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음산방
2024년 11월 13일 ~ 2024년 12월 1일
Vian eux dans ante
는 낙락하고 성긴 단어이다. 언어의 형식과 의미 사이의 연결고리를 끊어 분화한 불어로 하나씩 의미를 찾자면
viandeux ‘육체적’ dansante ‘춤추는’
deux ‘둘의’ dans ‘-에서’
eux ‘그들의’ ante ‘-앞에’
이다. 제각각 띄우면 엉성하지만 음절의 의미를 따로 상기시켜 보면 그럴듯한 상황이 제시 된다. 이렇게 해체 & 재조합의 과정을 거친 단어가 문법상 비합리적인 결과물일지라도 여기서 우리는 기존의 질서에서 벗어난 퍼스펙티브를 경험할 수 있다. 주류의 문법 체계에 서 통하지 않는 새로운 게임의 법칙을 제안하고 분절된 형식으로부터 파생되는 운율적 재미를 감상하는 것이다. 언어의 구조를 뒤틀어 새로운 의미를 파헤치는 것과 뒤틀어진 형식 의 틈을 메우는 비약적 행위를 긍정하는 과정에서 필자는 해체된 단어가 가진 기능과 신종찬의 작업물 사이의 상동성을 발견하였다.
이미 존재하는 질서를 무너뜨리고 보이지 않는 의미를 발굴하는 이중 판단의 과정을 통해 새로운 문(文)을 제안하는 것. 그것은 기존의 쓰임에서 벗어나 다르게 사용하기를 제시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미디움을 이해하고자 애쓰는 작가의 태도와 밀접하다. 신종찬이 마주하는 종이는 안료와 접착제를 만나 자신의 형태를 탈피하고 홀로 서게 된다. 마치 하나의 단어가 본 쓰임과는 별개로 분해되고 각 마디가 몸소 자립하여 전과 다른 의미를 파생시키는 것과 같다. 이런 독특한 사고와 과정이 가능한 이유는 무엇이든 흡수하고자 하는 종이가 주재료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젖으면 쉽게 뭉개지는 옥당지와 섬유질로 얽힌 얇은 닥지를 안료로써 사용하는데 옥당지는 먹의 번짐과 농담 표현에 용이하도록 제작된 종이로 닥지보다는 펄프 함유량이 높아 다른 지류에 비해 흡수력이 좋다. 반면 순지는 닥지로 이루어진 종이이기에 질긴 심지가 남아있는데, 여기서 작가는 무르면서도 쉽게 흩어지지 않는 반죽을 제작하기 위해 두 종이의 특성을 적절히 배합하고 짓이긴다.
습윤한 반죽은 종이 위에 올려져 건조되고 이에 힘을 가해 그라운드로부터 반죽을 뜯어낸 순간 그것은 공간에 구현된 기이함을 가진다. 본래 화가의 붓질을 받아내는 역할로써 존재해 온 바탕지가 풀을 먹어 조각의 질료로 전환되고, 그것이 다시금 화판 위에 올라가 반죽으로서의 그리기가 되는 순간 스스로가 제 꼬리를 무는 것과 같은 기이한 순환적 질서가 확립된다. 그러나 작가는 이 과정에서 머무르지 않고 건조되어 뻣뻣해진 반죽을 회화의 표면으로부터 뜯어낸다. 추출된 조각은 화판에 붙어있던 조각의 흔적을 따르기도 그것과는 다른 리듬감을 규칙 삼아 접합되는데 여기서 그는 신체의 움직임을 빌어 회화의 선과 조각의 선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각각의 율동성을 탐구하고자 한다.
이번 개인전에서 본격적으로 선보이는 <산데비스탄(Sandevistan)> 시리즈는 애니메이션 ‘사이버펑크: 엣지러너’의 주인공 ‘데이비드’가 구사하는 기술에서 따온 명칭으로, 동작주를 중심으로 주변이 느려지거나 또는 주변부를 중심으로 동작주가 빨라지는 움직임을 일컫는다. 지나온 전시에서 신종찬이 선보였던 작품은 종이가 회화의 안료이자 조각의 지지체로 존재할 수 있는 종이의 다중 역할에 주목하였다면, 이번 개인전은 신체의 움직임을 어떻게 회화와 조각으로 동시에 드러낼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다. 하나의 행위가 두 가지의 결과를 이루게 하는 방법론을 발견한 작가는 특정한 동세를 회화와 조각이라는 두 종류의 감각으로 포착하고자 하는 희구를 보인다.
Vian d eux dans ante. 필자는 이것을 ‘무리 앞에서 춤추는 두 갈래의 육체’라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려지는 동시에 그려지지 않는 선은 움직이는 신체의 궤적으로 드러나고 그것은 율동의 자취와 율동하는 존재의 존립이라는 양의성을 이룬다.
(글_기주연)
작가소개
신종찬(b.1996)은 평면으로 사고되는 그림의 선을 입체 조형물로 만들어 공간을 점유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동양화의 장르 속에서 바탕지로 수용되는 한지를 회화적 안료로써 사용하며 동시에 조각적 조형을 탐구한다. 질긴 섬유 질로 이루어진 한지에 먹을 섞은 반죽으로 다양한 선을 구현한다. 회화의 평면에서 생성된 선은 자신을 받쳐주던 대지에서 벗어나 서로를 의지하며 입체 구조물로 되살아난다. 완성된 구조는 수묵으로 그려진 무언의 형상을 지칭 하는 선이자 공간에 구현된 물질의 선이 된다. 세종대학교에서 학부와 대학원 모두 한국화를 전공한 작가는 단체전 <쉽게 부서지지 않도록 고안된 상자>(WWW SPACE 2,2024), <중동태_Middle Voice>(안팎 스페이스,2024), 프로젝트 전시 <부피 속 동화動畵>(부피,2024)에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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