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떼에고
2019년 11월 8일 ~ 2019년 12월 28일
그의 시선이 머무는 그 곳, 그 사람들
누구나 일상적으로 쉽게 사진을 찍고 공유하는 요즘에도 포토그래퍼는 어떤 특별한 위상을 가질 수 있을까? 나는 확고하게 그렇다고 믿는 쪽의 사람이다. 목소리를 가진 사람들 대부분이 노래를 부를 수 있겠지만, 감동을 주는 좋은 가수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알떼에고에서 열리는 이번 개인전에서 박성진 작가의 사진이 담고 있는 것은, 그가 태국에서 보낸 2016년-2019년의 시간 속에서 건져 올린 순간들이다. 그것은 어떤 개인적이고도 자유로운 여행의 일기이자 묘한 매혹의 기록으로, 이곳 서울의 갤러리에서 그 사진을 마주한 우리에게는 꽤 이색적인 풍경을 담고 있다. 낯선 도시의 밤 풍경과 스쳐지나가는 사람들, 더운 바람을 타고 흐르는 경적소리와 이국의 언어, 진한 화장으로 본래 얼굴을 가늠하기 힘든 낯설고도 고운 사람들, 그런 이미지들 사이로 도시의 불빛이 흔들린다. 언뜻 보기에 이번 작업은 예전에 보았던 작업과 굉장히 결이 달라서 흥미롭다. 여러 해 전 박성진 작가의 라는 제목으로 묶인 사진들을 처음 접했을 때의 내 감상은, 단편적이고 추상적인 몇 개의 간결한 문장과 상식적인 몇 개의 궁금증으로 요약되는 지극히 평면적인 것이었다. 의 인물들은 중형 카메라의 정사각형 프레임 안에서 고전 회화의 모델들처럼 섬세하게 다루어지고 있었는데,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는 소년소녀를 다룬 점을 감안하면 의외로 놀랍도록 고요하고 관조적인 뉘앙스를 풍겼다. 그것은 클래식한 구도와 함께 잘 조율된 풍부한 회색톤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역시 대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그 이유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번 개인 전을 통해 접하는 그의 새로운 사진들은 그런 평면적 감상을 단번에 입체적이고 복잡한 것으로 확장시키는 기분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작가의 작업을 인상 깊게 본 분들에게는 이번에 그가 선보이는 작업이 굉장히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일단 시각적으로 감지되는 변화가 극명하기 때문에 당연한 일일 것이다. 에서 부드럽게 속삭이는 것 같던 차분한 명암 톤은 에서는 훨씬 강렬하고 거친 느낌이다. 이국의 밤, 어둠 속에서 흔들리며 산란하는 불안정한 빛들은 마치 인화지 표면을 살살 문지르면 촉각적으로도 느껴질 것만 같다. 작가의 설명처럼 자연스러운 상황에서 소형 카메라로 속도감 있게 촬영된 사진들은 잘 셋업한 상태에서 중형 카메라로 촬영한 것과는 다른 표현을 가능하게 한다. 사진작가들은 자신의 시그니처라고 할 만한 외형적인 것에 집착하는 경우가 많다는데, 아마도 카메라라는 기계와 그에 관련된 까다로운 기술, 찍는 대상에 따른 작업환경의 물리적 한계에 대해서 박성진 작가는 상당히 유연하고 자유로운 태도를 가졌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의 그러한 태도가 작업물의 외적 틀을 만든다면, 내적인 부분을 엿볼 수 있는 요소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우선 나는 박성진 작가가 에서 보여주었듯이 하나의 주제를 근 십 년 동안 묵직하게 끌고 나갈 수 있는 집중력을 가졌다는 점을 떠올려본다. 역시 며칠간의 짧은 작업여행이 아닌, 그가 태국에서 보낸 2016년부터 지금에 이르는 여러 해의 시간이 녹아 있다. 긴 호흡으로 주제에 집중하는 능력이란 일상의 루틴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것으로 지탱된다고 믿는 나로서는, 박성진 작가가 작업을 진행하는 방식이 꽤 성실하고 반복적일 거라는 추측을 해본다. 작가는 필름카메라를 이용한 흑백사진을 찍는다. 디지털카메라와 필름카메라는 이메일과 손편지만큼이나 다르기 때문에, 작가가 요즘 같은 시절에 이런 취향을 고수하기 위해서는 아마도 느림과 수고로움을 즐거움으로 여길 정도가 되지 않는다면 무척 힘든일이 될 것이다. 흑백사진을 찍는 이유에 대해 작가는 칼라사진이 자신에겐 너무 화려하다는 간결한 말로 갈음했지만, 나는 곧바로 의 사진집에서 읽은 작가의 글을 떠올렸다. 여기서 작가의 말을 빌려 표현해 보자면, ‘온통 회색빛 도시에서 유일하게 멋지고 생동감 넘치는 존재’들을 표현하고 싶을 때조차 그는 회색(흑백사진)을 택했다. 당시 그의 시도는 아마도 충분한 성취를 이룬 것 같아 보인다. 흑백사진 속의 아이들은 각자가 가진 색을 다채롭게 드러내고 있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흑백사진을 찍는 이유에 대한 작가의 담백한 답이 오히려 자부심의 언어에 가까운 것임을 이해했다.
긴장을 풀고 마치 여행을 떠나는 기분으로 박성진 작가의 작업을 바라보면서, 한편으로는 예전 작업에서 또렷한 시선으로 카메라를 의식하며 포즈를 취했던 그 아이들을 생각해보는 것이 무척 재미있다. 그것은 내게 오른쪽 눈과 왼쪽 눈을 동시에 뜨고서 대상을 바라볼 때에야 비로소 대상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을 떠올리게 한다. 무엇이 되었든, 좋은 작가가 가진 다양한 측면이 잘 표현된 형태로 우리에게 전해진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굉장히 다르다고 보이지만, 사실은 한결같은 진지한 고민과 열정이 담겨있다. 낯선 곳, 낯선 사람들 사이에 녹아들어 그들의 모습을 담아내면서 한편으로는 그 탐구를 통해 ‘나는 누구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포토그래퍼라니. 어쩌면 오래된 미신처럼 그의 사진은 영혼의 무게를 담고 있을 듯하다. /글. 화가 박주영
출처: 알떼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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