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크아웃드로잉 한남
2015년 9월 14일 ~ 2015년 9월 30일

이런 노래가 있었다. 어릴 적 공터에서 아이들과 함께 고무줄놀이하며 부르던 노래인데 아주 쉽고 경쾌한 리듬의 노랫말이 이상한 훅 송이었다. 황당할 정도로 앞뒤의 개연성이 없는 이 노래를 지금 읆어보니 궁금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놀이의 노래들은 매우 다양했다. 전쟁에 관한 이야기에서 신파, 동요에 이르기까지 내용이 다양했다. 특히 ‘싱글러브유 오이맛사지’는 너무 이상해서 변태스럽기까지 하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마음씨가 좋아서 케이크를 그냥 주고, 간호사는 호박 같다는 내용이 어디에서 유래되었건 명확하게 말이 되지 않아서 생각할수록 웃기다.
입을 모아 열심히 부르던 이 노래가 자아내는 웃음은 근래에 주변 사람들과 공유하는 웃음의 분위기와 비슷하다. 말이 안 되는 세상에서 부단히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에 그저 웃을 수밖에 없는 그런 ‘속 빈 웃음’ 말이다. ‘허무개그’는 이미 유행이 지나도 한참 지났지만 적어도 나에게만은 아직 유효하다. 아직도 열심히 허무한 웃음을 만들고잠시나마 정적과 함께 쉬어간다. 사실 그런 친구들은 주변에 아직 꽤 많다.
테이크아웃드로잉 레지던스 <싱글러브유-오이맛사지>는 중심에 공터라는 말이 놓여있다. 우리에게 기회와 소유가 비워진 이 장소를 어릴 적 뛰어놀던 공터와 이어 붙여보았다. 공터라는 말은 범위가 아주 넓은데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바탕이라고 좁혀서 놓았다. 지금의 상황을 참여작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씹고 뱉어내길 바랐다. <싱글러브유-오이맛사지>는 레지던스 과정을 거쳐 뱉어낸 작업들을 한남동에서 전시하고, 작업의 내용을 더욱 가깝게 경험하고 볼 수 있는 작가별 프로그램이 한남동과 이태원에서 산발적 열린다. 또 레지던스의 과정을 기록하여 한남동 1층 벽면에 업데이트하는 기획자의 드로잉으로 구성된다.

김윤익_ 기획자 드로잉_ 테이크아웃드로잉, 한남동
참여 작가들은 이번 기획에 대한 궁금함이 많았다. 잦은 만남으로 기획에 대해 설명을 했으나 이해하기 어렵다는 말이 많았다. 아마도 기획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기억에 남아있던 작가들을 모아보고 생각해보니 그들이 만들 풍경이 굉장히 살풍경이 될 것으로는 기대감이 먼저 앞섰다. 그래서 기획의 방향은 참여 작가들이 만들어 가는 것으로 고백한다. 그들이 바라보는 관점이 더욱 뚜렷해지고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을 기대했다. 고무줄놀이는 공동의 노랫말과 개별의 움직임이 뒤섞이는 탄력적인 놀이이다. 이 놀이는 서로 고무줄에 연결해 공간을 만들고 그 주변을 배회하며 이어진다. 레지던스에서 작가들이 작업에 몰입하며 만들어가는 것을 고무줄놀이라고 생각하고, 놀이의 노랫말이 울리는 장소가 전시이자 작가 개별 프로그램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김익현_ 모두가 연결되는 미래_ 2채널 슬라이드 프로젝션, 슬라이드 필름+텍렉스 프로젝터_ 2015
탄산음료를 좋아하는 김익현은 스스로 스마트폰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그래서 익숙한 카메라 장비를 대신하여 스마트폰을 손에 쥐었다. 특히, 구글에서 서비스하는 360도 사진 기록애플리케이션 스트리트뷰 서비스에 눈이 반짝였다. 이 애플리케이션은 설명하기 어려운 장소를 가볍게 스캔, 압축하여 전달하거나, 직접 찾아가기 어려운 장소를 눈으로 경험할 수 있는 정보를 만들어낸다. 모두 어떤 장소를 압축하고 재생산하여 인간의 경험을 넓히는 기술이라고 볼 수 있겠다. 전시에서 발표하는 <모두가 연결되는 미래>는 이 기술이 세계의 장소들을 압축하고 접합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오류들을 포착한다. 그는 미끄러지고 휘어 감긴 이미지에서 견고하게 이어 붙는 세계의 틈 같은 것을 느끼는 것 같다. 그 틈들이 모두 이어 붙어 미래에는 모두가 연결된다고 하니 김익현은 미래에 스마트폰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될 수 없기에 반대로 아날로그 방식의 일회용 카메라가 만들어 내는 이미지에도 관심을 둔다. 그가 준비한 프로그램 <이승의 다리를 건너서>는 프로그램 참여자들에게 일회용 카메라를 나눠주고 사직단을 촬영한다. 근래에 사직단은 복원사업이 진행되고 있는데, 과거의 환영을 현재에 복원하는 이 사업의 목적성이 흥미롭다고 했다. 사직단은 조선 시대에 토지의 신인 사(社)와 곡식의 신인 직(稷)에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역사적으로 의미 있어 보이는 사직단 원형 복원이 자본이 물신화된 세계에서 어떤 마찰을 만들어 낼까. 그는 늦은 밤 사직단에서 사람들에게 귀신을 촬영하도록 제안한다. 아날로그 일회용 카메라의 저급한 기술은 아마도 검은 어둠만을 담을 것이다. 어쩌면 그는 아무것도 담아내지 못하는 상황을 즐기고 있는 듯하다. 그의 작업 <모두가 연결되는 미래>에서도 그러했듯이 과거의 유효했던 장소가 현재와 접합되는 과정 이면의 얄팍함을 관찰하고 드러내는 시도로 보인다.

