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프로젝트 서울
2024년 6월 18일 ~ 2024년 6월 29일
늘어지고 찢긴
레코드를 턴테이블에 얹고, 바늘을 들어 조심스레 얹는 순간. 지직거리는 파열음과 튀기듯 재생되는 늘어지고 찢기는 소리의 감각은 매끄러워 보이는 레코드 판에서 어떤 것을 느끼게 한다. 그 감정은 왠지 모를 포근한 감성, 그리고 무언가에 대한 그리 움이다. 경험하지 못한 옛 것에 대한 감각은 미세하게 팬 홈을 타고 왜곡된 소리로부터 발생한다. 문득 그런 장면이 떠오른다. 옛날 것, 허물어진 것들에 대해서.... LP, 오래된 골목과 그 틈을 메우는 작은 집들. 회벽이 떨어져 나간 건물 안쪽의 빨간 벽돌, 버려진 사물, 빈티지 스타일의 안감, 떨어져 나가 끈적이는 흔적만 남거나 거의 알아볼 수 없는 글씨들, 갈라져 물이 스민 낙서 된 벽과 철거되다 만 무너진 콘크리트 사이로 튀어나온 마구 늘어진 전선과 철근. 그리고 이제 막 허물기 시작한 공사 터의 천막. 새로이 생겨나는 것들은 예전 것들의 흔적을 담고 있다. 그것은 벗겨지는 피부의 상처만큼이나 새로운 가능성을 담고 있다.
오래된 것들이 존재하던 시간과 공간으로부터 분리되어 다시 그것을 감각하기 위해서는, 요철을 손끝으로 느끼듯이 다시 되 짚어보는 수밖에 없다. 손유진과 이연정은 이런 시간의 흔적으로부터 균열들을 탐색하고 자기화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연정 작가는 신체와 정물의 이미지를 오가며 몸이 가진 유한성을 다루어 왔다. 특히 신체의 가장 겉면인 피부는 자기가 아닌 것과 가장 긴밀하게 맞닿는 장소이자 계속해서 탈락과 생성을 반복하는 생동하는 중간지점이기도 하다. 작가는 오래된 흔적들을 이런 피부로서 다시금 탐색한다. 작가는 자신이 사는 해방촌을 비롯하여 시흥시 배곧, 연남동, 압구정과 같은 공간을 다니며 스스로 감각한 세월의 흔적들을 촬영하고, 그 사진을 베를린에 있는 손유진 작가에게 메일로 공유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인식하는 중간지점으로서의 탈각 과정을 두텁게 묘사하며 디지털 이미지의 비물질성을 실재하는 물성으로 다시 옮긴다.
그러나 그것들은 손유진은 실제로 감각하지 못한 장소의 흔적이다. 이를 이연정은 글과 사진으로 전한다. 손유진은 공유된 사진을 해체하여 한 요소로서 화면을 구성한다. 포착된 이미지로서 경험하게 된 요철들은 디지털 이미지로 변환되어 노이즈와 같은 시각적 효과와 균열의 패턴화로 나타나면서, 작업의 결과로서 즉각적으로 도출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출력된 이미지는 매끈하다. 마치 사진을 출력한 것처럼, 플랫해진 요철에 대한 감각은 탈피를 마친 동물처럼 매끈해 보인다. 회화 작업을 하다가 디자인을 공부하고 있는 작가의 이력을 고려한다면 작업 과정이 놀랍지는 않으나, 두 작가의 공동 작업인 이메일 상에서의 대화를 본다면 손유진의 작업은 이미지를 접하는 실제 과정을 거의 그대로 반영한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옛 것에 대한 공통의 관심에서 출발하여, 두 작가는 이메일로 소통하며 같은 이미지와 감각을 공유하려 애쓴다. 이 대화는 편지쓰기의 감각과 맞닿는다. 모바일 메신저보다는 무겁고, 편지보다는 가벼운. 그러나 의도적으로 고르며 긴 호흡으로 쓰여진 ‘말’은 서로의 의도를 읽어 나가는 시간만큼 지연되고, 의미는 탈락됨과 동시에 오해를 거쳐 새로운 의미가 된다. 각자의 해석은 레코드의 노이즈만큼, 이메일의 시간만큼 지연된다. 그런 거리감은 알맹이와 공기 사이의 껍데기로서 완충 작용을 하는 중간지대가 된다. 손유진과 이연정의 작업은 같은 것에서 시작하였으나 전혀 다른 것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이미지가 전달하고자 하 는 것은 오래된 것에 보내는 애도의 감각이기 보다는 새로운 탄생에 대한 자기 준거로서의 기록이다.
손하늘
참여작가: 손유진, 이연정
출처: 레이프로젝트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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