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갤러리
2020년 10월 8일 ~ 2020년 10월 24일
인다라망 - 박경일의 플라스틱 랜드스케이프
“인류세”와 팬데믹, 이 위기의 시대에 박경일 작가가 <플라스틱 랜드스케이프>으로 다시 국내 화단에 복귀했다. 그의 삶과 작가적 이력은 늘 변화의 폭이 컸다. 국내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다가 홀연히 호주로 이주 했고, 국내에 돌아와 웹에이전시를 설립하고 디자인 비즈니스를 하며 웹 아트에 몰두했다. 그는 국내 웹아티스트 1세대로서, 명성이 자자하던 국제적 플랫폼 “헬닷컴”을 조직하며 한동안 주목할만한 활동을 펼쳤다. 그랬던 그가 오랜 침묵을 끝내고 인류세를 화두로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지금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극단적인 변화의 순간에 살고 있다. 기후변화와 그것이 야기한 감염병이 새로운 삶의 조건이 되었다. 스티븐 호킹은 지구 온난화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변곡점에 도달했고 그로 인한 인류의 대멸종을 경고했다. 인간의 몸과 지구는 같다. 인간의 체온이 1-2도만 올라가도 각종 질병에 휩싸이고 죽음 에 이르듯이 지구의 몸도 그렇다. 제레미 리프킨은 지난 200여년 동안 지속된 화석 연료 문명을이 위기의 주범으로 지목했다. 특히 20세기 중반에 발명된 플라스틱은 70여 년 밖에 안되는 짧은 시간에도 환경에 파괴적인 충격을 가했다. 효율성과 이익만을 추구해온 신자유주의와 화석 문명의 결합은 마치 시한폭탄처럼 지구상의 모든 생 물계를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작가는 “인간의 손길이 멈춘 그 이후의 풍경”을 상상했다고 말한다. 그의 작업은 대붕괴와 대멸종 이후 모든 생명이 사라진 죽음의 시공간을 담고 있다. 그곳은 우리가 만든 물건들로, 우리가 버린 쓰레기로, 우리가 욕 망했던 것들로 가득 찬 곳이다. 영원불사하며 구천을 떠도는 플라스틱 폐기물로 땅과 바다가 모두 오염됐고, 숨 쉴 때마다 공기속에 전염병이 퍼지는 곳이다. “인류세”와 “자본세”가 이미 휩쓸고 지나간, 시간마저 박제된 공간 이다. 작가는 이곳을 통해 윤리나 감정마저 증발해버린 삭막한 미래를 들여다보고 있다. 인터스텔라나 설국열차가 숨겨 놓는 일말의 희망마저 무참히 삭제된, 철저하게 무의미하고 무미건조한 공간이다.
코로나 팬데믹은 우리 시대의 가장 결정적인 순간이 되었다. 그 앞에서는 어떤 문제들도 사소한 것으로 보인다. “아우슈비츠 이후 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라고 절규한 아도르노처럼, 대붕괴 이후에도 시와 그림이 존재 할 수 있을까? 역사의 종말과 마주한 최후의 인류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팬데믹은 인종이나 빈부와 상관 없이 인류가 공통의 적을 마주한 최초의 사례다. 이를 통해 우리는 세상 만물이 모두 하나의 망으로 연결돼 있고, 너의 건강이 곧 나의 건강이며, 공동 대응만이 살길임을 절실히 깨달았다. 바로 화엄경에서 말하는 인다라망 의 세상이다. 박경일 작가가 직관하는 <플라스틱 랜드스케이프>는 우리가 쌓아온 화석 문명의 야만성을 성찰하고 파괴하는 묵시록적 예언이다. 만약 그 폐허의 공간에서 다시 피어나는 꽃들이 있다면, 그 꽃들은 분명 더없이 아름답고 향기로울 듯하다.
윤재갑 (하우아트뮤지엄 관장)
참여작가: 박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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