, 가족 초상 등 그간 유교적 관념 아래 등장할 수 없었던 대상이 사진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점 등은 달라진 시대상과 근대성이 반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공예, 산업과 예술의 길로
고종이 근대화의 일환으로 역점을 두었던 것 가운데 하나는 공예부문의 개량이었다. 전통 공예의 경우 19세기 말 관요官窯가 민요民窯로 전환되면서 그 질이 현격히 떨어지고, 궁중의 서양 식기 선호와 맞물리며 입지까지 좁아진 도자의 사례에서도 살펴볼 수 있듯 쇠퇴일로에 서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통 공예의 복구와 진흥을 위해 1908년 대한제국 황실의 지원으로 한성미술품제작소가 설립됐다. 그렇지만 자금난으로 1911년 운영주체가 바뀌고 명칭도 이왕직미술품제작소로 변경됐다. 이후 대한제국의 상징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며 역기능을 보였지만, 공예를 미술품, 미술공예품으로 처음 부르기 시작하였고, 도안의 개념을 수용하여 실용 기물이 아닌 감상용 공예품을 만들었으며, 나아가 선진 기술을 통해 제작된 물품을 자본주의 관점에서 제작, 판매, 소비, 향유하는 근대적 흐름을 파생시킨 기능을 담당하기도 했다. 더욱이 그 원류인 한성미술품제작소가 대한제국 황실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다시금 주목할 만하다. 또한 대한제국 황실과 운현궁에서 사용돼 오던 도자, 나전칠기, 목공예, 자수 등 각종 공예품들은 전통적 양식과 외래 양식이 공존하는 양상을 보여주는데, 이는 사실 고종 이래 “구본신참舊本新參”의 지향을 보여주는 물질문화에 다름 아니다.
예술로서의 회화, 예술가
고종, 순종시기에는 도화서가 해체됨과 동시에 다양한 외부의 화가들이 궁중회화의 제작에 참여하게 됐다. 이들은 전문가로, 혹은 예술가로서의 대우를 받기 시작했는데, 서구와 일본으로부터 ‘미술’의 개념이 전해지게 된 사실도 주요한 배경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과거와 같은 익명의 그림이 아닌 자신의 이름을 분명히 남긴 궁중회화들이 제작되기 시작했으며, 화원들과 달리 작가의식을 토대로 보다 창작적인 차원에서 그림을 그렸다. 실제로 그들은 1920년경 제작된 창덕궁 벽화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기존 궁중회화의 양식에 서양화풍과 일본화풍을 가미한 시각적인 사실성과 장식성이 강화된 그림을 선보이는 등 변화를 모색했다. 이것이 이후 화가들의 성격 및 화단 전체의 변화에 있어 전환점이 되었기에 그 의미가 적지 않다. 또한 이들이 궁중회화를 제작하며 보다 실력을 정교하게 가다듬고, 명성을 쌓으며 기성화가로 자리매김했다는 점에서 근대 회화에 있어 대한제국의 역할이 중요했음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나아가 그 대표적 인물인 안중식, 조석진, 김규진에 의해 설립된 서화미술회書畫美術會와 서화연구회書畫硏究會에서 양성된 화가들은 이후 근대 한국화단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참여작가: 강진희, 강필주, 키쿠타 마코토, 김규진, 김봉룡, 김영기, 김은호, 김응원, 김진갑, 김진우, 김창환, 노수현, 무라카미 텐신, 박승무, 변관식, 샤를 알베르크, 안중식, 앨버트 테일러, 양기훈, 영친왕, 오일영, 유근형, 윤용구, 이병직, 이상범, 이와타 가나에, 이용우, 이한복, 조석진, 전성규, 지운영, 채용신, 황인춘, 황철, 현채, 휴버트 보스
주최: 국립현대미술관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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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시간
월요일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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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10:00 - 18:00
토요일 10:00 - 18:00
일요일 10:00 - 18:00
휴관: 월요일, 1월 1일
관람료 3,000원
모든 프로그램은 주최측의 사정으로 변경될 수 있으니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를 확인하시기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