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공
2026년 9월 17일 ~ 2026년 10월 4일
뱀발 (사족蛇足)
"뱀의 발"이라는 뜻으로, 쓸데없는 것을 덧붙여 도리어 그것을 망치는 짓을 의미한다.
다수가 동의하는 가치에 불필요한 것들, 사회는 발이 사라진 과정처럼 서서히 사족을 잘라내며 매끈하고 세련된 쪽을 향한다. 이러한 기조에 따라 우리는 누구나 사족을 자르는 순간들을 지나 세련된 사회의 일원으로 뱀의 머리로 나아간다. 내가 기억하는 첫번째 순간은 유년시절 자주 들은 "사람이 되어라" 는 훈계로 인지된 사람다운 것에 어울리지 않는 사족, 십대에는 가부장적 환경에서 요구되는 사내답기에 대한 사족을 잘라내고, 이국에서는 외국인으로서 집단의 훌륭한 구성원 되기에 대한 사족을 잘라내려 애썼다. 그리고 최근까지 미술가다운 것의 사족을 잘라내려 고민하였으니, 일생을 뱀발 자르기에 몰두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사라진 발은 어디로 갔을까?
연구에 따르면 뱀의 다리는 진화 과정에서 크게 축소- 소실되었지만, 다리 발생에 관여하는 유전적 프로그램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일례로 2016년 발표된 연구에서는 비단뱀의 배아형성 과정에서 다리가 될 조직이 일정부분 발달하다 멈추는 것을 확인하였는데 이를 통해 뱀의 다리가 부재가 아닌 중단 상태에 가까운 것임을 밝힌다.1
그간 잘라내던 사족 또한 외부로 드러나지 않을 뿐 언제든 뻗을 수 있는 상태로 내재되어 꿈틀거리는 성장통을 안겨줬다. 이를테면 "미술가다운 것" 과는 거리가 먼 뱀발에 대한 구구절절한 자료와 이미지를 수집하고 기억해 온 일 자체가 무척이나 사족이 아닌가.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사족들에 가장 내밀한 자아가 깃들어 있음을 믿는데, 우리는 모두 한때 세상에 대한 무수한 질문들로 자아를 형성하지 않았나.
눈앞의 것을 정보로 환원해 정의하고 분류하는 일은 세련되고 합리적이지만, 때로는 주관적인 의문과 상상이 뻗어 나갈 경로를 제한한다. 그러므로 다수가 동의할 만한 가치도 아니며, 설명이 어렵고, 명확한 정의도 붙지않은 무질서를 발로 걸어가며 숨겼던 호기심을 마음껏 누려보자. 의문하거나 상상하지 않는 매끈한 구조의 일부에서 다시금 투박한 개인이 되기에는 사족의 각력( )이 필요하다. 미뤄 둔 성장통을 겪겠지만, 그렇게 걸어 나가는 방향은 비단 뱀의 머리만은 아닐 것이다.
1. Leal, F. & Cohn, M. J., "Loss and Re-emergence of Legs in Snakes by Modular Evolution of Sonic hedgehog and HOXD Enhancers," Current Biology, 26(21), 2016, pp. 2966-2973.
디자인: 닌겐프레스 (NingenPaperPress)
공동주관 : 영기계예술공작소
후원 : 수원특례시, 수원문화재단
뱀발에 대한 대화: 9. 20.(일) 19:30―20:30
*수원문화재단 「2026 유망예술가 지원사업」 선정(데미안 리)
* 아트바바에 등록된 모든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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