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팩토리
2022년 10월 8일 ~ 2022년 10월 30일
전시 제목 380-750nm는 가시광선(visible light)의 파장으로, 인간의 눈으로 감지할 수 있는 전자기파의 범위이다. 우리는 빛이 사물로부터 반사된 것을 눈으로 보며, ‘본다’는 것은 ‘보이게 된 것’을 시지각적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박승혜 작가는 빛으로 인해 인식된 이미지와 물질적으로 구현된 회화적 이미지를 탐구하며, 스스로를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경계를 오가는 경계인으로 정의한다. 《380-750nm》는 박승혜 작가가 디지털 패널과 캔버스의 속성을 탐구하며 전개해 온 주요 작업들을 중심으로 가상과 현실에 대한 아이디어를 선보인다.
흰색과 회색의 격자무늬와 ‘없음'의 사물들
박승혜는 우리가 디지털로 인식하는 사회적 언어와 기호의 속성이 어떻게 시각체계와 연관이 있는지에 대해 탐구하고 전통적인 회화 기법으로 표현한다. 도시화 과정에서 급격히 변해가는 사물과 풍경의 모습을 그리기 시작한 작가는 디지털 이미지 편집과정의 어법을 회화에 도입했다. <None_1>(2017), <The Moment>(2020-) 연작과 같이, 건설현장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펜스, 컨테이너박스, 사다리, 방수포 등은 일시적으로 자리잡았다가 사라지는데, 이 사물들은 박승혜의 작업에서 흰색과 회색의 격자무늬의 ‘없음'으로 나타난다. 디지털 이미지와 소프트웨어에 익숙한 우리는 이 격자무늬를 ‘투명’, 또는 ‘없음’으로 쉽게 인식하고 적용하지만, 회화에서 격자무늬가 표현되기 위해서는 매우 정교한 붓질의 반복과 수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번의 삭제(delete)로 지워지는 대상을 그림으로써 ‘없음’으로 존재하게 된 사물의 역설이 드러난다. 격자무늬와 더불어, 스크린의 인공적인 색상을 풍경과 사물에 덧입힘으로써 현실에 존재했던 풍경을 가상의 이미지로 변환시키고, 그것을 다시 사실적으로 그려냄으로써 작가는 우리가 존재하는 실재와 가상의 경계가 흐려지는 상황을 제시한다.
RGB to CMYK, 빛의 영역에서 색의 영역으로
2017년부터 박승혜는 디지털 이미지가 스크리닝 되었을 때 발생하는 일시적인 오류를 디지털사회의 가벼움으로 전환한 <Spectrum> 연작을 진행해오고 있다. <Spectrum> 연작은 작가가 빔 프로젝터와 카메라를 사용하면서 발견한 가로의 색상패턴의 원리를 알아가는 과정이 담겨있다. 이미지를 빛으로 출력하는 빔 프로젝터의 스크린을 카메라로 연속 촬영하는 과정에서 R,G,B 세 가지 색상 컬러가 만들어내는 띠형태의 패턴을 발견했고, 이를 통해 디지털 장치로 만들어지는 빛의 스펙트럼이 시각적 교란을 일으키며 온전한 이미지처럼 보인다는 것을 알았다. 작가는 RGB 색패턴이 선명하게 보이는 사진을 선택해 회화로 표현하면서, 카메라로 포착한 이미지는 물감의 색으로 번역되고 빛의 색을 완전히 구현할 수 없는 오차의 지점을 발견하였다. 박승혜의 회화는 빛의 이미지와 색의 이미지 사이의 간극을 좁히려는 과정에서 매체의 시각적 교란, 온전히 번역할 수 없는 빛의 언어, 그리고 인공의 이미지로 가공되기에 한정적인 색의 물리적 한계까지 포개어지지 않는 두 개의 영역을 겹쳐보기에 탐닉한다.
무게없이 이동하는 이미지들
최근 작품에는 ‘정크 스페이스' 또는 ‘비장소'적인 요소가 기호로서 화면에 등장한다. <Moving Walkway>(2022)는 영국의 웨스트필드(Westfield) 쇼핑몰의 에스컬레이터를 촬영하고 그린 작업이다. 대표적인 비장소의 공간으로 정의되는 에스컬레이터의 컨베이어 벨트는 인간이 옮겨지고 효과적인 쇼핑을 도와주는 전형적인 현대의 산물이다. 또한 <Moving 1>(2022), <Moving 2>(2022)에 등장하는 나무는 <Spectrum#1>(2017), <Spectrum#5>(2020)에서 풍경 속의 사물로 존재하던 나무를 마치 클릭 한 번으로 선택된 이미지를 쉽게 옮기는 이미지 편집기술 속의 모습을 담고 있다.
현대의 빠른 속도와 변화를 자신만의 언어와 속도로 삼켜내는 작가의 눈과 마음은 캔버스에 현대화와 디지털의 풍경과 초상을 담고 완성하는 과정에서 잘 나타난다. 우리가 눈으로 알아챌 수 없게 늘 언제나 깜빡이며 존재하는 디지털 이미지의 현재성은 박승혜에게 일시적이고 덧없는 것이다. 또한 디지털 이미지와 세상에 열광하는 우리의 태도는 무게없는 사회에 순응하는 이에게 실재에 대한 감각을 재고한다.
글_김세희(전시 기획자), 이주연(옥상팩토리 어시스턴트 큐레이터)
참여작가: 박승혜
기획/글: 김세희, 이주연
설치/사진: 고정균
포스터: 마카다미아 오
출처: 옥상팩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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