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터사이드
2021년 11월 21일 ~ 2021년 11월 27일
이제 인간과 디지털이 뒤섞인 시공간은 어디에서나 확인할 수 있다. 당신의 손바닥 위 또는 호주머니 안, 가방 속 어딘가. 공간의 범위를 조금만 더 명료하게 확장하자. 당신의 걸음이 새겨지는 경로 위 무수한 화면들을 표지판의 예시로 들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올라탄 버스와 정류장, 지나친 지하철과 역사 혹은 자동차의 계기판 옆 지도 어플리케이션. 덧붙여 당신이 이동하며 맞닿았던 수많은 광고판까지. 너무 빠르게 기억이 흘러간다면 조금 천천히 시간을 되감아 보자. 어제 또는 오늘 아침으로. 하루가 시작될 때 당신은 휴대기기의 패널을 통해 날짜를 마주하고, 정오에 이르기까지 몇 번이고 시계를 보았을 것이며, 매번 메신저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다가, 무언가를 검색한 뒤에 어떤 정보들과 접촉했을 것이다. 이렇듯 디지털 기술은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요소로서 익숙한 조력자가 되었다. 그러나 언급했던 광경을 떠올려 보았을 때 선명하게 눈치 채기 어려운 사실이 하나 있다. 너무도 친숙해진 데이터의 단위들이 인간의 시선으로 쉽게 인지되지 않는다는 것, 데이터의 흐름은 분명히 존재함에도, 당신의 눈에 띄지 않은 채 어딘가에 숨어 있는 듯하다. 《더미와 레이어》에서 작가는 전자화된 인간과 데이터 기술의 관계성을 기계적 물성과 영상으로 구체화하는 시도를 선보인다.
<로깅-라벨링-태깅>은 수집된 위치 데이터들을 모터의 동력으로 삼는다. 빅데이터의 신뢰성과 개인 맞춤형 서비스를 구축하기 위해 자동으로 기록ㆍ수집된 개인의 위치 데이터들이 모터의 움직임으로 나타난다. 이에 따라 천의 굴곡이 유동할 때, 가림막 너머에 자리하는 개인의 흔적을 발견하게 되는 조형물이다. 우리가 접하는 전자 우편, SNS의 이용 내역, 웹사이트의 방문기록, 검색어, 무수한 데이터의 발자국들은 빅데이터와 플랫폼 알고리즘의 활용을 위해 로깅-라벨링-태깅이라는 과정을 거치며 비가시화된 경계면 내에서 분류되고 있다. 개인의 디지털 흔적들로 이루어진 기계 더미들은 전시의 구성 요소로 작동하기 위해 작가의 임의적 관점에 따라 다시 한번 분류과정을 거친다. 보이지 않음에도 무수하게 작동하는 데이터와 인간의 정리가 다시 물질로 가시화될 때, 관람자는 이러한 데이터의 전회를 통해 디지털 흔적을 누군가의 발자취로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를 현실의 좌표에 대입해 감응할 수도 있을 것이며, 혹은 기계로 은유한 무수한 인간의 모형들 앞에 멈춰서, 쌓여버린 기술 더미의 흔적으로 나타난 개인의 위치를 자문할 수 있을 것이다.
<두 개의 눈>은 AI의 신뢰성을 강화하기 위해 영상 데이터를 제공하는 인적 노동에서 비롯된 비디오 작품이다. 이 작품은 인간과 기술의 위계를 기묘한 각도에서 주시하며 끊임없이 질문을 발생시킨다. AI의 신뢰성을 판가름하는 자는 누구인가? 누구를 위해 AI가 구축되는가? 데이터 노동 작업에서 인간이 지켜야 할 행위의 규칙은 누구를 위해 정해진 것인가? 이 영상에서 관람객은 기계의 정밀성, 판단의 설득력을 높이기 위한 노동행위의 수행자가 다름 아닌 인간이라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맞닥뜨린다. 이를 통해 우리는 데이터 기술과 노동행위에 깃든 관계를 탐구해 볼 수 있을 것이며 시선의 자리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작품 안에서 카메라의 시선은 일견 파놉티콘과 감시자의 눈을 연상하게 하며, 관람자는 이에 접속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눈의 자리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눈을 통해 관찰하게 될 영상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작품은 시선과 수행의 자리에 관한 물음을 불러일으킨다. 《더미와 레이어》는 모형들의 덩어리와 시선, 그리고 행위의 층으로 실재하는 개인과 데이터, 이들로 구성된 사회의 관계성을 사유하고 각자의 시공간을 데이터의 좌표로 들여다보게 한다.
참여 작가: 조재한
테크니컬 아티스트: 이시은 조서현
글: 김준서
공간디자인: 김주원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출처: 얼터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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