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관
2022년 11월 8일 ~ 2022년 11월 25일
“어떤 전시들은 당신의 정신을 채워주지만, 이 전시는 비워준다.”
민혜기 작가의 신작 보이드(Void)를 한동안 바라보며 떠오른 문장이다. 이 문장은 『뉴요커 (The New Yorker)』의 비평가인 피터 슈엘달(Peter Schjeldahl) 이 2015년에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이 개최한 온 카와라의 회고전《On Kawara: Silence》을 보고 쓴 전시 리뷰의 맺음말이 었다. 나는 이 문장이 지극히 반복적이고 일관적인 예술활동으로 귀결된 작가의 일생을 보여 준 전시에 대한 온당한 소감이라 여기며 내내 기억하고 있었다. 이후 내게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는지 작품을 보는 행위를 통해 의례 인풋을 구하던 감상 태도가 조금 차분해 지기도 하였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적막에 가깝도록 고요한 전시장에서 다시 이 ‘비워준다’던 문장이 떠 올랐다. 아마도 작가가 작품에 붙여준 이름 <보이드(Void)>가 내게 작동한 모양이다.
민혜기 작가는 코드라는 약속의 언어이자 명령어를 써서 반복적인 결과값을 갖도록 하는 기계를 만들어왔다. 신작 <보이드(Void)>도 반복적인 퍼포먼스를 하는 모터 달린 기계다. 그런데 <보이드(Void)>를 포함해 그가 만드는 작업은 기술적인 인프라를 가지고 새로움에 몰두하는 작가들의 것과 두드러지게 다른 점이 있다. 그것은 민혜기가 만드는 기계들의 지향점이 언제나 인문학적인 사유를 향해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동안 작가가 시간에 대해, 일상의 반복에 대해, 우리의 선택에 대해 단출한, 때로는 극적인 움직임을 수행해내는 기계를 만드는 것을 보았다. <보이드(Void)>는 일정한 시간차를 두고 금속 그릇을 때리는 일을 반복하는데, ‘퍼포먼스’ 를 ‘수행’이라 번역하는 우리말의 한계가 이 작품에서는 오히려 보완이 되는 느낌이다. 깨달음 을 구하기 위해 수행에 정진하는 듯한 움직임을 지속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기계가 구도자와 닮았다고 표현한다.)
사실 작가가 성취하고자 한 것은 이 수행으로 작품이 만드는 소리의 음량과 음색, 그리고 잔 향이었다. 정확한 속도로 작동하는 채(막대기)가 금속그릇을 때리면 커다랗고 청아한 쇳소리가 난다. 명징한 소리의 환기에 듣는 것에 집중하게 되면 15초에 가까운 잔향을 들을 수 있다. 전시장은 소리의 울림이 좋았다. 이것을 아주 미니멀한 타악기라 할 수도 있을까. 이 수행적 움직임과 소리들은 작품이 켜져있는 동안 반복된다. 관자로서, 또 청자로서 한동안 천천히 작품 주위를 돌아보았다. 반복은 우리 삶을 떠나지 않는 운동임을 새삼스레 인식하게 된다. 민혜기의 작업에 사운드가 결여되어 있었던 사례는 많지 않지만, 피지컬에 월등히 능했던 작가가 사라지고 마는 소리를 작품으로 만들며 무언가를 비워낸 듯 하다. 관객의 입장에서 보자면, 소리라는 것은 청자의 주관적인 경험으로 남는 순간의 파동이므로, 각자가 느낀 감정을 여음(餘音)으로 가져가게 되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글: 김수정 독립 기획자
본 글은 경기창작센터의 후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작가: 민혜기
서문: 김수정
사진: 안부
후원: 서울시 서울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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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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