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현문
2024년 8월 15일 ~ 2024년 9월 8일
[서시]
이제 관습은 어느새 너를 빗겨가는 어제의 그리움이다. 여름의 운율이 스미는 종이, 그것을 매만지는 시선이 둥근 몸을 관통한다. 유충과 성충 사이 눈부심은 단지 고백하건데 더 이상 네 곡선이 그립지 않다 말한다.
고산을 오르는 연기, 광야에 내리는 소나기. 평평한 식물 섬유에 검은 은총이 골고루 미치기를 기다린다. 너는 연기와 소나기가 서로에게 도타운 까닭을 이해하는가. 세 사람은 그곳에서 여름의 울음을 거둔다. 뿌리 내린 소리. 태곳적 기억이 새삼 나무 뒤를 비추자 희귀한 버섯이 어린 미소로 네게 인사한다.
사뭇 충실하다.
[서문]
‘수요일 수요일’의 약자인 ‘쓔 ’는 소현문 연례 큐레토리얼 전시기획으로, 아시아 문화 정체성 및 예술 기반으로 창작하는 개인 또는 단체를 조명한다. 어제와 내일을 잇는 시간선에서 지나간 날을 기억하고 다가오는 날을 마중하는 부름에 수요일은 수요일과 다시 인사한다. 중의적 문맥에서 유연한 관계는 또 다른 연결을 상상한다. ‘수요일 수요일’은 한 단어를 반복하는 강조이자 앞말과 뒷말이 서로를 수식하거나 서술하는 관계이다. 수요일은 일주일 중에 소현문이 쉬는 요일이기에, ‘수수 ’는 전시를 여는 시간과 닫는 시간을 동시에 호명한다.
2024년 ‘쓔 ’는 고성, 김예령, 한연희가 종이 지지체에 프린트(print)하는 서정적인 흑백 및 그레이스케일 표현을 살피는 맥락에서, 시각 언어와 텍스트 언어가 이미지를 드러내는 고유한 방법을 차분히 추적한다. 식물섬유 배경에 스민 회색 물질은 각각 '연기', '소나기', '버섯'의 언어로서, 포스트-한국화(post-Korean painting)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이는 어딘가에 잠시 머물고 떠나는 시간이 또 다른 예술적 양상에 접어드는 국면을 목도하는 한편, 창작자가 서로 가까운 지역(수원/안산-김예령, 용인-고성, 광주-한연희)에서 문화적 토양을 함께 가꾸는 연대적 합의를 추동한다. 문화는 ‘시대의 결’이기에, 이곳에서의 발화는 이 땅에 새로운 흔적을 남긴다.
인쇄물로서의 시, 복제물으로서의 판화, 재출력물로서의 사진은 저마다 원본/원판과 일정한 거리를 형성하며 미학적 위계를 구축하는 매체이다. 잠깐 피어오르는 연기, 살짝 내리는 소나기, 불쑥 자라는 버섯을 정중히 떠나보내는 당신은 잠시나마 이미지를 옮기는 경로에서 만나는 세 사람을 닮은 세 사람을 본다.
고성은 지난 작업에서 도시와 먼 깊은 산속을 경유하며 시선의 성실한 여정을 옮겨왔다. 그는 불연기가 피어나는 산속 가운데 어느 존재자와 만나는 직전의 시간을 지연(delay)하며 한 자리에 중첩하는 시선의 총합을 다시 가늠한다. 사진에서 멈춘 시간이 다시 움직이는, 인식 너머의 가능태가 이루는 다중적 조건/구조를 탐문하는(inquiry) 질문이 고산을 하얗게 뒤덮는다. 굽은 등에 얹은 나뭇잎은 산등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로서, 사그라드는 불씨를 뒤돌아선 그늘로 옮기도록 한다.
김예령은 삶의 양상을 지각/감각에 의존하여 이미지로 대변한다. 그의 맥락에서 판화는 가장 진솔한 표현법 중 하나이다. 특히 종이 판화에서 특정한 사물을 판과 종이 사이에 껴서 표현하는 콜라그래프(collagraph) 기법을 기반으로 실제성을 지면에 드러내고, 표면의 미세한 틈과 먼지 등 작은 소리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그가 소나기 내리는 영역의 경계를 추적하는 작업은 일종의 중간 지대에서 짧은 시간, 무관심한 무언가, 간단한 넘나듦을 긍정하며 그것을 여전히 사랑하는 방법에 가깝다.
시를 쓰는 한연희에게 이곳은 시들의 또 다른 집이다. 독자는 그를 따라 ‘언니’를 부르며 삶의 틀에서 자유로운 순간을 맞이한다. 그는 전시의 두 번째 정오에 공간 한편에서 다른 작가의 시각언어에 반응하며 자기 손으로 직접 시를 쓰고, 전시의 마지막 토요일에 첫 시집 『폭설이었다 그 다음은』와 두 번째 시집 『희귀종 눈물귀신버섯』에 수록된 시를 낭독한다. 그의 특별한 움직임은 물질로서의 텍스트가 발화하는 조건을 확장하는 퍼포먼스로, 시의 본령을 따른다.
‘수요일’은 지난한 어제로 도색하기보다 찬란한 내일로 각색하는 곳이다. 일몰하는 버섯은 ‘네’가 멀어지는 이유를 이해한다. 검은 소나기는 ‘내’가 다가서는 이유를 이해한다. 흰 연기는 ‘우리’가 모이는 이유를 이해한다. 어제의 숲은 세계에 빗진 약속을 씻길 참이다.
아버지도 소년이고 싶다. (글 백필균)
사람
고성, 김예령, 한연희
때
전시: 2024. 8. 15.(목) ― 9. 8.(일)
낭독: 2024. 9. 7.(토) 늦은 5-7시
출처: 소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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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시간
월요일 12:00 - 18:00
화요일 12:00 - 18:00
수요일 휴관
목요일 12:00 - 18:00
금요일 12:00 - 18:00
토요일 12:00 - 18:00
일요일 12:00 - 18:00
휴관: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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