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2022년 12월 17일 ~ 2023년 2월 18일
동시대 미술의 다양한 경향과 실천을 선보이고자 문을 연 봄화랑은 2022년의 마지막 전시로 박형지(1977년 생)와 이은영(1982년 생)의 2인전 《돌도둑/이야기/그림/책》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서 박형지와 이은영은 각각 회화와 드로잉 작업을 통해 문이 잠긴 정원에서 사라진 돌에 대한 이미지를 추적한다. 이은영은 그간 종종 선보여왔던 드로잉들을 책의 형식으로 묶어냈고, 도자를 기반으로 하는 조각 작품을 함께 선보인다. 박형지는 ‘실패와 망치기’라는 과정을 거쳐 완성한 회화들로써 이은영의 작업에 호응한다.
전시를 구성하는 작품들 안에서 돌은 하나의 대상이지만 한편으로는 비어 있는 대상이다.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돌은 단단한 사물이기 보다는 말랑말랑한 개념과 같이 다뤄진다. 이은영의 드로잉북 안에서는 얼룩덜룩하고 박형지의 회화 안에서는 울퉁불퉁하다. 심지어 박형지의 회화 안에서, 사라진 돌은 돌도둑 그 자신이기도 하다. 자유롭게 변신 당하고 이동 당하는, 비어 있고 유동적인 대상인 셈이다. 결국 돌은 정말로 사라지고, 두 작가가 각자의 시선과 태도로 사라진 돌을 추적하는 방식이야 말로 우리가 주목해야할 지점으로써 부상한다. 그리고 동시에, 캔버스 화면에 그려진 그림이 보여주는 혹은 낱낱의 드로잉들이 엮여 있는 책이 펼쳐내는 비선형적 서사들의 교차에 이번 전시의 초점이 맞춰져 있음이 어렴풋이 드러난다.
하지만 서사의 출발점은 동일했으나 두 작가가 이를 다루는 방식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박형지는 회화 내부와 외부 모두의 방향으로 서사의 외연을 확장한다. 실재하는 단 하나의 장면은 ‘돌이 사라진 정원’이지만 그의 회화가 포착한 장면들은 <돌이 있는 정원>과 <다른 정원으로 간 돌 I>, 그리고 그 누구도 본적 없는 <돌도둑 II>이다. 수많은 실패와 망치기 끝에 만들어진 울퉁불퉁한 회화 표면이 작품 내부에 존재하는 다양한 층위를 상상하게 하듯, 그가 포착한 장면들은 작품 외부에 존재하는 또다른 서사의 가능성을 상상하게끔 우리를 이끈다. 한편, 이은영은 도둑의 시선을 쫓는다. 작품의 제목 <아주 짧은 산책길에 본 얼룩돌>의 주체는 어쩔 수 없이 돌도둑 그 자신이다. 즉, 비어 있는 대상을 욕망하는 자가 바라본 풍경에 대한 드로잉들이다. 드로잉북을 가득 채운 대상을 탐닉하는 듯한 필체와 분절되어 있는 장면의 연속 또한 이에 상응한다. 돌(도자)에 각인된(그려진) 돌들의 정원이 돌도둑/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상징하는 풍경처럼 보여지는 이유 또한 같은 맥락일 테다.
정원에서 사라진 돌에 대한 두 작가의 가벼운 대화에서 시작된 이번 전시는, 이렇듯 안과 밖 모두의 방향으로 확장되는 이미지-서사의 가능성을 펼쳐 놓는다. 느긋하고 세심한 관람자에 의해 이 모든 가능성들이 더욱 풍성해지기를 기대한다.
박형지는 ‘실패와 망치기’라는 독특한 제스처로 기존 회화 전통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일상에서의 사건과 감각을 바탕으로, 그리고 지우는 과정을 반복함으로써 만들어낸 불연속적인 화면을 통해 새로운 회화적 문맥을 만들어낸다. 홍익대학교 회화과 학사 졸업 후 한국예술종합교 조형예술과에서 예술전문사, 영국 런던의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에서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이후 영국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해링턴 밀 스튜디오(2010, 노팅엄), 네스트 갤러리(2011, 제네바)에서 개인전을 개최하였으며,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서울에서 거주 및 작업하며 현재까지 다양한 전시 및 프로젝트에 참여해오고 있다. 아트선재센터(2013, 서울), 커먼센터(2014, 서울), 하이트컬렉션(2015, 2018, 2021, 서울), 아트스페이스3(2019, 2022, 서울), 디스위켄드룸(2020, 2022, 서울) 등에서의 단체전에 참여했으며, 갤러리175(2012, 서울), 통의동 보안여관(2018, 서울), 플레이스막(2020, 2022, 서울), 디스위켄드룸(2021, 서울)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서울시립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이은영은 시적 은유와 공감각적 시각화라는 다층적 탐구를 통해 실제 했으나 사라진 것에 대한 심상을 조형화하는 방식과 그 의미를 탐색한다. 도자를 중심으로 한 조각, 설치 작업과 더불어 감각적인 필체의 드로잉에 의한 비선형적인 서사의 발생 가능성에 주목하다. 영남대학교에서 미술학부 서양화 전공, 프랑스 니스의 빌라 아르송 국립고등미술학교에서 학사와 석사과정을 졸업한 후 스위스 제네바의 고등미술디자인학교에서 CERCCO 석사연구과정을 마치고 2015년 한국으로 돌아와 현재 서울에서 거주 및 작업 중이다. 리씨뇰-슈발리에 갈랑드 기금(2013, 제네바 현대미술재단), OCI Young Creatives(2015, OCI미술관), 하정웅 청년작가(2018, 광주시립미술관) 등에 선정되었으며, 국내외에서 다양한 단체전 참여와 함께 팔레 드 라테네(2015, 제네바), OCI미술관(2016, 서울), 인사미술공간(2018, 서울), 아마도예술공간(2019, 서울), 봄화랑(2021, 서울)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제네바 현대미술재단과 OCI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참여작가: 박형지, 이은영
출처: 봄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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