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창창작스튜디오
2015년 10월 9일 ~ 2015년 10월 21일
류일하, Pink Fountain, 79x60.3cm, oil on paper, 2015

사진적 시각을 회화로 변형하기 + 회화를 설치로 연장하기
회화의 일반 공식이 화면 안에 선명한 주제를 어려움 없이 찾게 만드는 것이라면, 이 회화의 일반 공식에 저항하는 회화 실험들이 차츰 늘어나고 있다. 이런 회화의 출현은 스토리텔링이나 주제를 화면으로 옮기는 기량을 통해 작업의 완성도를 가늠했던 평론가의 관성과도 충돌한다. 선명한 주제나 주제의 유기성에 연연하지 않고, 동일한 작가가 동일한 시기에 완성한 작품들이 개별적인 주제를 담은 여러 그림들이 단속적이고 느슨하게 연결된 회화의 집합체로 나타나곤 한다.
스냅사진이 널리 보급된 오늘날의 현실, 혹은 유기성보다 개별적인 사건에 집중되어 있는 스냅사진의 생리가 스냅사진에 영향을 받는 화가들에게 이처럼 비인습적인 회화에 집중하게 만든 배경인 것도 같다. 류일하의 작품집에서 주제의 연속성보다 무작위적인 재현 대상의 선택이 앞서는 이유도 그 때문이리라.
류일하의 화면을 구성하는 단위는 무정형의 붓질인 것 같다. 그 붓질은 심지어 그의 그림의 주제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그만큼 그의 그림에서 붓질은 작업에서 가장 두드러진 역할을 한다. 요컨대 <Poison flog mountain>(2013)에서 독개구리 혹은 독개구리산이라는 제목보다 그림을 압도하는 건 정체불명의 산과 음울한 하늘을 묘사하는 무정형한 붓질에 있다. 무정형한 붓질은 인물의 얼굴을 일그러뜨리기도 하며, 일그러진 얼굴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그의 회화는 본의 아니게 등장인물의 정체성을 모호하고 익명적으로 강조하는 것 같다.
결과적으로 류일하의 작업은 작가 본인이 촬영한 스냅사진과 온라인에서 손쉽게 구한 광고 사진 등을 표현주의적으로 번역한 회화일 것이다. 이 번역 과정에서 촬영된 원본의 이미지는 기괴하게 변형되기에, 사진을 참조한 건 분명하되 사진의 원본성을 저버린 회화적 번역물로 나타난다. 서구 회화의 역사에서 거울은 재현된 그림의 완성도를 가늠하는 잣대였다. 대상을 정확히 반사하는 거울의 속성 때문에, 거울은 회화 자체에 대해 사유하는 메타회화에서 종종 출연하곤 했다. 이렇듯 회화의 정체성을 자문하게 만드는 거울의 자리를 이제는 사진기가 대체했고, 사진기 혹은 사진이 일상을 뒤덮은 현실 아래에서, 어떤 화가들은 사진적인 견지에서 회화를 구성할 것이다.
무정형한 붓질과 일그러진 인체로 채워진 류일하의 화면에서, 거친 붓질로 우울한 정서를 반복해서 표현했던 북유럽 화가 뭉크가 연상되기도 하지만, 류일하 회화의 방점은 표현주의적 정서가 아니라, 넘쳐나는 사진 이미지 때문에 변별력을 상실한 시각문화에서, 사진의 원본 이미지에 종속되지 않고 회화의 고유한 거점을 만드는 데에 있는 것 같다. 가창 스튜디오의 복도에서 만난 서로 무관해 보이는 화면들을 병치시키는 회화 작업들은 두 가지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하나는 항상 단속적인 이미지들로 구성된 오늘날의 시각 문화를 풍자하는 작업 같기도 했고, 다른 하나는 벽에 밀착해서 제시되는 회화의 평면적 생리를 회화 설치물로 연장시킬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런 이유 때문에 그의 회화는 개개의 작업을 벽면에 일직선으로 나열하는 것보다, 다양한 크기와 다양한 주제의 다수의 작품을 벽면에 설치할 때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아울러 지금보다 데생력을 더 향상시킨다면 이같은 설치 공학적인 회화에 효과도 더하리라 생각했다.
- 반이정
출처 - 가창창작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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