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움미술관
2006년 6월 22일 ~ 2006년 9월 10일
전시전경 ⓒ삼성미술관 리움
<백남준에 대한 경의>는 지난 1월 29일 향년 74세로 타계한 故백남준선생을 기리기 위해 삼성미술관 Leeum의 소장품으로 구성한 특별전시이다. 대중매체의 테크놀로지를 미학의 관점에서 재해석하여 현대미술의 역사에 중요한 전기를 마련한 백남준선생은 1980년대 초반부터 아티스트와 후원자 관계로 삼성과 특별한 관계를 이어 온 까닭에 그의 갑작스런 타계 소식은 큰 충격과 안타까움이 아닐 수 없었다. 이에 Leeum은 작은 전시로나마 그와의 인연을 회고하고자 한다.
한국에서 음악공부를 시작했던 백남준 선생은 일본을 거쳐 1956년 독일에 유학하여 아방가르드 음악과 퍼포먼스를 본격적으로 연구했다. 당시 서구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플럭서스 (Fluxus)운동에 가담한 그는 '동양에서 온 테러리스트'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탁월한 퍼포먼스를 실행, 유럽 전위예술계의 총아가 된다. 예술의 관습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정신은 1964년 뉴욕으로 이주한 이후에도 첼리스트 샬롯 무어맨과의 협력을 통해 지속되었으며 일생을 통해 그의 작품세계의 근간이 된다.
TV와 비디오를 예술매체로 활용한 그의 혁명적인 실험은 1963년 그의 첫 개인전 <음악의 전시-전자 텔레비전>에서 시작되어 오늘날 비디오 아트의 눈부신 발전에 기여했다. 관객과의 상호작용을 추구하는 그의 예술세계는 현대미술의 화두를 일찌감치 제시하고 실현한 선구적인 업적이라 할 수 있으며 1980년대의 위성 프로젝트를 통해서는 정보와 예술의 민주적 향유라는 인류의 이상을 실현했다. 그는 말년에 가장 순수한 인공광원이라 할 수 있는 레이저 작업을 통해 21세기의 새로운 매체 예술을 제안하기도 했다.
비디오아트의 창시자로서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가의 한 사람이었던 백남준 선생은 세계 예술의 중심지에서 인류의 문명에 대해 숙고하며 당대의 첨단 매체에 주목한 전위예술가였음에도 불구하고 사고의 근원에 늘 동양사상을 간직하고 있었다. 기계와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파악하고 삶과 죽음이 연결돼 있다고 생각한 그의 동양적 세계관은 테크놀로지 아트의 한계를 극복한 것으로 평가된다. 늘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삶과 죽음에 대해 유쾌하게 명상했던 그를 기리며 이 전시는 '생명의 탄생과 소멸, 그리고 그 이후'라는 이야기 구조 속에서 소장품 14점을 소개한다.
전 생애를 통해 전위예술의 모험에 온전히 헌신할 수 있었던 행운아이자 이상주의자였던 백남준 선생의 명복을 빈다.

20세기를 위한 32대의 자동차 - 모짜르트의 진혼곡을 조용히 연주하며 (일부)
32 Cars for the 20th Century-Play Mozart`s Requiem Quietly (8 cars)
1997_자동차 8대, 오디오 기기, CD 1개_크기가변
백남준은 자본주의의 팽창과 테크놀로지에 대한 맹신을 경계하고 비판하면서 대신 인간과의 상호작용과 소통이 가능하고 유기적인 자연과 교루할 수 있는 매체를 추구해 왔다. 1997년 독일 뮌스터의 조각 프로젝트에 출품되었던 이 작품은 쇠와 중력, 하드웨어를 중심으로 하는 20세기 문명의 종말을 선언한 작품이다. 작품의 구성은 1924년형 윌리 자동차로부터 1959년형 뷰익에 이르기까지 20세기 테크놀로지의 발전사를 증명한다고 할 수 있는 자동차 32대로 되어 있다. 작가는 20세기의 문화의 대표적인 특징을 조직적인 폭력과 대중매체, 그리고 자동차 물신숭배로 정의한 바 있는데, 이 작품에서는 그중 자동차를 작품의 소재로 채택한 것이다. 백남준은 자동차의 표면을 은색의 도료로 칠한 뒤 8대씩 짝을 지어 원형, V형, X형, 지그재그형으로 배치함으로써 본래의 기능을 박탈당한 채 장식적인 오브제로 치환된 모습을 제시했다. 또한 자동차의 내부에는 폐기처분된 TV 모니터를 쌓아 놓고 모차르트의 진혼곡을 연주함으로써 20세기의 문명과 기술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개진 하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원형을 구성하는 9대의 자동차만을 선보인다.

