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
2026년 6월 2일 ~ 2026년 7월 1일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의 연례 기획전인 세계영화사의 위대한 유산, 월드시네마 2026은 고전을 새로운 눈으로 불러내고 미지의 영토를 다시 발견하는, 스크린 위에 펼쳐지는 고고학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먼저 기나긴 노래, 거장들의 랩소디는 노래와 춤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다양한 뮤지컬에서부터 음악으로 빚어낸 서사시에 이르기까지 저마다의 영화적 방식으로 긴 노래를 부른 작품들의 자리입니다. 인도의 거장 사트야지트 레이가 봉건제 몰락기의 풍경을 인도 고전 음악의 가슴 저미는 선율에 실어 낸 <뮤직 룸>에서 출발해, 아르놀트 쇤베르크의 미완성 십이음 오페라를 한 음도 양보하지 않고 화면으로 옮긴 장-마리 스트로브와 다니엘 위예의 <모세와 아론>, 그리고 1930년대 캘커타를 배경으로 유럽 식민주의의 욕망과 권태를 나른하게 반복되는 하나의 후렴구 안에 가두었던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인디아 송>을 상영합니다. 한편, 이른바 ‘작곡된 영화’의 리듬을 인장처럼 지녔던 오타르 이오셀리아니는 조지아에서 온 거장으로, <노래하는 검은 새가 있었네>에서 도시의 작은 즐거움들 사이로 한눈을 팔며 흘러 다닌 한 젊은 교향악단 주자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 줍니다.
고전 할리우드 뮤지컬이 다시 쓰인 곳에서 온 포스트-뮤지컬이라 할 수작들도 눈길을 기다립니다. 샹탈 아커만의 <80년대 갤러리>는 쇼핑몰을 무대로 한 뮤지컬로 파스텔 톤의 팝 아트 색채로 만연한 표면 아래 전후 유럽 사회의 상처, 어긋나는 사랑들의 우울을 감추고 있으며, 이는 누벨바그 출신의 감독 자크 리베트가 세 여성의 이야기를 노래와 춤으로 연금술 같이 엮어 낸 <파리의 숨바꼭질>로 이어집니다. 가이 매딘이 초기 영화의 미감을 되살려 연출한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는 대공황기 위니펙을 배경으로 세상에서 가장 구슬픈 음악을 가리는 꿈을 꾸는 듯한 기묘한 경연이 펼쳐집니다.
터키 영화의 황금기를 이끈 아티프 일마즈의 <아시예를 어떻게 구하지?>, 인도네시아 영화의 대표적 감독으로 호명되는 가린 누그로호의 <오페라 자바>는 새롭게 발견될 매혹적인 두 작품입니다. 특히 ‘예실참’(Yeşilçam) 이후 1980년대 터키 영화의 새로운 활력을 대표하는 <아시예를 어떻게 구하지?>라는, 스스로 무대의 주인공이 된 어느 유곽의 여성들이 펼치는 놀랍도록 흥겨운 브레히트적 뮤지컬을 놓치지 마시길 바랍니다. <오페라 자바>는 라마야나의 한 대목을 자바의 음악과 무용으로 다시 쓴 ‘가믈란 오페라’로, 강렬한 열정과 배신의 옛 노래가 어떻게 지금의 몸짓으로 다시 불릴 수 있는지를 경이롭게 보여 줍니다.