(좌)김범종_ 웃음소리1,2_ 198x150_ 종이에 연필
(중)김범종_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나_ 1000x160_ 캔버스에 스프레이_ 2015
(우) 김범종_ 번쩍이는 표면, 201x150_ 종이에 연필_ 2015

심혜린_ 기우뚱하게 흐트러지는 사람_ 112x112_ oil on canvas_ 2015
심혜린은 요즘 세상 돌아가는 일을 대부분 스마트기기와 SNS를 통해서 경험한다고 한다. 언제부터인가 스마트폰을 항상 가깝게 지니며 틈이 나면 타임라인을 흝어보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손안에 화면을 쓸어내리며 수많은 사건을 넘기다가 문득 실제의 세계가 나풀나풀 거리는 종잇장처럼 다가왔다.
어떤 경험들 이후에 남는 잔상들을 병렬적으로 쌓아가는 회화작업을 해온 그의 이미지는 대부분 미완 적이거나 형상화 되어가는 과정에서 머문다. 이는 계속해서 새로 고침을 하듯이 떠오르는 이미지를 담아가는 그리기의 방식 때문이다. 이번 레지던스에서는 세 점의 회화 시리즈를 선보인다. <기우뚱하게 흐트러지는 사람>은 제목에서처럼 어떤 사람의 흐트러진 자세를 담았다. 우연히 스마트폰에 담긴 의도를 알 수 없이 애매하게 포착된 몸 이미지를 담고 싶었다 한다. 심혜린은 구체적인 이미지를 그리다가 형상화 되기 전에 다른 이미지로 옮겨간다. 기억이나 정서의 조각들이 불쑥 튀어 오르는 방향으로 붓을 옮기고 화면을 만들어 가며 전체를 구성한다. <가깝고 낯선 것 사이에서 버둥거리는>은 해수욕장을 다녀온 경험을 불러낸다. 휴가철 바닷가는 거대한 풀장처럼 안전선 안에서 사람들이 바둥바둥 파도를 즐긴다. 그 사이에서 보는 사람들의 모습은 자의와 타의 사이에서 부유하는 덩어리들처럼 다가왔다. 사람들이 마치 물 위의 떠다니는 이물질처럼 느꼈다고 한다. <끼워진 뼈와 살>은 어떤 외압에 의해 ‘홱’하고 구겨진 몸의 이미지다. 균형 잡힌 외형을 잃고 낱개로 발라진 뼈와 살이 엉뚱하게 들러붙는 분절 감을 드러낸다고 했다. 이처럼 즉각적으로 떠오른 생각들을 따라가며 만들어낸 이미지들은 언뜻 개연성 없이 부딪히고 있는 판판한 표면을 만들어내는 것 같다. 하지만 이 이미지가 중첩되어 만들어지는 공간감은 굉장히 기묘하다. 마치 하루 동안의 경험들이 잠이 들기 직전 분절되며 한꺼번에 몰아오듯이 추상적이고 압축적인 깊이 감을 경험하게 한다.
SNS의 타임라인의 속도감은 어떤 생각이 머물고 곱씹기 어렵게 한다. 빠른 속도감 때문에 받아들이는 정보의 양은 늘어났지만, 이 정보들이 가슴에 얹힌 듯이 소화되지 않아서 어떤 분열적인 상태를 체험할 때가 많다. 심혜린의 프로그램 <낭독회: 몸을 바꾸는 낮과 밤>은 이렇게 체한 듯한 상태를 소화하는 행위를 구성한다. 해가 뜬 낮 동안 정보를 차단하고 떠오르는 말들을 적는다. 밤이 되면 이 말들을 낭독한다. 하루 동안 글을 쓰는 행위의 몸에서 말하는 몸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거쳐 본인에게 체적된 언어들을 꺼내어 밖으로 흘려보내고 싶다 했다.

