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도스
2021년 10월 6일 ~ 2021년 10월 12일
기억의 섬
갤러리 도스 큐레이터 김혜린
잊어버린 비밀번호를 찾고자 할 때 힌트로 제시되는 질문들이 있다. 회원가입을 할 때부터 가입자가 질문들 중 하나를 정하도록 되어 있으며 사이트마다 비슷하면서도 조금씩은 다르다. 그럼에도 질문의 성격은 바로 떠올릴 수 있을 만큼 단순한 것이어서 명확하고 강렬하게 자리 잡은 기억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장소에 대한 물음이다. 장소라는 것이 사람의 기억 그 자체이면서도 기억을 찾는 열쇠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장소에 대한 물음은 대부분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가 어디인지에 대한 것인데 가장 기억에 남을 만하기 위해서는 처음에 관여되거나 어린 시절부터 축적됨으로써 추억이 된 것이어야 한다. 박소현이 선택한 작품의 주제가 되는 놀이공원은 이 두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는 장소이다. 어릴 때 흔히들 가장 처음으로 부모님의 손을 잡고 놀러 가는 재밌는 곳이자 학생 때의 소풍 그리고 연인과의 데이트나 친구들과의 기분전환을 통해 기억 속에서 쌓이고 중첩되며 추억으로 남기 때문이다.
환상의 나라라는 캐치프레이즈에 맞게 어린아이의 눈으로 본 놀이공원은 마냥 환상적이다. 경쾌한 음악소리가 들리고 새콤달콤한 냄새에 홀리고 다채로운 빛깔의 거대한 놀이기구들이 아이의 눈을 사로잡는다. 어른의 눈에 비치는 놀이공원도 크게 다르지 않다. 놀이공원에 머무르는 시간 동안은 그들도 아이처럼 오감의 자극에 순수하고 명료하게 반응하게 된다. 아이들은 물론이고 추억을 찾아 온 성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다양한 사연의 사람들이 스치다가 놀이기구를 타기 위해 모이게 되고 기구에 몸을 싣고서는 긴장과 흥분을 공유한다. 어떤 이는 비명이 절로 나오는 놀이기구를 즐기기도 하고 어떤 이는 비교적 잔잔한 놀이기구를 선호한다. 여러 사람들의 제각기 다른 취향과 기호가 알록달록하고 왁자지껄한 놀이공원이라는 장소에 더욱 촘촘하고 섬세하게 흡착된다.
박소현이 작업하는 방식도 이와 맞닿아 있다. 그림이라는 것을 화학적으로 분석했을 때 지지체와 물감 그리고 접착제가 결합된 상태로 볼 수 있듯 작가는 자신의 기억과 추억 그리고 호분을 재료로써 결합시켜 발색을 달리한다. 이는 조개껍질로 만든 호분에 농도 진한 교반수를 넣어 반죽하듯 풍화된 오랜 기억과 강렬하게 파편화된 최근의 기억들에 놀이공원이라는 추억을 찬찬하고 세밀하게 중첩시켜 채색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게 호분을 통해 지우고 덮으면서 침착하게 작업하는 시간들은 작가에게 작품이라는 또 하나의 기억이자 기억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작가가 추구하는 캐치프레이즈가 기억인 만큼 누구에게나 있지만 모두에게 똑같을 수 없는 기억을 상기시킬 필요가 있다. 놀이공원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모습과 취향을 달리하지만 그들이 빼놓지 않고 하는 공통적인 선택이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제각기 다른 사람들은 꼭 한 번 회전목마와 대관람차에 탑승하게 된다. 그들은 대관람차에 탄 채 가장 높은 곳에서 놀이공원을 조망하고 회전목마에 탑승한 채 스치고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눈에 담는다. 그들의 시선에는 다양한 모습과 취향의 지나가는 사람들과 삶이 어리고 망막에는 사진을 찍으며 웃고 손을 흔들어 주는 이들이 맺힌다. 이처럼 움직임을 만드는 장소와 떠나가고 지나가는 무수한 것들은 낮의 활기와 밤의 고요함까지 수호하며 어떠한 새로운 것들을 창조한다. 그것이 바로 기억이고 추억이다.
기억과 추억은 누구나 갖고 있지만 모두에게 간직되었다고 해서 그것들이 전부 동일할 수는 없다. 놀이공원이라는 곳에서 자신이 바라보고 자신을 쳐다보는 사람들의 모습이 다 다르고 어릴 적과 어른이 되어서 느끼는 놀이기구의 감흥이 다르듯 말이다. 결론적으로 작가는 작품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기억해야 하고 무엇을 잊어가고 있는지에 대해 되짚을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당연시 여겨져 자신도 모르게 인식하지 못하게 된 것이 무엇인지 묻고 잊지 못할 기억을 소중히 여기고 추억하는 사랑스러운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싱그럽고 순수했던 시작과 그로부터 축적되고 엮여져 새 것까지 만들어 내는 역동성을 갖춘 놀이공원이라는 장소를 빌려온 덕분에 훨씬 더 수월해진다. 우리가 작품을 통해 환상적인 놀이공원의 모습을 대면하는 순간 우리는 환상이 아니게 된다. 환상의 나라가 아닌 기억의 섬에서 자신만의 기억과 추억을 인지하는 인간으로 실존한다. 온전히 자기 자신의 것으로 배양되고 성숙되는 자기 자신으로 서 있게 되는 것이다.
참여작가: 박소현
출처: 갤러리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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