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wisy
2024년 9월 21일 ~ 2024년 10월 25일
박우수리 작가의 개인전 《마카베아에게》가 오는 9월 21일부터 10월 25일까지 울산 Sywisy(씨위씨)에서 개최된다. 이번 전시는 브라질의 현대 소설가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단편 소설 『별의 시간』의 주인공인 마카베아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들로 구성된다.
전시는 작업한 드로잉, 페인팅, 설치 작품을 통해 박우수리 작가 특유의 작업 세계를 생동감 있게 보여준다. 작가는 문학 작품에서 얻은 영감을 드로잉으로 시작해 회화, 그리고 설치 작품으로 변주하는 작업 방식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의 특징은 가공의 화자를 등장시켜 마카베아에게 편지를 보내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박우수리 작가의 섬세하고 특유의 상상력으로 재탄생된 마카베아를 그리는 이야기는 관람자에게 현대 사회의 여성과 신체, 폭력, 욕망 등에 관한 새로운 감각을 제시하여 관람자의 사유를 확장한다. 이번 전시의 서문은 여성의 일상 경험이 다양한 예술 작품에서 어떻게 표현되고 해석되는지에 관해 천착해 온 평론가 김예솔비가 작성했다. 그의 시각은 박우수리 작가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풍부한 맥락을 제공한다.
박우수리 작가는 그동안 문학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시각 예술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지속해 왔다. 《교차된 운명의 숲 이야기》(2022), 《몽둥이와 흰 양의 관계》(2023) 등의 전시를 통해 문학과 미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독특한 작품 세계를 선보여 왔다.
이번 전시 《마카베아에게》는 박우수리 작가의 감각적인 드로잉이 회화・설치와 상호작용하는 메커니즘을 생동감 있게 전하는 전시로, 작가의 주된 작업 동력인 드로잉이 페인팅과 변주하여 설치로 확장하는 특유의 작업 세계를 면밀히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전시서문
뒤틀린 지상에서 온 편지
글 김예솔비
*소설 『별의 시간』의 결말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마카베아는 아마도 편지를 받아본 적 없을 것이다. 사무실 전화기조차도 그녀를 위해서 울리지 않는다. 누군가가 그녀를 원한다는 쾌감에 몸서리칠 기회는 그녀에게 허락되지 않는다. 그런 순간이 주어진다면 세상은 분명 그것이 착각이라고 반발하며 기쁨을 몰수할 것이고, 마카베아는 빼앗김을 당연하게, 심지어는 감사하며 받아들일 것이다. 무언가가 그녀를 향해 눈짓을 보낸다면 그것은 잘못 배달된 운명이거나, 죽음일 것이다. 지극히도 우연한 존재. 브라질 북동부의 척박한 땅에서 태어나 부모 없이 자란 여자. 리우데자네이루의 음습한 변두리에서 근근이 살아가는 타이피스트. 화산재처럼 건조하고 마른 몸, 풍만함과는 적대적인 몸. 물질적이고 정서적인 조건들의 지나친 부족함 속에서 살았던 마카베아는 그러한 결핍 속에서 무수한 현재를 각오했기에 오히려 살아 있음의 충만함만으로 요동치는 존재이기도 하다. 마카베아는 “그 메마른 몸속에 놀라울 정도로 엄청난,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생명력과 혼자서 수태해 임신한 여자만이 가질 법한 풍요로움을 지니고 있었다.”[1]
전시의 제목인 《마카베아에게》는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소설 『별의 시간』(2023)에서 화자가 쓰는 소설의 주인공 ‘마카베아’로부터 온 것이다.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전시는 마카베아에게 보내는 편지의 형식을 취한다. 이 편지는 메마르게 살면서도 단순한 행복을 좇았던 삶의 주인인 한 여성에게 바치는 헌사이자 동시대의 여성으로 살고 있는 작가가 청하는 우정의 고백이다. 물론 이것은 마카베아에게 무조건적인 희망을 선사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마카베아에게 편지를 보낼 수 있는 시공간의 질서로 세계를 재편하는 일에 가깝다. 늘 ‘없음’ 속에서 살았던 마카베아에게 살아 있기란 죽음과 다름없는 상태였으며 그녀에게는 생과 죽음의 긴장이 반전된 방식으로 작동한다. 그녀는 찌를듯한 허기를 통해 자신의 몸을 날카롭게 느끼고, 누구도 그녀를 욕망하지 않는다는 사실과의 관계 속에서 영원히 충족되지 않는 내적 욕망의 외연을 넓힌다. 풀처럼 특색 없고 투박한 그녀의 삶은 주류적인 욕망이나 기존의 생사 법칙에서 생존할 수 없는 모든 소외된 존재들, 출신과 소속 없는 잡종들이 기거할 수 있는 교차적 터전이 된다. 그렇기에 ‘마카베아에게’ 편지를 보낸다는 것은 ‘마카베아들’을 호명하는 것이자 마카베아의 섹슈얼리티를 남성이 원하는 성적 대상이 아니라 “유동적이고 탈안정화하며 스스로를 분명히 표출하는 여성적인 힘”[2]으로서 다시 발견하려는 요청이다.
