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뉴월 이주헌
2019년 10월 11일 ~ 2019년 11월 2일
너의 밤
적막이 깃든 작은 마당. 문틈 사이로 하얗게 치켜뜬 두 눈이 달처럼 밝게 빛난다. 문지방을 가로질러 흐르는 검은 장막 위로 연기처럼 자리한 그들은 날선 시선으로, 불안한 몸짓으로, 공간 구석구석을 파고들고 드나들길 반복한다. 정처 없이 떠도는 생명들에 머무는 시선은 선뜻 다가갈 수도, 깊게 파고들지도 못한 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뿐. 이곳은 깨어있는 밤처럼, 보이지 않는 것들이 살아 숨 쉬는 곳, 그들이 잠식한 작은 영토다. 여우와 비둘기. 이들의 존재는 국가, 역사, 지리, 환경, 문화 등 외부의 요인에 의해 다르게 인식되고, 때론 그것의 삶과 죽음의 문제까지 타자에 의해 결정되기도 한다. 종이 지닌 보편적 특성이 엄연히 존재하지만, 그것은 서로 다른 맥락과 조건을 지닌 외부의 시선에 의해 극명한 차이를 드러내며, 전혀 다른 대상이 되기도 한다. 맹일선은 대상에 대한 객관적 시선이 외부 세계의 가치관과 맥락, 사회통념에 의해 왜곡되면서 벌어지는 심리적 불편함에 주목하고, 그것을 개인의 경험과 기억을 통해 시각적으로 해소하는 작업을 진행해왔다. 특히 그는 도심 속에서 생존을 위협받는 다양한 종들도 인간과 동일하게 하나의 생명을 지닌 살아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기본 전제로, 그들의 행동을 관찰하며 느꼈던 자신의 복합적인 감정들을 영상과 글, 드로잉과 회화, 사진 등 여러 갈래로 풀어낸다. 낯선 대상과의 조우로 인한 두려움은 일정한 시간과 거리를 두고 일상의 시공간을 공유하며 관찰하는 과정에서 익숙함과 친밀감, 책임감으로 승화되며, 이것은 또 다시 공존할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하면서 밀려오는 당혹감, 이질감으로 이어진다. 그는 암여우, 비둘기를 마주하고, 지켜보면서 느낀 이러한 감정과 시간의 변화를 화면 안에 담아낸다. 하얀 캔버스 위에 타고 있는 초의 그을음을 입혀 서서히 형상을 만들고, 이것을 다시 사진으로 촬영하여 반전된 이미지를 얻는 과정은 그가 대상을 바라보며 겪은 크고 작은 감정의 흐름과 관계가 다양한 형태와 속도로 뻗어나간 변화의 궤적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초의 그을음은 다루기 힘든 예민한 소재이자, 외부의 변화와 자극에 민감한 질료인만큼 충분한 인내와 집중을 요한다.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검은 그을음을 묻히는 행위는 대상을 향한 그의 태도를 닮아있다. 성급하게 다가갈 수 없고, 너무 멀리 떨어지면 닿을 수 없는 것. 여기서 잠시 길들임 혹은 길들여짐에 대해 생각해본다. 사라지거나 휘발해버릴 것 같은 이미지 앞에서 필요한 것은 결국 절대적인 인고와 기다림의 시간이다. 길들임에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듯, 하나의 이미지를 얻기 위해 몸을 움직여 거리를 조절하며 천천히, 섬세하게 쌓아올린 그을음은 볼품없이 여겨진 존재와 온전히 대면해야 하는 작가 자신에 대한 반성과 고백, 참회와 위로의 시간을 자연스럽게 마주하게 한다. 결국 무언가와 절대적인 시간을 공유한다는 것은 그것을 계기로 친숙하다고 여겼던 자기 자신의 낯선 내면과 궁극적으로 만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울러 연기처럼 사라져버릴 것 같은 이들의 형상은 시간의 흔적 안에 고스란히 간직하되, 반전을 거쳐 비로소 시간을 초월한다. 작가는 흑백의 극명한 대비와 이미지의 반전이 가져온 우연적 효과로 하나의 이미지를 완성하는데, 그 공정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는 하나의 방법이자, 대상에 대한 그의 생각이기도 하다. 이미지의 반전은 순식간에 닥칠 수 있는 죽음에 대한 그의 불안한 상상이 영원한 세계로의 염원으로 이행되는 과정이다. 배고픔으로 도시를 서성이는 여우의 앙상한 몸, 도시의 천덕꾸러기가 된 비둘기 무리를 그린 검은 회화는 반전된 사진 이미지 안에서 치유되고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 검은 그을음 안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 볼품없는 존재가 빛과 색의 반전을 거치면, 전에 없던 위엄을 드러내는 초월적 존재가 되는 것이다. 마치 초현실 속에 존재하는 신비롭고 영험한 존재처럼, 이들 주변에는 알 수 없는 숭고함과 존엄함 마저 맴돈다. 두려움과 질타의 대상에 대한 부정, 부재의 문제가 인식과 실존의 문제로 전환되는 순간이다. 쪽마루 아래, 가까워졌다가 이내 멀어지며 불안하게 서성이는 여우의 발걸음(<Moving portrait- vixen>, 2019)처럼, 맹일선의 작업은 끝없이 이상을 추구하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에 좌절하고, 절대적인 한계를 절감하면서도 영원과 초월을 포기하지 않는 삶의 모습을 상기시킨다. 같은 맥락으로, 대상과의 관계에서 느낀 숭고와 두려움, 상처와 치유, 친밀감과 낯섦, 불안과 위안, 멀고 가까움, 부재와 실존, 인식과 부정과 같은 양면적 혹은 양가적 속성에서 파생된 복합적인 감정들은 그의 작업에서 절대적인 시간의 흐름 속에서 반전을 거쳐 서로 균형을 맞추며 결국에는 일종의 불가분의 관계를 구축해나간다. 그리고 그을린 시간의 흔적이 영원의 세계로 진입하듯, 이렇게 불가분의 관계를 맺으며 감정을 공유한 길들임의 시간, 그 기다림의 끝에서 칠흑같이 검은 밤처럼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내면과 투명하게 마주하도록 이끈다./ 황정인(독립큐레이터)
출처: 스페이스오뉴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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