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현문
2024년 11월 8일 ~ 2024년 12월 10일
[전시 서문] 푸른 멍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영화, 사진이론가이자 역사철학자인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S. Kracauer)는 오래된 할머니의 사진이 낯선 두려움(uncanny)의 감정을 자아낸다고 말한다. 현재의 모습과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사진 속 젊은 시절의 할머니는 시종일관 웃고 있다. 어딘지 모르게 닮았지만 전혀 다른 모습, 환하게 웃고 있는 그 모습이 가리키는 것은 무엇일까. 크라카우어는 사진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과 함께 할머니의 “사진 속 미소는 삶으로부터 추출된 것이지만 그것은 더 이상 삶을 가리키지 않는다”*고 적었다. 삶을 가리키지 않는 미소, 사진 속 미소는 그 안에 박제된 시간 속에 영원히 봉인되어 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사진이 가지는 특징이다.
배지인은 이를 중첩시켜 그림으로 옮기는 작업을 시도한다. 그의 그림은 가족사진에서부터 출발하는데, 작가 자신 혹은 누군가의 유년기가 담긴 어린 시절의 사진들이 여러 겹으로 포개어져 나타난다. 크라카우어가 바라보았던 할머니의 젊은 시절 사진처럼, 과거의 시간이 그대로 봉인되어 있는 이 낡은 가족사진들은 어딘지 모르게 불안감을 야기한다. 그것은 아마도 시간이 외면한 사진 속 자신과 현재의 자신 사이에서 비롯된 간극이자 괴리에서 발생할 것이다. 이 간극의 틈새에서 낯선 두려움의 감정이 싹튼다. 더욱이 사진은 카메라 렌즈의 위치나 각도에 따라 피사체의 선명도가 결정되는 반면, 그의 그림은 오로지 작가의 작위적 선택으로 인해 흐리거나 선명하거나 그 정도를 달리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때때로 뿌옇게 표현된 얼굴들, 푸르스름한 색감이 더해진 배지인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왠지 모를 그리움과 알 수 없는 불안이 함께 나타난다.
어느새 나조차도 너무 낯선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 지금과 사뭇 다른 젊은 시절 부모의 모습, 그리고 이제는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에서 작가가 찾아낸 것은 파편화된 기억의 잔상이다. 시간이 멈춘 자리에는 기억이 들어서기 때문이다. 시간과 기억의 술래잡기는 영원히 끝나지 않고 지속되지만, 우리는 사진을 통해 이들의 어느 순간을 포착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놀이의 마지막 승자가 누구일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작가는 이 술래잡기에 동참하듯 사진을 선택하고 이를 화면에 옮긴다. 그가 여러 장의 사진들을 한 화면에 옮기는 순간부터, 사진에 박제된 시간이 하나의 기억이 되어 다시 그에게 돌아온다. 사진의 장면들을 엮어 직조한 화면은 여러 겹의 기억이 중첩되어 나타난다. 이러한 기억은 때로는 달지만 때로는 아프고, 때로는 아련하지만 지극히 무심하고, 무심하다. 가족사진의 어느 장면들이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안식처라기보다, 다시는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음을 상기할 뿐이다. 과거에 매몰된 개인은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것일까, 그때를 잊고 싶은 것일까. 배지인에게는 이러한 과거에 대한 향수가 푸른 멍처럼 남아있다.
언제부터 있었던 건지, 어디서 부딪힌 건지조차 기억나지 않는 멍 자국은 시퍼런 잔상처럼 꽤 오랜 시간 동안 몸에 흔적을 남긴다. 그렇게 생긴 멍은 의식도 하지 못할 만큼 아프지 않을 때도 있지만, 또 어느 때에는 살짝 건들이기만 해도 그곳이 몹시 쓰리다. 이는 마치 기억처럼, 언제부터 있었던 건지 어디서 생긴 건지조차 자신도 알 수 없지만 어느 때에는 조용히 사라지기도 하고, 또 어느 때에는 지독히도 오랫동안 남아서 자신을 괴롭힌다. 배지인은 이런 푸른 멍을 그림으로 옮긴다. 언제부터 있었던 건지도,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도 모를 기억을 담아 잔상처럼 흐트러뜨리고 멍처럼 푸르스름한 색감으로 화면을 덮는다. 그는 이 푸른 멍을 “온전한 어른이 되지 못한 불안”의 표현이라 말한다. 푸른 멍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글 이슬비, 독립큐레이터, 미학관 디렉터)
*Siegfried Kracauer, "Photo", in The Mass Ornament: Weimar Essays, trans. Thomas Y. Levin, Cambridge, Mass.: Harvard University Press, 1995. p.48.
때
전시 : 2024. 11. 8. ― 12. 10.
권민경 시 낭독 : 2024. 11. 8. 17:00―18:00
곳
소현문 (수원 팔달구 월드컵로357번길11-20)
위아워스(수원 팔달구 월드컵로357번길11-21)
바르토스 커피 랩 (수원 팔달구 세지로 442)
운영시간
소현문: 12:00―19:00, 매주 수요일 쉼
바르토스 커피 랩: 08:30―19:00, 매주 일요일 쉼
위아워스: 11:30―17:00, 매주 월요일 쉼
시 낭독
권민경
글
이슬비, 배지인
사진기록
양이언, 김해찬
주최
소현문
주관
배지인, 백림기획, 마음랩
포스터 디자인
PPG
큐레이팅
백필균
전시 매니징
김해찬
협력
바리토스커피랩, 위아워스
후원
경기도, 경기문화재단
*전시 제목에서 권민경의 시 「팀파니 연주자여 내게 사랑을」 (『온갖 열망이 온갖 실수가』, 2024, 문학동네) 구절을 인용했다.
* 아트바바에 등록된 모든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
운영시간
월요일 12:00 - 18:00
화요일 12:00 - 18:00
수요일 휴관
목요일 12:00 - 18:00
금요일 12:00 - 18:00
토요일 12:00 - 18:00
일요일 12:00 - 18:00
휴관: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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