박우수리 작가는 이탈로 칼비노의 『교차된 운명의 성』(1973)에서 파생된 전시 《교차된 운명의 숲 이야기》(2022), 크리스티나 페리 로시의 『고집스런 양 한 마리』(1992)에서 착상을 얻은 전시 《몽둥이와 흰 양의 관계》(2023)에 이어 《마카베아에게》에서도 문학을 전시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작가의 작업은 소설과 소설의 잔상을 잠재적인 드로잉의 재료들로 활용한 뒤, 미처 해소되지 않는 부분을 페인팅으로 그려 넣는 순서로 이루어진다. 이 방법론은 단순히 문학적 상상력을 회화로 시각화하는 매체적 번안에 그치지 않는다. 《마카베아에게》가 시도하는 ‘형상화’는 소설의 감각을 이미지로 구현하는 것뿐 아니라, 말 그대로 마카베아를 죽음이라는 운명의 절차로부터 구해내 그녀를 되살리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소설의 결말부에서 마카베아는 자신의 미래를 점치는 순간 현재의 충만함이 빠져나가고 불행이 자리 잡았음을 느낀다. 예언가가 운명의 상대라고 말한 부유하고 잘생긴 외국인 남자가 모는 검은 벤츠가 나타나고, 차는 그녀를 치고 지나간다. 가장 사나운 방식으로 마카베아에게 현재를 되돌려주기 위해 미래가 돌진해 온 것이다. 비극적인 죽음의 순간을 《마카베아에게》는 “지금이야, 빨리, 내 차례야”라는 주체적인 욕망으로 읽을 것을 제안한다. 허구를 바탕으로 한 상상은 그녀의 죽음을 유예하는 동시에 그것이 최종 장이 아님을 설득한다. 작가는 이 결정적인 순간에서 운명의 대
상인 남자가 아닌 자동차를 주목하고, 검은 벤츠를 포르셰로 변형한다. 《마카베아에게》의 드로잉과 페인팅에서는 소설과 환상이 결합하고 자동차의 바퀴, 실린더, 고무, 부품과 마카베아의 장기가 가까이 맞붙는다. 폭력을 가하는 대상과 당하는 연약한 신체라는 고정된 관계가 다시 쓰이는 마카베아의 몸은 공상과학적 장르로 급진화된다. 이는 지배적 구조로부터 탈동일시화된 대안적 상상의 세계를 통해 지금-여기에 대한 인식적 통찰을 유도하는 전략이며, 내적인 자유와 상상의 변혁적 힘, 그리고 억압에서 벗어난 해방의 감각을 억누르지 않고 향유하게끔 하는 표현이다.[3]
마카베아는 되살아난다. 아니, 그녀는 죽음이라는 표현에 매달린 충격을 흡수한 뒤 그녀를 초과하는 무언가를 연결하고 작동시키는 부품의 접합부가 되기를 염원한다. 그러한 간절함을 죽음이라고 축약해서는 안 될 것이다. 죽음이 그녀를 모욕한다면 현재는 죽음을 압도하는 사나움이다. 현재는 언제나 그런 모습으로 서 있을 것이다-자궁과 심장이 강조된 여자의 뒷모습으로. 그를 보지 않고서 마카베아를 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마카베아에게》에서 마카베아는 당연시된 감각과 보기를 재편하고, 불가능성 속에서 욕망하는 모든 연약한 존재들을 위한 뒤집힌 세계의 대리자로서 소환된다. 우리는 모두 공범이 되기를 소망한다. 그것이 설령 불가능하거나, 매번 무너져 내리더라도. 이곳은 한껏 뒤틀려 있지만 여전히 지상이며, 우리가 서로의 격정을 알아차릴 수 있는 유일한 장소다.
[1]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별의 시간』 [전자버전], 민승남 옮김, 을유문화사, 2023, p. 79.
[2] 로지 브라이도티, 『포스트휴먼 페미니즘 :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변혁의 힘』, 윤조원×이현재×박미선 옮김, 아카넷, 2024, p. 320.
[3] 같은 책, pp. 378-379.
참여작가: 박우수리
전시 서문: 김예솔비
공간 협력: Sywi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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