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리지갤러리
2026년 10월 7일 ~ 2026년 11월 21일
서해영은 조각을 하나의 조형 언어로 다루는 동시에 ‘조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질문을 지속적으로 탐구해왔다. 조각의 창작 과정을 살피며 조각의 본질에 다가가려는 한편, 예술적 행위와 자신의 삶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작업의 중요한 테제로 삼고 있다. 그의 작업은 눈앞의 대상을 재현하는 문제에서 출발한다. 첫 개인전 《산에서 조각하기》에서는 산을 바라보며 산봉우리를 조각하는 과정을 기록하고 그 결과물을 전시했으며, <거리 초상조각 프로젝트>에서는 처음 만난 사람의 두상을 제한된 시간 안에 재현했다. 이후 <조각가를 위한 생츄어리> 연작에서는 바위와 일상 속 공간을 조각의 대상으로 삼았고, <여성미술가를 위한 도구 만들기>와 《여성 조각가를 위한 행동 풍부화》에서는 여성 조각가라는 자신의 삶의 조건을 조각과 연결했다. 이처럼 서해영은 조각의 경계를 탐색하는 동시에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들을 조각과 연결하며 작업을 이어왔다.
이번 전시 《순수 조각》에서 작가는 다시 눈앞의 대상을 바라보고 재현하는 조각으로 돌아온다. 전시장 양쪽에 놓인 산과 바다 조각은 실제 대상을 바라보며 만든 흙 작업을 캐스팅한 것으로, 작가의 시선이 파악할 수 있는 대상의 표면과 형태에 집중한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원점 회귀가 아니다. 같은 대상을 바라보고 유사한 방식으로 조각하더라도,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와 다르다. 그동안 축적된 경험은 현재의 조각에 스며들며, 작가는 ‘나’와 대상, ‘나’와 조각, 조각과 조각 사이에 생겨난 거리와 감각의 차이를 다시 살핀다. 이때 전시 제목의 ‘순수’는 완결된 상태나 조각의 특정한 형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대상을 마주하고 조각하는 작가의 태도에 가깝다. 작가는 실제 풍경을 재현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너머를 임의로 채우거나 과장하지 않는다. 자신이 감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대상의 표면을 바라보고, 흙을 붙이고, 떼어내고, 다듬고, 다시 깎아내는 행위에 몰입한다. 이번 전시는 특정한 의미를 미리 규정하기보다 그것을 최대한 유보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며, 그 결과 전시장에는 담론이나 서사보다 서해영이라는 존재와 조각이라는 행위가 남는다.
산과 바다 사이에 놓인 안개 조각은 이러한 관계를 드러낸다. 작가는 어느 순간 조각이 ‘나’와 내가 보는 대상 사이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한다. 대상을 응시하다가 작업에 몰입하는 순간 눈앞의 대상은 사라지고 손으로 만들어지는 존재에 감각이 집중된다. 조각은 ‘나’와 대상 사이를 매개하면서 동시에 둘 사이의 교감을 가로막는 존재가 된다. 안개 역시 통과할 수 있지만 불투명하고 무언가를 가리는 성질을 지닌다. 작가는 이처럼 조각이 가진 감각의 한계와 대상과의 거리를 결핍으로 극복하기보다 조각의 본질적인 조건으로 받아들인다.
전시장 곳곳의 작은 청동 조각과 산, 바다, 안개는 서로 다른 거리와 관계를 만들어낸다. 앞과 뒤, 높고 낮음, 멀고 가까움, 크고 작음, 소조와 캐스팅, 좌대의 유무 등 다양한 차이는 각각의 조각이 독립된 결과물이면서 동시에 서로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관객은 이러한 관계를 자신의 시선으로 연결하며 작가와 그가 바라본 대상, 그리고 그 사이에서 만들어진 조각의 존재를 하나의 별자리처럼 구성하게 된다.
《순수 조각》은 조각의 본질에 대한 완결된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서해영은 여전히 조각으로 가닿지 못한 무언가를 욕망하고 있다. 그에게 ‘순수 조각’은 특정한 대상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조각과 삶의 관계를 바라보는 태도이자 작가가 만든 조각과 관객의 시선이 만나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닿을 듯 닿지 않고, 좁혀질 듯 좁혀지지 않는 그 거리 속에서 조각은 하나의 존재로 계속해서 생성된다.
작가 소개
서해영(b.1983)은 서해영은 전통조각과 현대미술의 접점을 모색하면서, 조각의 새로운 방법론을 탐구한다. 또한 여성이자 조각가로서, 자신의 구체적인 조건과 경험을 반영하는 ‘과정-중심적인 조각’을 시도하면 서 일상과 예술을 연결하고자 한다. 최근에는 그 연장으로 ‘조각이 어떻게 시대감각을 담아서 그 지평을 확장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의식 하에, 조각의 근본적인 요소인 ‘입체’ 와 ‘공간’을 다양한 상황에서 탐구하는 실험적인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주요 개인전으로 《역기념비 프로젝트: 새들을 위한 기념비》(2026, 온수공간), 《조각가를 위한 생츄어리1-바위옮기기》(서울교육대학교 샘미술관, 2022), 《보이지 않는 경계 잇기》(2020, 수림아트센터 김희수 아트갤러리), 《여성조각가를 위한 행동풍부화》(탈영역우정국, 서울), 《여성조각가를 위한 도구 만들기-너와 나의 협업의 도구》(2016, 갤러리조선)가 있으며, 《송은미술대상 제정 25주년 기념전 – 송은×언박싱 프로젝트: 생성적 형상들》(2026, 송은), 《제 5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 창작 커뮤니티 프로젝트 전시》(2025, 아워갤러리), 《서울조각회 정기전》(2024, 김세중 미술관), 《횡단하며 흐르는 시간》(2020, 인천아트플랫폼), 《씨실과 날실로》(2018, 서울시립미술관)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출처: 페리지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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