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H
2023년 1월 2일 ~ 2023년 1월 15일
드러나지 않는 것에 대하여.
드러난 것과 드러나지 않는 것에 대해 오랜 시간 고민을 해왔다. 드러난 것은 절대 우위를 가진 선이며, 화려하다. 드러나지 않는 것은 비가시적이며, 무형의 영역으로 언제든 전복되고 소멸 되어질 수 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영역 안, 여러 위치에서 드러난 채로 또는 드러나지 않은 채로 존재하고 있다. 무수히 많은, 드러난 것들과 그 부산물로 범람된 세계에서 우리의 감각은 그것에 집중되어 있으며, 그 너머에 것에는 무감각해지며 분별력을 상실해간다.
어떤 사건에 대한 결과가 나오기까지, 드러나지 않는 이면의 물리적 시간과 행위는 늘 존재하며 필수불가결하다. 그것은 불안과 불안정한 상태의 지속이며, 방향성을 잃은 무질서한 응축된 빛과도 같다. 따라서 언제든 강렬하고 거대한 빛으로 전환될 수 있다.
이미 발생된 결과만 선별하고 받아들이기에도 우리의 현재는 차고 넘치며, 그 너머에 것을 들여다 볼 여유와 당위성이 부족하다. 모든 시간과 행위가 항상 사건이나 결과로 이어지 않기에, 효율과 합리로 점철되는 이 세계에서는 그 너머를 들여다 볼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드러남이라는 임계점을 넘지 못하는 과정은 무의미한 행위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적어도 질문을 던지는 자들에게는 말이다.
합리적 관점이 적용되지 않는 세계에서 그렇지 않은 존재로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야 하며, 거부할지언정 포기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익숙함과 안도감을 위해 모든 것을 규정하고, 정립하려는 합리적 이해를 시도하는 의지를 벗어나 보이지 않는 사건의 지평선 그 너머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경계 그 너머를 본 다는 것은 굉장히 예민하고, 미세한 감각이 요구될 것이다. 그것은 비가시적이며, 존재가 희미하며, 불명확하다.
따라서 그것을 기존의 기준과 경험으로 접근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무의미한 행동일 것이다. 오히려 그것들과 의식적으로 이별할 때 진정한 즐거움과 경험하지 못했던 낯섦과 조우할 수 있을 것이다.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은 지구과학 용어로, 어떤 지점에서 일어난 사건이 어느 영역 바깥쪽에 있는 관측자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시공간 영역의 경계를 일컫는 말이다. 이는 참여작가들이, 현재 신진작가가 아닌 미술대 학생으로서 존재하며 경계 너머에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행하고 있는 현재와 닮아있다.
참여작가들은 전통적인 미술학과 출신이다. 점차 현대미술에서 그 역할과 관심이 축소되는 전통적인 학과 출신의 창작자들로서, 전통적인 재료와 표현기법부터 현대적인 재료와 새로운 표현 방법까지 상대적으로 더 많은 방법론과 형식을 접하고 수확한 그들의 고민과 예술에 대한 깊이를 볼 수 있다. 전통을 기반으로 하는 다양한 형식과 창조적 사고로 현대미술에 대한 참신한 해석과 차별화 된 아우라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전시는 주로 캔버스, 나무, 돌, 세라믹, 금속, 테라코타와 같은 전통적인 매체와 현대미술에서 흔히 보이는 다양한 매체가 적절히 융합되고 혼합, 합성된 작품들로 구성된다.
강대선은 인류가 존재하는 순간부터 함께 했던 유희의 가변성에 주목하며, 그것을 현대와 연결하여 놀이와 다른 요소의 결합 및 충돌되는 접점을 시각화하며, 김가은은 도시공간에서 감지한 기이한 감각을 인공구조물을 활용하고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우리가 간과한 지점을 상기하게 한다. 김도연은 각자가 주어진 고유한 특성과 환경에 의해 형성된 내면에 대해 연구하며, 그것으로 경험되는 다양한 현상과 관계에 대해 이야기 하고, 배윤재는 정신적인 생명의 기능을 심리적인 요인으로 재해석하고 추상적으로 각색한 인체의 기관을 설치와 조각으로 연출한다. 양수비는 감정의 정립과 수치화라는 지점에서 비가시적 요소를 시각화하고 있으며, 비가시적인 영역을 은유적으로 인공물과 자연물에 빗대어 표현하고 있다. 이민수는 동시대에 나타나는 사고의 부재현상을 주체성 회복이라는 본인만의 개입을 통해 진정한 소통에 대해 이야기 하며, 장도휘는 스스로 창조한 세계관의 주인공으로 존재하며, 그곳에 발생되는 다양한 서사를 조각과 회화로 시각화한다.
이번 전시는 일종의 계기이며, 사건을 만드는 행위로 의미를 가진다. 어떠한 것도 가능하고, 어떻게든 형성될 수 있는 이들에게 일련의 자극을 주기 위함이다. 그것의 결과가 드러나게 될 것인지, 드러나지 않게 될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으며, 그것을 통한 진정한 창조적 존재가 되는 것에 기능을 하며, 그 외에는 그들의 몫이다. 우리는 다만 그 자극의 동참하는 주도자로서 존재하며 차분히 경계 그 너머를 들여다보면 된다.
다만, 전시를 통해 사건의 지평선을 허물고 그 경계를 넘어서 작가로서 긍정적인 영향력과 파장이 흘러가기를 바랄 뿐이며, 적어도 이들이 창조적 존재로서 점차 엔트로피의 감소로 이어지는 초과학적인 중요한 시작점이 되기를 희망한다.
글 이지훈(성신여자대)
참여작가: 강대선, 김가은, 김도연, 배윤재, 양수비, 이민수, 장도휘
기획: 이지훈
주최/주관: 갤러리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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