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가비
2016년 5월 13일 ~ 2016년 5월 27일
라유슬 Flutter oil on canvas 130x162cm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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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에는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두 가지 상반된 성질이 존재한다. 바로 입자와 파동이다. 쉽게 말해, 빛은 물리성을 가진 작은 알갱이인 동시에 소리나 파도처럼 퍼져나가는 움직임 자체가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이처럼 미스테리한 빛의 양자성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체감하는 ‘시간’과 비슷한 성질을 공유하는 것처럼 보인다. 시간은 숫자로 환산되는 개념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눈에 보이지 않고 형체도 없는 비물질의 흐름과 같다. 2016년 갤러리가비의 기획전 <시간의 춤(Dance of Time)>에서 라유슬 작가와 장인희 작가는 색과 형상을 통해 시간이 가지고 있는 흐름과 축적, 찰나와 영원, 그리고 일상적이며 결정적이라는 역설적인 특성들을 독특한 감성으로 전달한다.
라유슬의 ‘Flow’ 연작 속에서는 오색찬란한 색선들이 마치 물결처럼 흐른다. 시간이 유동하는 모습을 실제로 볼 수 있다면 이런 모습일까 싶을 정도로 유려하고 잔잔하며, 또 한편으로는 거침이 없다. 그러나 작가가 흘려보내는 것이 어찌 시간뿐일까. 파동이 충격에 의해서 생성되는 것처럼, 라유슬의 파동은 삶의 어느 한 부분을 진동시켰던 고뇌들, 이야기들, 그리고 감정들에 의해 생겨나 확장되며 흘러간다. 흐르는 색선으로 경계 지어진 색면들은 그 덧입혀진 정도에 따라 채도와 농도를 결정하는데, 이들은 마치 잘 짜여진 한 곡의 음악에서 강약을 조절하는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라유슬 작가의 또 다른 작업인 ‘Nanoscale’ 연작은 문자 그대로 나노크기의 입자인 빛의 파장을 구현한 것이다. 작가는 빛이 주는 생성, 소멸, 충돌의 에너지를 그리면서 색의 울림이 보여줄 수 있는 최대한의 환희와 기쁨을 드러내고자 했다. 두 연작 모두에서 나타나는 색면들은 작가가 시간차를 두고 한 층씩 덧바르는 방식으로 작업된 것이다. 흐르면서도 쌓이는 시간의 흔적처럼 이들은 조화롭게 덧입혀지며 나름의 형상을 갖추어 나간다. 인간의 성장은 경험과 감정의 축적에서 비롯되듯이, 색의 층층에는 작가의 내적 세계가 담겨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장인희의 작품에서는 비교적 동질적인 형태와 움직임들이 반복되어 나타난다. 마치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듯한 유기적인 형상들은, 작가가 선택한 ‘결정적 순간’을 상징한다. 작가는 생성과 소멸이 지속적으로 순환하는 것처럼, 끊임없이 돌고 도는 시간의 순간성에서 삶의 가능성을 포착하고자 했다. 서로 다른 색을 갖춘 각각의 형상들이 마치 퍼즐처럼 모여 하나의 집단을 형성하는 모습은 밝고 경쾌하다. 이들은 한치의 틈도 없이 오밀조밀 밀착되어 있는데, 한 개체의 움직임이나 몸짓이 그 주위 개체들의 외형을 직접적으로 규정할 정도로 매우 촘촘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를 통해 작가는, 시간은 단순히 중첩된 순간들의 총체가 아니라 순간과 순간의 연결과 연관성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또한 이처럼 시간적이면서도 시각적인 관계성에 장인희 작가는 ‘거울’이라는 요소를 첨가해 놓았다. 작품 속 거울은 보는이의 모습을 반영해 내며, 현재진행형이면서도 영원한 시제를 지닌 그 한 순간을 고스란히 반사시킨다. 이때, 순간을 상징하는 형상들은 회화작품의 것과 같은 모습이나, 제작방법은 크게 다르다. 작가는 먼저 투명지에 밑그림을 그린 뒤 이를 거울 필름지 위에 동일하게 옮겨 그린다. 이후 형상 하나 하나를 가위로 오리고, 이를 다시 퍼즐처럼 맞추어서 캔버스에 부착한다. 가위로 재단하는 과정은 큰 주의와 집중력를 요하는 작업이다. 형상 하나가 순간 잘못 잘리면 그 결과 주위의 모든 형상들이 비틀리거나 구겨진 외형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작가에 따르면 이러한 ‘거울-회화’ 작업은 “과거의 필연과 현재의 우연성에 의하여 결정되는 미래”를 상징하는 것이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시간 자체는 원이다(Time itself is a circle).”라고 말한 바 있다. 인간에게 거저 주어진 수많은 것 중 시간처럼 생(生)과 사(死)를 넘나드는 존재는 없다. 생의 원동력으로 가득찬 앙리 마티스의 <춤II>(1910)이 떠오른다. 인간의 가장 영원한 동반자인 시간은, 어쩌면 그처럼 가장 인간다운 모습으로 우리 손을 잡고 춤을 추며 ‘삶’이라는 크고 작은 원들을 함께 그려나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김소정)
장인희, At this moment - Boom003, mirror PET films, 47ⅹ47cm, 2015
라유슬, Moist, oil on canvas, 72x53cm, 2015
출처 - 갤러리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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