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독립
2023년 10월 18일 ~ 2023년 11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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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화면이 있다. 선(x)을 그어 1차원을 만든다. 그 선을 세로 지르는 선(y)을 하나 더 그려 2차원을 만든다. 두 선이 만나는 지점(p)에서 하나의 선(z)을 더 그린다. 우린 이것을 ‘공간’이라 부른다. 이요한은 2차원의 디지털 화면에 3차원인 ‘공간’을 그려 생성하고 확장한다. 아무것도 없는 빈 곳(공간)에 여러 프레임을 그려 복수(複數)의 공간을 설정하고, 그 위에 작가의 이중적 감정을 담은 오브제를 배치해 각 세계의 상호작용과 충돌을 유도한다. 개인전 《모종의 공간(들) : 시작 위의 마지막》에서는 그동안 회화적 프레임으로 창조한 공간들을 물리적인 전시장으로 확장하고, 2차원 그림 속 공간을 3차원 현실로 꺼내놓는 여러 방법을 제시한다.
모종의 공간(들): 공간
이요한이 만든 공간들은 독립적이지만 서로 연동된다. 작품 안을 들여다보면 복수(複數)의 공간이 존재하는데, 레이어들이 복제되면서 그 안의 오브제가 여러 프레임에 공존하고 있는 걸 발견할 수 있다. <(공간)독립>으로 살펴보자면, 이 작품은 5개의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중심부를 차지하는 정방의 공간(a)과 그 레이어를 복제해 만든 상단의 3개의 공간(a¹, a², a³), 그리고 이 모두를 담고 있는 대지까지. 공간들은 복제, 변형, 오브제 공존의 방식으로 연동되어 있다. ‘a’의 공간 모서리에 접힌 초록색 면은 우측 상단의 공간(a³)에 복제되었는데, 원본의 오브제는 투시도법에 의해 안으로 접힌 모양이었다면 복제된 오브제는 홀로 존재하면서 밖으로 접힌 것처럼 보이기도, 안으로 접힌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처럼 작가는 일련의 사건이나 현상에서 느끼는 양가적인 감정을 오브제에 담아 표현하는데, 대지와 메인 공간(a)에 걸쳐있는 곡면을 예로 들 수 있다. 이 곡면은 두 개의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상부의 검은색 그림자와 다른 하나는 곡면에 맞닿아 있는 밝은 그림자이다. 이는 곡면이 포함되어 있는 레이어를 복제해 색과 형태를 변형해 만들어졌다. 작가는 원본에서 파생된 레이어에 명과 암, 안과 밖, 위아래의 반전 등의 기법을 가미해 이중적 감정을 시각화하고 여러 프레임에 동시에 배치해 3차원의 충돌을 발생시킨다.
시작 위의 마지막: 시간
전시명의 한 부분인 ‘시작 위의 마지막’은 창작 과정을 내포한다. 그림에서 첫 붓질은 과정이 더해질수록 뒤로 밀려나게 되고, 마지막 붓질이 시작의 제일 위에 위치하게 된다. 디지털 드로잉은 그 과정이 더 명확하게 기록된다. 프로그램 창을 열어 처음 생성한 대지는 추가로 생성한 레이어들에 공간을 만들고 오브제 그려 넣기를 반복하면서 가장 아래로 밀려난다. 결과물은 플랫 한 스크린 화면이지만 레이어 펼쳐보기 하나로 입체적인 창작의 순서와 시간을 고스란히 볼 수 있고, 레이어의 재배치로 시간을 뒤섞을 수 있다.
또한 작가는 그림 속 세계의 빛(해)의 위치를 오브제마다 다르게 설정해 의도적으로 시간을 뒤죽박죽 엉켜둔다. 이는 작품 <무지개()와/그림자>에서 잘 나타나는데, 상부 정방의 공간에 위치한 7색의 돌멩이 오브제의 그림자는 아래 정방의 공간에 비친다. 그림자의 위치로 보아 빛이 위에서 아래로 비침을 예상할 수 있지만 왼쪽 아래의 다른 그림자가 두 시간을 충돌하게 한다. 또한 화면의 왼쪽 아래 하얀 벽의 그림자는 약 7시 방향에서 기울여 비추는 빛을 연상하게 하다가도, 오른쪽 위의 세 개의 원뿔이 맞고 있는 10시 방향의 빛과 그림자로 시간을 붕괴한다. 이처럼 작품 속엔 다중의 시간대를 담고 있는데, 이요한은 한 공간에 빛, 즉 해의 위치를 여러 개 설정해 과거와 현재를 공존하는 세계를 만든다.
new : 장소화
공간이 장소가 되기 위해선 서사가 필요하다. 이요한이 구축한 공간엔 작가의 이중적 감정을 담은 오브제와 그들의 연계와 충돌이라는 서사가 더해져 점차 장소화되어간다. 이전의 전시에선 작품을 겹치거나 띄우는 방식으로 레이어를 시각화했다면 이번 전시에선 적극적으로 작품 속 공간을 현실로 끌어와 확장된 장소를 만들려는 시도를 한다. 전시장에 작품 속 요소를 재현해 드로잉을 확장했는데, <(공간)독립>의 곡면을 정방형의 전시장에 실물로 배치해 디지털 레이어를 현실 세계로 복제하는 등의 다차원적 시각을 제시한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창조한 공간을 어떻게 더 확장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의 결과물이다. 디지털 작업물을 프린팅 해 물질로 만들었고, 이제 그 물질을 3차원 공간에 펼쳐 서사를 부여해 장소성을 갖게 한다. 마지막으로 전시장에 들어선 관람객은 ‘모종의 공간(들)’의 개별의 오브제로 ‘시작 위의 마지막’ 레이어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글: 김민지
참여작가: 이요한
출처: 공간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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