엄유정_ Death Valley_ 39.5x39.5_oil on canvas_ 2015
엄유정은 주로 주변 환경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자신을 둘러싼 풍경과 사람들을 관찰하고 옮기는 회화, 드로잉 작업을 해왔다. 특히, 새로운 환경을 만날 때 그 장소를 관찰하고 그리는 일에 몰입한다. 레지던스에 입주하며 공터라는 말을 듣고 나서 과거에 여행했던 미국 중부지역의 데스밸리의 사진을 꺼내왔다. 데스밸리는 척박한 환경의 넓은 황무지인데, 이곳의 흙, 색 질감을 바라보며 오랫동안 퇴적된 시간을 느꼈다고 한다. 단순하게 생각하고 그리는 즐거움을 좋아하는 그는 마치 머리카락을 땋아 올리듯이 데스밸리의 질감을 화면에 역어 놓았다. <데스벨리>연작에서 그려낸 황무지는 척박하기보다 되려 아이스크림처럼 쫀득하게 느껴진다. 특정한 장소를 사실적으로 담아내기보다 스스로 감응으로 휘감아 그리는 그의 태도 때문일 것이다. 마치 어디에도 없을 것만 같은 풍경은 현실감각을 휘발시키고 어떤 낭만적인 정취를 더욱 부각한다.
엄유정의 프로그램<상영회: 어디에도 없이, 색, 풍경, 사람들>은 느릿느릿 만들어 본 드로잉 영상과 함께 아이슬란드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상영하고 본인이 감응을 느끼는 정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다. 제작자이자 활동가로 또, 디자이너라고 불릴 수 있는 최빛나를 정확히 부를 수 있는 직업군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청개구리 제작소를 운영하며 연구와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그는 <연산적 구식화와 주술적 노래>라는 문장을 제시했다. 컴퓨터프로그램 기초가 되는 코딩언어와 생활언어의 차이점과 틈에 대한 흥미로움을 코딩을 통한 직조의 방식을 통해 실험하고 관찰한다. 연산적 구식화라는 말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언어를 생활언어로 치환하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변환된 언어를 다시 음악적으로 변환하여 만든 노래를 주술적 노래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의 과정에서는 어떤 구문오류들이 발생한다. 이는 이진수의 딱딱한 컴퓨터프로그램언어가 암묵지적인 언어로 가득한 생활 위로 꺼내어지기 때문이다.

최빛나_ 연산적 구식화와 주술적 노래_ 가변크기_ 종이, 잉크, 각목, 아드위노, 스피커, 오아시스, 실, 오브제_ 2015
연산적 구식화와 주술적 노래
9월 6일 (일) 오후4시 - 6시
테이크아웃드로잉 한남동 옥상
(최빛나)
선비의 길: 이승의 다리를 건너서
9월17일(목)오후8시-10시
9월 29일(화)8시-10시
사직공원, 테이크아웃드로잉 이태원 3층
(김익현)
상영회: 어디에도 없이, 색, 풍경, 사람들
9월 18일 (금) 오후 8시 - 10시
테이크아웃드로잉 이태원 3층
(엄유정)
낭독회: 몸을 바꾸는 낮과 밤
9월 21일 (월) 오후 8시 - 9시
테이크아웃드로잉 이태원 옥상
(심혜린)
길고 잘못된것 Long, Wrong
9월 25일 (금) 오후 5시
테이크아웃드로잉 이태원 옥상
(김범종)
Takeout Drawing은 2006년 외부의 지원으로부터 독립하여, 문화공간을 그 자체로 “자가발전” 시키기 위한 새로운 방식의 브랜드 입니다. 예술가들을 테이크아웃드로잉으로 초대해 작업을 준비할 수 있는 “카페 레지던시 Cafe Residency” 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카페 레지던시는 카페를 예술가의 창작공간으로 두 달 동안 제공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제도적인 공간과 달리 카페라는 공적 공간을 매개로 창작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카페레지던시는 자연스레 대중에게 창작의 과정을 소개하여 결과 중심이 아닌 과정을 통한 창작행위에 주목합니다. / 테이크아웃드로잉
출처 - 테이크아웃드로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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