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 Under Stairs
2020년 12월 7일 ~ 2021년 1월 3일
신지언이 틀렸다 : 자라나는, 자라나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상상력의 텍스트
유현아
도서관에서 일하는 그를 상상했다. 책을 건네고 책을 받고 질문에 답하고 잠시 허공을 보며 우물쭈물 말을 거는 그, 신지언을 상상했다. 출구 없는 입구처럼 텍스트는 되돌아오고 그것은 이미지로 변환된다. 그를 만났을 때 늘 나는 그의 옆에 있거나 그의 뒤에 있었다. 정면을 보지 못하고 옆모습과 뒷모습의 기억이 많다. 결국 마주 보는 시간이 다가오긴 하지만 왜 그랬을까 설명하는 것은 할 수 없다. 그것은 어쩌면 나의 콤플렉스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책의 마력을 텍스트에만 한정하는 것은 허상이다. 텍스트란 책을 가까이 하는 위험을 무릅쓴 모든 사람들을 사로잡는 불가사의한 현상을 모은 집합의 핵심일 뿐이다.
신지언의 작품을 처음 본 것은 강렬한 붉은 빛이 도는 ‘붉은 숲’ 시리즈였다. 한여름이었다. 작품을 봤을 때 붉은 숲보다는 불타고 있는, 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고 12월이 떠올랐다. 여름에 겨울을 떠올린다는 것은 작품이 가지고 있는 끝의 기억이었다. 강렬한 색채의 붉은 숲과 날아가는 까만 새와 검은 달이 내포하고 있는 ‘나의 이야기’에 집중하고자 한다면 작품을 멀리서 또는 가까이서 오래 들여다봐야 한다. 그것이 12월의 이야기였으면 했다.
돌돌 말려있는 텍스트를 펼치면서 읽은 기억이 있을까. 고서를 읽는 기분이 든다면 그것은 맞는 느낌일까. 그리고 펼친 그 어떤 것이 텍스트가 아니라 이미지라면 우리는 착각한 것일까. 신지언의 ‘자라나는 이야기’는 그렇게 질문으로 시작해야 했다. 분명 그림이지만 이 작품의 전체를 설명해주는 장르일까. 나는 작품을 보면서 허구와 실재를 혼동한다. 신지언이 늘 고민하는 한 조각의 일부가 나에게 들어온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의도한 듯 작품은 어느새 떠도는 이야기가 되어 텍스트화된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텍스트 자체를 드러낸다. 드러냄으로써 텍스트를 넘어 이미지와 함께 나열된다. 신지언은 소설을 쓴다. 그리고 소설을 그린다. ‘쓴다’라는 개념을 ‘그린다’로 전환한다. 이 두 개의 개념 안에 작가의 ‘노동’이 함께한다.
허구의 인물들이 아마도 물질적 실재성을 가지고 있지는 않겠지만 심리적 실재성은 분명히 가지고 있으며, 이 심리적 실재성은 우리가 원하건 아니건 일정한 형태의 실존으로 인도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다.
이번 개인전은 그가 질문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그의 목소리로 들어보고자 했다. 여전히 흔들리고 있는 일상에서 그의 작업은 미완의 작품으로 완성되고 있으며 여전히 질문과 허구 안에서 자라나고 있다. 불완전에 가까운 그의 작업은 테드 창의 소설 ‘바빌론의 탑’을 연상시킨다. 하늘에 닿으려 높이 쌓지만 결국 우리가 사는 이곳은 연결된 것처럼 하나의 장르는 다른 장르와 만나 연결되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작가 신지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아마도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입을 닫는 것으로 그는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지금 우리가 이 세계에서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사실인지 허구인지 구분해낼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럽다. 작업하면 할수록 의문은 자라나고 답은 사라진다. 그가 상상한 텍스트와 이미지가 사실은 어딘가에 혼재하고 있을 수 있다는 의심을 품고 작품을 바라봐야 한다. 그게 신지언에게 건네는 나의 응원일 수 있다. 그리고 나의 알 수 없는 콤플렉스에 대한 환영을 지우는 과정이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문학세계의 불완전성은 절대적이지 않다. 그것은 독자의 개입으로 축소된다. 독자는 텍스트의 결핍을 전부는 아니지만 부분적으로 채운다.
신지언 초대개인전 <자라나는 붉은 숲>은 섣부른 위로나 답을 주지 않는다.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기에는 어딘가 자리 잡고 있을 불안과 공포가 있다. 그것이 작가 개인의 감정뿐만 아니라 관람을 하는 독자에게도 전달되길 바란다. 신지언이 알고 있는 불안과 공포와 좌절이 틀렸다는 것을 함께 기억되기를 바란다. 여전히 오리무중인 세계에서 판타지가 없다면 어떻게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을까. 전시를 보는 사람들의 적극적 개입을 요구하면서 신지언을 바라보고자 한다. 내게 다가온 신지언의 작품은 그런 것이었다.
이제 우리는 적극적 독자가 되어 그의 작품에 한 걸음 들어가기로 한다.
*이 글의 제목과 텍스트 인용은 피에르 바야르 『셜록 홈즈가 틀렸다』(여름언덕)에서 가져왔다.
참여작가 : 신지언
기획 : 유현아
출처: 더숲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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