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99
2021년 10월 19일 ~ 2021년 12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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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가 운영하는 스페이스99(관장 박만우)에서 2021년 이전 재개관 기념전시 《무색사회: 중앙정보부60》에 이어 국가보안법 아카이브를 바탕으로 한 다음 전시 《뒤, 따라》를 개최합니다. 해방 이후 한국근현대사의 트라우마와 관련된 풍부한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있는 평화박물관은 젊은 세대의 기획자, 작가들을 초청하여 ‘현재, 이곳'에서의 감수성을 통해 국가보안법과 관련한 사회·역사적 기억과 경험을 재조명해주기를 요청했습니다.
지난 여름 〈아카이브의 상상력〉이란 주제로 4회에 걸쳐 진행한 오픈워크샵은 이번 전시의 참여작가와 기획자 모두에게 단순한 기록과 증언을 넘어선 신선한 ‘아카이브 충동‘을 경험하게 해준 기회였습니다. 사진, 아카이빙, 비디오 설치, 퍼포먼스 등으로 구성되는 《뒤, 따라》 전시 참여작가들의 출품작은 과거와 현재, 개인과 집단의 기억을 대치시키고 충돌시킴으로써 ‘가깝고도 먼’ 시대의 정동을 소환합니다.
이번 전시는 평화박물관의 국가보안법 아카이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조작된 간첩과 진짜 간첩, 비전향 장기수와 정치범에 대한 자료들이 한가득 쌓여있는 그곳에서. 무엇보다 무언가 말로 담아낼 것을 도저히 길어 올릴 수가 없었습니다. 말이 멈춘 곳에서 눈에 들어온 것은 서류에 묻은 알 수 없는 얼룩, 편지에 남은 끈적한 자국, 흔들리거나 초점이 나가서 사료로 쓰일 수 없는 사진, 혹은 역사적인 사건과 상관없는 사적인 내용을 담은 쪽지들이었습니다. 공식적인 아카이브에서 누락될 것이 뻔한 자료들, 의미로 파악되지 않는 그 부스러기 같은 이미지에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전시는 여기에 각기 다른 사건을 둘러싼 예술가들의 작업을 겹쳐 놓습니다. 현장에 깊숙이 들어가 사건을 대상으로 파악할 거리를 없애버리거나, 사건의 주변부를 담아내거나, 혹은 사건이 일어나고 한참 뒤에야 현장을 방문한 예술가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사건을 기억하는 과정을 통해 또 다른 사건을 만들어버리기도 합니다. 이러한 작업들을 엮어내면서 《뒤,따라》는 다큐멘터리와 아카이브가 역사적 사건의 증거물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사건이 될 수 있는지를 살펴봅니다.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는 이미지의 역동성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이미지를 보는 사람에게서 발생하는 움직임을 '따라 움직임'(Nachbewegung)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에서 '따라'로 번역된 독일어 'Nach'는 뒤에, 따라, 뒤따라, 이후, 향해서 등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뒤, 따라》는 거리를 두고 있지만 동시에 지향하는, 그리고 시간성과 공간성을 모두 가지는 복잡한 감각을 떠올립니다. 그것을 통해 관객이 과거의 사건을 기록한 이미지를 만나는 순간 발생하는 지금의 또 다른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사건을 논리적으로 재구성해내지 못하는 다큐멘터리와 아카이브는 하나의 사건을 지시하지 못합니다. 사건이라는 것 자체가 불일치 속에 빠져버립니다. 문제는 사건이라는 것이 애초에 하나의 진실로 수렴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이번 전시는 그러한 불일치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이미지 내부에서 각기 얼마나 다른 것이 솟아오를 수 있는지를 탐구합니다. 과거의 사건을 기록하는 일에 실패하는 다큐멘터리를 역동적으로 감각하기를 제안하는 것입니다.
사실을 명료하게 드러내지 못하고 더 복잡하게 만드는 지난 시간의 이미지는 과거가 아니라, 그 이미지를 보고 있는 지금의 구조를 드러냅니다. 여기에서 과거와 현재가 변증법적으로 충돌합니다. 나아가 변증법적으로 만나는 것은 시간의 순서뿐만이 아닙니다. 이미지 속 어떤 사건은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또 다른 사건들과 연결되면서 연대의 성좌를 그려내기도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뒤, 따라》는 예술가들의 이미지와 아카이브를 함께 작동시키며 다큐멘터리 이미지와 아카이브의 다층적인 가능성을 상상합니다.
* 번역 출처: 김남시, 「잔존하는 이미지의 힘. 아비 바르부르크의 역동적 이미지론」, 『현대미술학 논문집』, 23(2), 2019.
전시기획: 권태현
참여 작가: 노순택, 윤지원, 황예지, 흑표범
아카이브 설치: 최황
공간디자인: 정진욱
그래픽디자인: 김정활
출처: 평화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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