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관
2024년 12월 13일 ~ 2024년 12월 31일
얼굴이 그리는 장면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려본다. 환하게 웃는 얼굴, 기분이 좋을 때 짓는 표정, 속상함을 애써 참아낼 때의 경직된 입매, 이발하고 온 뒤의 머쓱한, 그러나 무언가를 기대하는 목소리와 같은 것들. 떠오른 얼굴에 한 걸음 더 다가서면 익숙한 얼굴은 기억 속 얇은 표면에 스며들었다가 금세 흩어진다. 그러다 불쑥 예기치 못한 순간에 떠오르거나, 아무리 애써도 흐릿한 잔상만이 남아 맴돌기도 한다. 우리가 얼굴이라 부르는 것은 실은, 다시 오지 못할 순간의 모습이다. 손민석의 《얼굴 바깥의 얼굴》은 얼굴을 감싸는 흐름과 공기, 그리고 사로잡을 수 없는 시간에 집중한다. 그의 화면 속 얼굴은 견고한 형상이 아니라 주변과 관계하며 번지는 색채와 형태로 존재한다. 그곳에서 얼굴은 더 이상 얼굴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 얼굴들은 누구이고 무엇일까. 우리가 눈으로 담아 내려 하는 순간, 그들은 다시 어디로 흘러가 버리는 걸까.
손민석의 회화 속 얼굴은 고정되지 않는다. 빛이 내려앉고 그림자가 드리우면, 화면은 하나의 표정에서 여러 표정으로 번지고, 과거의 공간에서 현재의 공간으로 스며든다. 얼굴은 개인에게 귀속된 고유의 표식이자 타인을 식별하고 정의하는 명확한 정보값이다. 그러나 필시 원본에서 출발했을 그의 회화 속 얼굴은 고정성을 벗어나 경계를 이탈한다. 형체를 이루는 외곽선이 중첩되고 경계가 허물어질수록 얼굴은 특정한 인물에서 멀어지고, 그 자체로 흐름과 공간의 일부가 된다. 손민석은 얼굴을 그리되, 그 바깥에 존재하는 흐름과 관계를 드러낸다. “주변을 통해 얼굴을 그리고, 얼굴을 통해 주변을 그린다”는 그의 말처럼, 화면 속 요소는 의도적으로 긴밀하게 연동되며 서로를 지탱한다. 붓과 색채가 유영하듯 흐르는 화면 위에서 얼굴과 풍경은 하나로 엮이며 새로운 장면을 만들어낸다.
시선은 얼굴에서 출발하지만, 곧바로 흩어진다. 화면 곳곳으로 번져나가며 가볍게 스며들고, 잔잔한 파문처럼 다시 돌아온다. 그 리듬은 정확하게 이어지고, 그러나 어디에도 완전히 고이지 않은 채 흐른다. 두 명의 인물이 대화하는 장면을 담아낸 〈프로메테우스적 대화〉(2024)에서 시선은 붉게 물든 얼굴로부터 시작된다. 얼굴을 감싸는 붉은 빛은 아래로 흘러내려 테이블을 지나, 차량의 표면으로 번진다. 화면을 가로지르는 공기는 일렁이는 불꽃처럼 두 사람을 감싸고, 대화가 지나간 자리에는 미세한 온기와 흔들림만이 남는다. 〈그림 우물〉(2024)에서는 온색의 얼굴이 뒤에 위치한 핑크빛 그림과 조용히 맞닿는다. 시선은 얼굴에서 발끝으로 이어지며, 발치에 무심히 쌓인 그림의 포장지를 지나 전시장 바닥으로 향한다. 흐름은 한 지점에서 멈추지 않고 선과 색채를 따라 가볍게 이어지며 화면 전체를 부드럽게 감싼다. 시간은 그의 화면 속에서 수직으로 단절되지 않는다. 얼굴과 사물, 공기와 그림자는 비스듬히 베인 단면처럼 겹지고 흔들리며, 그 안에서 시간은 흐름을 머금은 채 가볍게 배어 나온다.