TV Fish
1994_어항, 물고기, TV 6대, 1 채널 비디오_184x312x70cm
백남준은 1950년대 말에 만난 존 케이지를 통해 서구문명의 대안으로서 동양의 선불교를 새롭게 인식하게 된 것처럼, 1960년대에는 미국의 철학자 노버트 위너의 매체철학에 심취하면서 기술을 인간화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데 몰두하게 되었다. 백남준의 작품들 중 걸작으로 손꼽히는 것들은 모두 매체의 형식적 특성과 진보성을 보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 및 자연과의 동화를 추구한 것들이다. 그중 는 어른의 가슴 높이까지 오는 기단 위에 줄지어 TV를 배치한 후 그 앞에 물고기가 든 어항을 놓아 비디오 이미지에 공간적 깊이를 부여하고 더 나아가 기계적 이미지를 자연적이며 실제적인 것들로 변화시켰다. TV모니터에서 방영되는 것은 각양각색의 이미지들이 빠른 편집으로 콜라주된 이미지들이다. 이들은 실제 어항속에서 유영하는 물고기와 상호 작용함으로써 더욱 역동적이고 추상적인 이미지로 전환된다.

나의 파우스트 - 인구 My Faust-Population
1989-91_3채널 비디오 조각, 모니터 25개_260x144x85cm
아상블라주 (Assemblage) TV조각인 <나의 파우스트> 연작은 TV수상기를 일상적인 가구나 오브제 등과 결합하여 새로운 비디오아트의 영역을 개척한 백남준의 창조적 역량을 종합적으로 집대성한 대작이라고 할 수 있다. 백남준은 <나의 파우스트> 연작에서 우리 시대의 12가지 문제점을 환경, 농업, 경제학, 인구 민족주의, 연혼성, 건강, 예술, 교육, 교통, 통신, 연구와 개발이라고 진단하였다. 여기에 마지막으로 자서전을 추가하여 기술과 예술이 접목된 현대 사회 속 자신의 모습을 반영하였다. <나의 파우스트> 연작 13점은 모두 뾰족한 탑 모양의 구조물 안에 TV 모니터를 쌓아 올린 동일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전체 형상은 첨탐이 달린 고딕 성당의 외관을 닮았으며, 세부 디테일은 성당 내부의 제단이나 화랑을 장식하는 교회 건축의 장식적 디자인을 조합하였다. 이것은 전통 문화에 대한 향수 어린 찬미로서 과거 건축의 잔재를 복구하려는 신고전주의 경향에 따른 포스트 모던한 유희로 볼 수 있다. 백남준은 각양각색의 오브제와 모니터로 제단을 뒤덮어 교회 건축의 원래 구조를 파편화 시킨다. 각각의 작품은 기술이라는 새로운 종교로 찬미되는 현대문화의 신고전 주의 취향과 키치적인 모조품으로 재구성 되었다.