코미디는 검은 색이다 섹션에서는 말해질 수 없는 이야기를 웃음으로 들려 준 블랙 코미디 수작들을 모았습니다. 보이테흐 야스니의 <카산드라 고양이>는 공동체의 위선을 벗겨 낸 체코슬로바키아 뉴웨이브의 특별한 우화이며, 에토레 스콜라의 <특별한 날>은 지친 파시스트 가정주부와 동성애자 라디오 진행자의 만남을 그린 순도 높은 희비극입니다. 나아가 미국 독립 영화의 거장 존 카사베츠와 11년 만에 신작을 내놓은 할 하틀리는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은근히 이색적인 조우를 선보입니다. <남편들>은 웃기고 고통스러운 필치로 그려 낸 세 중년 친구들, <착륙 지점>은 영화를 떠나서 묘지 관리인이 되기로 한 은퇴한 감독이 등장합니다. 하틀리의 영화 속 ‘땅을 돌보는 일(husbandry)’이 ‘남편(husband)’과 어원을 공유하듯, 두 영화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일탈과 우연을 좇는 남자들의 초상을 통해 지나간 혹은 다가오는 죽음을 각각 통렬히 마주하거나 다정한 농담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1960년대 말 프랑스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킨 넬리 캐플란의 <아주 호기심 많은 소녀>는 시골 마을에서 멸시당하던 한 여자의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여정을 통해 오래된 마녀 이야기를 전복시킨 무정부적 영화라 할 만합니다. 앙드레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진영에 몸담았던 캐플란의 가장 사랑받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조르지 아마두의 소설을 옮긴 브라질 영화 <도나 플로르와 그녀의 두 남편>은 유령이 되어 돌아온 첫 남편을 등장시켜 죽음마저 지극히 육감적인 것으로 그려 낸 전대미문의 마술적 사실주의 코미디입니다. 뉴 저먼 시네마 출신의 전위적 작가 울리케 오팅거의 <몽골의 잔다르크>, 그리고 쿠바 영화의 거장 토마스 구티에레스 알레아가 후안 카를로스 타비오와 공동 연출한 <딸기와 초콜릿>은 체제와 문화, 계급을 가장 대담하게 가로지르는 퀴어한 우정이라는 테마를 그려 내는데,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몽골의 평원, 또는 카스트로 정권기의 아바나는 그 경이로운 무대가 되어 줍니다.
끝으로 포커스 온 피터 왓킨스는 영국 출신으로 다큐드라마 혹은 페이크 다큐멘터리의 대명사로 불린 거장을 추모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입니다. 피터 왓킨스(1935~2025)는 역사적 사건이나 가상의 미래 시점에 다큐멘터리 기법을 들이댄 선구적인 감독입니다.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인물들, 비전문 배우들의 기용, 긴박한 내레이션이 곁든 보도 형식은 왓킨스 영화를 단번에 알아보게 하는 인장입니다. 마지막 걸작 <코뮌>을 지난 ‘월드시네마 2024’에서 소개한 데 이어, 이번에는 그의 출발점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746년 하이랜드 씨족이 학살된 전투를 현대 텔레비전 취재진이 현장을 중계하듯 재구성한 <컬로든 전투>는 디스토피아적 풍자를 담은 <특권>으로 이어집니다. 베트남전 시기 반체제 활동가들의 수난을 다룬 <퍼니시먼트 파크>는 예언적 걸작으로 재평가를 받았고, 위대한 화가가 어떻게 상처와 사회적 적대 속에서 빚어지는가를 조명한 <에드바르트 뭉크>는 최고의 극찬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의 영화가 도달한 순수한 작품성만큼이나 그 영화를 만드는 방식일 것입니다. 그는 스스로 모노폼(monoform)이라 칭한 미디어가 강요하는 획일적 형식에 평생 맞선 대가로 숱한 시련을 겪었습니다. 그럼에도 때로 상영 시간과 규모에서 압도적이었던 그의 작품들은 무수한 사람들의 참여로 빚어졌고, 그 참여자들 스스로 목소리를 내는 과정을 통해 영화가 완성되어 갔던 사실은 그가 남긴 값진 유산으로 다가옵니다. 이는 어쩌면 우리에게 새로운 영화적 출구의 하나로 말을 걸어 오는지도 모릅니다.
이번 ‘월드시네마 2026’이 영화에 목마른 시네필을 위한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 프로그래머 박은지
출처: 영화의전당
* 아트바바에 등록된 모든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
모든 프로그램은 주최측의 사정으로 변경될 수 있으니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를 확인하시기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