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민미술관
2026년 8월 25일 ~ 2026년 10월 25일
기분은 무언가를 판단하기에 좋다. 어떤 대상에 대한 판단이, 점점 대상의 성질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고 승인하는 방식에 따라 내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멋짐이나 아름다움을 가려낼 때 무엇이 좋은지 따지는 대신 그럴듯해 보이는지, 지금의 느낌에 부합하는지, 즉각적으로 공유할 만큼 흥미로운지 살핀다. 무엇이 왜 좋은가의 문제를 단번에 해결해 주는 기분은 ‘뭔가 되어가는’ 느낌에 의지한 코딩 방식의 이름으로도 쓰인다. 그것이 바이브(vibe)이다.
바이브의 시대에는 효과가 형식에 앞선다. 이 점에서 바이브는 분위기와 구분된다. 분위기가 서로 다른 몸과 사물, 시간과 공간, 불균질한 리듬이 얽혀 형성된 긴장이라면, 바이브는 이처럼 복합적인 장을 특정한 효과로 압축하는 힘이다. 바이브는 각 요소의 시간과 출처를 지우고 그 사이의 불연속을 쉽게 인식할 수 있는 하나의 인상으로 봉합한다. 이미지를 복제하는 시대에서 생성하는 시대로의 전환은 이러한 압축의 기술적 조건이다. 복제 기술이 이미 만들어진 이미지의 자유로운 인용을 가능하게 한 것처럼 생성 기술은 익명의 프롬프트에 응답해 이전에 존재하지 않던 이미지를 즉시 출현시킨다. 기계적 생성은 대상들의 구체성을 분류 가능한 특징, 상관관계 등의 분포로 변환하는 동시에 추출 결과를 새로운 배열로 이어가는 과정이다. 이때 형식은 어떤 부름에든 대응할 수 있는 요소들로 평준화되고, 수많은 이미지와 표제로부터 얻은 가중치에 따라 역사적 거리나 물질적 차이를 뛰어넘어 결합한다.
《바이브 에라》는 이와 같은 변화를 앞질러 온 이미지로서 동시대 추상에 주목하는 전시다. 지난 십여 년간 추상 미술은 두 방향에서 공격받았다. 첫 번째는 미학적 정당성에 관한 비판이다. 여기서 추상은 당대의 사회·정치적 현실과 연결되지 못한 채 장식이자 상품으로 강등되었다는 혐의를 받는다. 두 번째는 역사적 정당성에 관한 비판이다. 이 관점은 추상을 모더니즘의 기획이 소진된 후 남겨진 무의미한 잔존물로 간주한다. 소진된 형식이므로 역사적 필연성이 없고, 필연성이 없으므로 비평적 내용이 없고, 내용이 없으므로 안전한 상품이며, 시장으로의 안착이 다시 소진의 증거로 제출된다는 점에서 두 비판은 순환 구조를 이룬다. 그러나 모든 과거의 양식이 출처와 맥락을 잃은 채 부름 받는 시대에는 추상이 오히려 이미지의 조건을 가장 명징하게 드러내는 미술의 응답처럼 보인다. 현재를 특징짓는 생성 기술이 일종의 추상 필터라는 점을 상기할 때 동시대의 추상은 비재현적 회화의 외양이나 특정한 미술사적 태도에 머무르지 않는다. 추상이 이미지를 생성하는 체계로 다시 고안될 수 있다면 바이브는 그 체계가 효과로 감각되는 방식일 것이다.
《바이브 에라》의 추상은 재현 대상을 제거한 끝에 남은 순수함이나 현실로부터 독립한 화면 내부가 아니다. 전시에 참여하는 네 작가는 몸과 재료, 도구와 기억이 맞물려 아직 정해지지 않은 형태를 찾아가는 대사 작용처럼 이를 구현한다. 이들의 작업은 변이하는 생물을 닮았다. 앞선 선택이 다음 선택의 조건이 되고 일견 무가치해 보이는 유전 형질이 다음 세대의 특이점을 촉발한다. 생물의 변이가 그렇듯 이질적인 것이 접촉해 성질을 바꾸면서 그 변화를 형태로 시험하는 과정이다. 그리기와 지우기, 접기와 펼치기, 관찰과 분류, 채집과 분쇄, 번짐과 건조, 접합과 분해 등을 거쳐 잠정적인 모습을 산출하는 체계 속에서 형태는 자의적인 계획이 예견하지 못한 변이에 노출된다.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는 『식물 변형론 Versuch die Metamorphose der Pflanzen zu erklären』(1790)에서 꽃의 중심에 다시 줄기가 자라고 줄기 끝에 붉은 꽃잎과 녹색 잎이 붙은 기형 장미를 관찰한다. 그는 장미의 형태를 상이한 단계에서 갈라진 연속적인 이력으로 이해하는데, 꽃잎은 무에서 출현한 것이 아니라 앞선 잎과 관련되어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본 기형은 이처럼 감추어진 형성의 원리를 드러내는 사건이다. 근본적으로 기형성을 내재한 추상도 마찬가지이다. 변형으로서의 추상은 세계를 닮은 꼴로 대리하려는 욕망과도 세계와 단절된 자율성을 세우려는 야망과도 다른 목표를 향한다.
바이브 시대의 추상 이미지는 기분에 흐르는 저항과 오차를 자신의 형태 안에 보존한다. 이 이미지들은 효과가 해명하지 않는 선택과 지연을 잔류시키며 ‘뭔가 되어가는’ 느낌을 형식으로 완수한다. 바이브는 무엇이어도 괜찮다는 낙관과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소비하면서 점점 비대해진다. 추상은 그 약속을 긍정하거나 반박하는 대신, 어떤 형태를 얻기 위해 손실된 과거가 바로 그 형태의 미래라는 점을 보여준다. 무엇이 된 모든 것은 저마다의 손실을 미래로 운반하고 있다.
참여작가: 박예림, 박정혜, 박현정, 한지형
주최: 일민미술관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현대성우홀딩스, 신세계면세점
출처: 일민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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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시간
월요일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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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11:00 - 19:00
목요일 11:00 -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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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11:00 - 19:00
일요일 11:00 - 19:00
휴관: 월요일
관람료 일반 9,000원 학생 7,000원, 만 24세 이하 학생증 소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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