해가 지기 직전, 겨울의 풍경은 더 밝아진다. 지평선 아래로 가라앉는 해가 마지막으로 세상을 물들이고 나면, 어둠이 그 빛을 가져갈 것이다. 그의 회화 속 얼굴도 마찬가지다. 서서히 흐려지고 사라지는 얼굴은 풍경과 사물에 자리를 내어준다. 고요한 흐름 속에서 얼굴은 멀어지고, 주변의 것들이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화면을 가득 채운다. 그 순간, 황금빛의 흔적은 흩어지며 남은 것들에 조용히 스며든다. 그렇기 때문에 손민석에게 ‘흐름’은 더욱 중요하다. 흐름은 조화가 아니다. 그것은 고요하지만, 결코 멈출 수 없는 힘으로 화면을 가로지르고, 사물과 얼굴, 풍경과 색채를 하나의 결로 엮어낸다. 흐름이 지난 자리에는 아무것도 고이지 않지만, 그곳에 남아있는 무언가는 화면 전체를 미세하게 흔들리게 한다. 주변의 색채와 형태들이 얼굴을 감싸안는다. 얼굴은 흐름 속으로 천천히 녹아들고, 화면을 지배하는 물결은 모든 것의 경계를 허문다. 사물과 인물, 풍경은 흘러가며 서로를 조금씩 밀어내고 다시 엮이며 물결의 새로운 방향을 만든다. 손민석의 그림은 얼굴에서 출발하지만 그 얼굴은 끝내 주변의 풍경과 함께 흐려진다. 남겨진 것은 얼굴의 흔적이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세계의 떨림과 시간의 결이다.
그는 닿을 수 없는 찰나의 순간을 붙잡는다. 사로잡힌 순간은 흐려진 채 남아 있다. 붓과 색채는 한계에서 멈춰 섰고, 교차하는 흔적들은 무엇 하나 완벽히 닫히지 않고 어딘가 열린 채로 머문다. 화면 속 얼굴들은 선명하지 않다. 그러나 흐릿함 속에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어딘가 불안하고 어설픈 그 얼굴들은 지나간 청춘의 한 조각처럼 남아 있다. 반짝이지만 오래 머물지 않는 불안함. 그 얼굴은, 풍경은, 시간들은 오래 기억되지 않아도 그 자리에 남은 온기만큼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어느새 지나가 버린 어떤 자취와도 같다. 얼굴에 스친 미세한 움직임, 주변의 공간이 잠시 내어준 흔적들. 모든 것이 분명히 존재했지만,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남은 건 어렴풋한 기억뿐이다. 어딘가 흩어지고 흐릿하지만, 그곳엔 여전히 따뜻한 온도와 기척이 남아 있다. 무언가 확실히 잡히지 않는 그 감각이야말로 진짜로 중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 얼굴들은 모두 어디로 가고 있으며, 그림은 우리를 무엇으로 이끄는가. 화면은 고요히 열려 있고, 경계는 끊임없이 흐트러진다. 얼굴과 그 바깥의 세계는 닿을 듯 닿지 않으며, 그사이에는 한 번도 명확히 답하지 않은 질문들이 남아 있다. 어쩌면 그 질문들은 오래 머무르지 못할 순간들처럼, 가볍게 떨리는 여백에 흩어져 있을 뿐이다.
손민석의 《얼굴 바깥의 얼굴》은 우리가 믿어온 얼굴의 관념을 잠시 내려놓기를 제안한다. 익숙하다고 여겼던 얼굴은 이제 천천히 지워지고, 그 빈자리에 새로운 질문이 머문다. 이번 전시에서 손민석은 얼굴이라는 형상을 빌려 얼굴 바깥의 세계를 그려낸다. 그의 그림 속에서 우리는 더 이상 특정한 인물을 찾아 헤매지 않는다. 대신 화면 전체에 느리게 퍼지는 감각을 따라가게 된다. 얼굴은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다. 그림은 마침내 얼굴을 경계 너머로 데려가며 흔들리는 흐름을 만들어낸다. 비 오는 날 창문 너머로 번지는 풍경을 바라보는 상상을 해본다. 창문을 열고 내리는 빗속으로 팔을 뻗자, 빗방울이 기분 좋게 부딪히며 흘러내린다. 움켜쥘 수 없지만 손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처럼, 그것들은 여기 있었다. 있었지만 흘러가는 것들. 모든 순간이 그렇게 지나간다.
이규식(서울시립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학예연구사)
참여작가: 손민석
글: 이규식
디자인: 고경호
사진: 주기범
설치: 정찬웅
도움: 김나나 정진욱
후원: 서울시, 서울문화재단
2024년 예술창작활동지원사업 선정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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