스키타이 왕 단군 Tangun, as a Scythian King
1993_구형 TV 캐비닛, 철_300x170x210cm
테크놀로지 개발과 관련해서 인류가 공통적으로 갖는 관심이 있다면 그것은 테크놀로지가 지능이나 감성 면에서 어떻게 인간과 유사해 질 수 있는가의 문제일 것이며, 과학자들은 사이보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로봇을 개발해 왔다. 백남준의 로봇 개발은 1964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제 2회 아방가르드 페스티벌에 출연한 K-456로봇은 걷고 말하고 노래하며 배설도 하는 것으로 20채널 짜리 라디오로 조정되는 것이었다. 1986년 이후 신시네티의 칼 솔웨이 화랑과 공동 개발한 로봇들은 테크놀로지의 부산물을 이용해서 만든 것으로 형상의 측면에서 개별적인 인간들의 나이나 성별, 그리고 각자의 개성을 얼마나 차별적으로 표현하는가의 문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낡은 라디오나 TV의 겉 케이스를 조합해서 만든 인물상 속에 풍부한 표현력과 익살을 담은 그의 로봇작품들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이어, 부모, 삼촌, 이모, 아기를 포함하는 <로봇가족 연작>으로 발표 되었는데 이 연작은 한국의 대가족사회에 존재하는 가족 관념을 뚜렷이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후 역사적으로 사회적으로 유명한 위인이나 자신과 가까웠던 지인들의 초상으로 발전하게 되는데, <스키타이 왕 단군>은 제 45회 베니스 비엔날레의 독일관에 출품되었던 작품으로 <선덕여왕> <장영실> 과 같은 한국적 소재를 모티프로 한 작품들 중 하나이다. 스키타이 족의 왕으로 표현된 단군은 커다란 눈과 지팡이, 표현적인 순간의 제스처를 통해 역사적 인물에 대한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을 보여준다.

보이스의 자동차: 나는 에스키모, 카자크는 한국
Beuys Car (+30): I am Eskimo, Khazaks are Koreans
1995_VW 버스 1대, TV 18대, 3채널 비디오, 케이블 박스, 디스크 박스 외 1_190x280x720cm
이 작품은 작은 버스의 열려진 뒷 문에서 여러대의 모니터가 밖으로 나와 설치되는 작품으로 그 각각의 모니터에는 요셉 보이스의 모습이 동영상으로 나타난다. 현대미술사에서 또 하나의 큰 별이었던 보이스는 2차 세계대전 중 공군기 조종사로 출정했다가 추락하는 비운을 맞았지만 몽고족의 일족인 타타르인들에게 극적으로 구조되어 인위적인 약물없이 온몸에 지방을 바르고 담요를 감은 채 수일 간을 극진히 간호받음으로서 생명을 구하게 된다. 이때의 경험은 그의 전 생애와 예술세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 보이스는 미술을 인류를 치유하고 구원할 수 있는 도구로 생각했으며, 미술과는 치유와 구원의 영매인 무당 (샤먼)과 같은 존재라고 설파해싿. 백남준은 무명시절에 보이스를 만나 이후 지속적으로 깊은 우정을 나누면서 함께 공연을 했고, 정신적 유대관계를 이어 왔었다. 보이스 이후 백남준은 샤머니즘적 방법론으로 그를 추모하는 퍼포먼스를 여러 차례 행한 바 있다. 이 작품에서 요셉 보이스와의 깊은 정신적 유대감은 버스가 상징하는 이동의 의미 속에 표현되어 있으며, 보이스를 기념하는 비디오 프로젝션은 지난 세월 동안 예술적 동료로서 교류했던 그를 추모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알 Egg
1994_폐쇄회로 비디오 및 1채널 비디오 설치, 알, TV 15대, 비디오 카메라 1대, 조명 1대_300x1000x300cm
비디오 아트란 본질적으로 시간을 매개로 하여 성립되는 분야인 만큼 백남준은 시간이라는 주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표명해 왔다. 그는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시간을 효과적으로 시각화하기 위해 달이나 알처럼 성장하고 변화하는 대상에 주목했는데, 결과적으로 이 작품들은 흔히 테크놀로지 아트에서는 기대하기 힘들었던 사물의 존재론에 대한 철학적인 통찰을 보여 준다. 이 작품은 초생달에서 만월에 이르기까지 12단계의 달의 크기 변화를 비디오로 연출한 <달은 가장 오래 된 텔리비전이다>와 같은 맥락에 속하는 작품으로 일련의 모니터들이 기단 위에 올려져 있고, 그 첫번째 모니터에는 실제 알 하나를 폐쇄 회로 카메라가 찍은 이미지가 나타내며 그 다음 모니터부터 마치 알의 속을 들여다 본 것 같은 이미지가 동영상으로 나타나는 작품이다. 마치 자궁 속의 태아의 성장처럼 한 생명이 잉태되고 자라나는 것을 여성의 몸의 움직임으로 표현한 이 작품은 작가가 매우 서정적이고 시적인 정신세계를 보여 주며 백남준의 예술철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간화된 기술'의 전형을 보여 주고 있다.
출처 : 삼성미술관 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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