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라운지
2026년 5월 13일 ~ 2026년 6월 13일
에이라운지는 2026년 5월 13일부터 6월 13일까지 안민혜 기획의 전시 《마침내, 하나의 밤》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아녜세 갈리오토(Agnese Galiotto), 이제, 정수현 세 작가의 회화, 판화, 영상 작업을 통해 인간과 동물, 사물의 삶과 상상, 꿈과 기억을 같은 층위에서 바라본다. 전시는 이 서로 다른 존재들의 감각이 교차하고 머무는 하나의 장소로 펼쳐진다.
이탈리아 출신 작가 아녜세 갈리오토는 전통 프레스코 기법을 바탕으로 벽화 작업을 이어온 작가이다. 그는 2022년에 가파도 레지던시에 머물며, 주인이 세상을 떠난 뒤 식물이 뒤덮인 채 남겨진 한 폐가에 프레스코 벽화 <Green Cave>를 제작했다. 작가는 나무가 거의 없는 섬에서 숲처럼 변해버린 이 집을 폼페이의 고대 주거 공간에 겹쳐 보며, 그 안을 산 자와 죽은 자, 인간과 동물, 식물과 바다 이야기가 서로 얽히는 상상의 동굴로 변모시켰다. 이 작업을 통해 한국에 처음 소개된 갈리오토는 《마침내, 하나의 밤》에서 첫 서울 전시를 열며, 국내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에칭 판화 작업을 선보인다.
갈리오토는 벽화 제작을 위한 밑그림을 대형 작업으로 제작하여 에이라운지 2층 중앙 공간의 바닥 전체에 설치한다. 관객은 이 이미지 위를 직접 걸어 다닐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작품이 닳고 흔적을 입는 시간 또한 작업의 일부가 된다. 전시가 끝난 뒤 작가는 이 작업을 다시 이탈리아로 옮겨가 새로운 벽화로 이어갈 예정이다.
바닥에 펼쳐진 이미지 속에는 풀숲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개 한 마리와, 그 곁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새와 고양이가 등장한다. 그리고 함께 전시되는 세 점의 에칭 판화에는 마치 개의 꿈속 장면처럼 보이는 기묘한 이미지들이 새겨져 있다. 1층에는 작은 에칭 한 점이 별도로 설치된다. 그 안에는 작은 쥐 한 마리가 등장하는데, 이 존재는 마치 제 시간에 도착하지 못한 방문자처럼, 혹은 지하라는 또 다른 공간을 열어내는 안내자처럼 전시장 안에 숨어든다.
정수현은 1층에 두 점, 2층에 네 점의 회화를 선보이며, 이번 전시에서 처음으로 영상 작업을 발표한다. 작가는 유화와 아크릴화를 사용하지만, 그가 만들어내는 장면은 르네상스 이전 템페라 회화를 연상시키는 색감과 얇고 매트한 표면을 지닌다. 동시에 그 이미지는 디지털 환경에서 생성된 사물과 건축의 이미지를 담고 있어 기법과 이미지 사이의 묘한 이질감을 드러낸다.
인간이 사라진 듯한 고용한 사물과 건축적 공간은 오래된 시간의 층위를 품은 듯한 회화적 표현과 함께, 사물과 장소가 지닌 비인간적 시간, 혹은 인간의 기억을 넘어서는 감각을 암시한다. 이번 전시에 포함된 영상 작업에서는 핀볼(pinball)의 움직임이 매우 무겁고 거대한 감각으로 표현된다. 인간의 시선으로 인식되는 사물의 운동과, 사물의 감각에서 펼쳐지는 세계가 전혀 다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이 작업은, 1층과 2층에 놓인 여섯 점의 회화와 교차하며 사물의 세계와 그 내부의 시간을 더욱 깊이 있게 드러낸다.
이제 작가는 하나의 양식이나 고정된 스타일에 머무르지 않고, ‘화가’로서 자신만의 회화적 세계를 구축해온 작가이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 물감의 물성을 한층 집요하게 밀어붙인 회화 작품을 선보인다. 화면 속에는 세계와 관계 맺고 있는 인간들의 군상이 등장하지만, 그 장면은 개별 요소들이 명확히 구분되거나 구체적으로 묘사되는 방식으로 제시되지 않는다. 인간과 배경, 사건은 서로 뒤섞이고 겹쳐지며, 하나의 혼합된 덩어리처럼 나타난다.
따라서 관객이 처음 마주하는 것은 특정한 형상이 아니라, 응축된 물감의 덩어리와 선, 긁히고 쌓인 표면의 흔적이다. 그러나 그 안을 오래 들여다보면 여러 겹으로 덧입혀지고 다시 지워진 층위 사이에서 희미한 실루엣과 움직임이 떠오른다. 이제의 회화는 혼란 속에서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고, 붙잡고, 다시 놓치는 방식을 화면 위에 드러낸다. 그것은 그림 속에서 벌어진 장면인 동시에, 우리 앞에 하나의 물질적 세계로 출현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품과 함께 전시장 안팎에 식물이 놓인다. 이 식물들은 동물, 인간, 사물이 함께 감각하고 상상하는 공간에 초대된 또 다른 손님처럼 등장한다. 이들은 공간을 감싸 안으며 전시장 안과 밖을 연결하고, 공간 안의 존재들 사이에서 또 다른 감각적 관계를 발생시킨다.
《마침내, 하나의 밤》은 세계를 설명하거나 타자를 명명하는 전시가 아니다. 전시는 조용히 바라보고, 듣고, 머무는 태도를 통해 우리가 타자와 어떻게 마주칠 수 있는지를 묻는다. 그 만남은 선명하지 않고, 완전하지 않으며, 때로는 찰나에 가깝다. 그러나 바로 그 불완전한 순간 안에서 감각과 상상은 작동하기 시작한다. 전시는 그 작고 어두운 시간, 마침내 하나의 밤처럼 도래하는 감응의 순간을 향해 나아간다.
참여작가: 아녜세 갈리오토(Agnese Galiotto), 이제, 정수현
출처: 에이라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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