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탕갤러리
2021년 11월 22일 ~ 2021년 12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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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을 한다는 것은 애정을 창조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사랑받지 않아도 존속될 수 있고, 사랑없이 사라져도 처음부터 없는 듯 한 것들을 사랑하는 방법을 만드는 것에서부터 작업이 시작된다. 이것은 언뜻 가슴 아픈 일이다. 애정을 담는 시간의 대가는 상실의 아픔이다. 영원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육체가 있는 것은 죽음을 맞게 되고, 관념은 망각되거나 힘을 잃는다. 의미없이 지나갈 수 있던 대상의 눈을 들여다보고 이름을 부르며 붓질로 옮기는 순간부터 끝이 예정된 여정이 시작된다. 누구도 지우지 않은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그럼에도 성실하게 획을 쌓고 장면을 만드는 이유가 있다면, 애정은 그릇에 담긴 물처럼 옮겨 담는만큼 내가 적게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새로운 애정의 도식을 나눌수록 사랑의 현장이 늘어날 것이라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깊은 애정으로 새겨진 사랑은 묻어나되 지워지지 않는다.
이 작가는 성실한 사랑을 쌓는 법을 익혀나가고 있다. 균열된 몸과 분절된 관계들을 화해하는 매개로 자연의 순환을 제시한다. 잡을 수 없고 잡아서는 안되는 동물들을 그리고, 그들 사이를 걸으며 녹아들어가는 사람을 담는다. 이 도식 안에서 육체는 그 형체를 잃어도 입자 하나 헛되이 사라지지 않는다. 상실되어도 소멸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소유하지 않으면서 애정을 담는 사랑의 흔적을 볼 수 있다.
-고요(회화, @goyosilencio)
작가노트
‘이 산속에 내가 사랑할 수 있는 것이 하나라도 살아있는 한 나는 사랑을 할 것이다.’
-마를렌 하우스호퍼, 『벽』 중에서.
숲속으로 스며드는 인물을 본 건 오래전의 일이다. 그 사람은 동네에서 유명한 정신이상자였다. 공포심이 스쳐 지나가기도 했지만, 온몸을 뒤덮은 새까만 털 위로 걸친 지저분한 외투를 입은 그의 어렴풋한 그림자 속에서 어딘지 모르게 슬퍼 보이는 얼굴을 보았다는 확신을 품고 산을 오를 때마다 그를 생각했다. 어디선가 아직도 움막을 짓고 있을지도 모를 그 사람을.
그 사람이 검은 비닐 봉다리를 들고 숲을 떠도는 이유는 조각난 자신의 영혼을 줍기 위해서라고 나는 믿었다. 그를 지탱해주던 몸과 마음의 어떤 견고한 벽이 불의의 사고로 인해 무너졌고, 그 사고는 그의 잘못이 아니었지만 손가락질과 외면과 격리와 내쳐짐은 결국 그 자신이 온전히 감당해야 할 짐이 되었다. 영혼을 주우러 다니는 그는 매일 저녁 어느 친절한 노파의 손길이 담긴 김밥 한 줄을 붙잡으며 연명했다. 참기름 묻은 손으로 맛보는 주워온 영혼의 맛을 나는 알 수 없으리라.
그는 내 기억 속에 서서히 사라져갔지만, 그가 사라진 숲을 나는 계속해서 오르내렸다. 어쩌면 그가 잃어버린 영혼의 조각을, 어딘가 늘 결핍되어 있었던 그 영혼의 슬픔을 발견할지도 모른다는 희망 때문이었을까? 그러나, 발견한다 해도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심성훈(@s_simhaebada)
참여작가: 심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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