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극장
2019년 6월 5일 ~ 2019년 6월 16일
광주극장과 광주시네마테크는 프랑스 누벨바그를 이끈 기수들 중 유일한 여성감독으로 ‘누벨바그의 대모’라 불렸던 아녜스 바르다(Agnès Varda, 1928.5.30 ~ 2019.3.29)의 장편 데뷔작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1955)부터 아름다운 유작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2019)까지 9편의 작품을 상영하는 [아녜스 바르다 회고전]을 6월5일(수)부터 16일(일)까지 개최합니다.
아녜스 바르다는 91년의 생애동안 50여 편이 넘는 장·단편의 연출작을 꾸준히, 왕성하게 창작해온 감독으로 누구보다 먼저 여성의 목소리를 영화에 담기 시작한 선구자였으며, 영화의 형식을 자유롭게 오가며 매번 신선하고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어 낸 혁신적인 연출가였습니다.
그녀는 특히 주변 사람들의 삶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소박하지만 분주한 삶의 모습들을 카메라에 담아왔습니다. ‘주변’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과 세심한 관찰을 통해 사소한 것들로부터 성찰과 사유의 계기를 찾아내게 하는 아녜스 바르다의 작품들로 지친 일상에 위로와 응원을 받아가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녜스 바르다 Agnès Varda
아녜스 바르다(Agnès Varda, 1928.5.30~2019.3.29)는 1928년 5월 30일, 아를레트 바르다(Arlette Varda) 라는 이름으로 벨기에의 브뤼셀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프랑스인이고, 아버지는 소아시아에서 온 그리스 이민자 출신이었다. 5남매 중 셋째 딸인 아를레트 바르다는 18살이 되던 해 아녜스 바르다(Agnès Varda)로 개명한다. 2차 세계대전 중에 어머니의 고향인 프랑스 남부 항만도시 세트(Sète)로 피난해 온가족이 배에서 살기도 했는데, 청소년기를 보낸 이곳 세트에서 그녀의 첫 번째 영화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을 촬영했다.
전쟁이 끝난 후 파리로 이주해 소르본(Sorbonne) 대학에서 문학과 심리학을 공부했고, 에콜 드 루브르(Ecole du Louvre)에서 미술사를 전공하면서 큐레이터를 꿈꿨으나, 사진 수업을 듣고 흥미를 느껴 사진작가로 진로를 바꾸었다. 졸업 후 프랑스 국립민중극장(Theatre national populaire)의 공식 사진사가 되는 등 사진작가로 승승장구하며 커리어를 쌓아가던 그녀는 우연한 기회에 <라 푸엥트 쿠르트로의 여행>으로 연출 데뷔를 하면서 영화감독의 길을 걷게 된다.
저예산으로 빠르게 찍은 <라 푸앵 쿠르트로의 여행>은 ‘까이에 뒤 시네마’ 세대보다도 5년 일찍 새로운 영화를 발명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바르다를 주목받는 감독으로 만들었고, 이 영화의 편집 과정에서 알랭 레네를 알게 되면서 영화 전반에 대한 지식을 넓혔다. 또한 훗날 남편이 되는 자크 드미를 비롯해 장 뤽 고다르, 프랑소와 트뤼포, 에릭 로메르와 같은 누벨바그 멤버들과도 교류하게 된다.
이후 몇 편의 단편과 다큐를 만들다가 1962년 두 번째 장편 <5시에서 7시까지의 클레오> 그리고 1965년 연출작 <행복>을 통해 페미니즘과 사회비판을 주제로 다큐멘터리와 극영화 간의 경계 허물기를 시도하는 진보적인 실험을 내세워 평단의 무한한 지지를 받았고, 후배 감독 샹탈 아커만과 더불어 현대 여성 감독의 선구주자가 된다.
<행복> 이후의 작업들은 히피처럼 떠돌며 배 위에서만 생활하는 삼촌을 쫓는 <얀코 삼촌>(Oncle Yanco, 1967), 누벨바그 감독들과 함께한 옴니버스 영화 <베트남에서 멀리 떨어져>(Far from Vietnam, 1967), 남편 자크 드미와 함께 미국을 방문했을 때 액티비스트 휴이 뉴튼(Huey Newton)에 헌정하기 위해 만든 <블랙 팬서>(Black Panthers, 1969)등과 같이 당시의 정치적 이슈에 큰 영향을 받은 작품들이 주를 이루었다. 한편 1970년에 연출한 TV 영화 <나우시카>(Nausicaa)는 프랑스에 사는 그리스인들에 관한 TV 다큐였는데, 급진적인 정치 성향을 띈 내용 때문에 그리스 군사정부에 의해 상영이 금지되기도 했다.
바르다는 1971년 ‘낙태 합법화에 찬성하는 343명의 선언’(Manifeste des 343)에 서명한 여성 지식인이었으며, 1977년에는 자신이 직접 시네-타마리스(Cine-Tamaris)라는 제작사를 설립했다. ‘시네-타마리스’의 첫 번째 작품은 <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여자>(L'une chante, l'autre pas, 1977)였는데, 페미니스트의 시선으로 여성이라는 존재에 찬사를 바치는 이 영화는 15년에 걸친 두 여성의 우정과 여성운동의 과정을 그렸다. <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여자>는 바르다 영화 중 가장 분명하게 페미니즘적인 내용을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었고, 당시 가열차게 진행되던 여성해방운동에 힘입어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시몽 시네마의 101일 밤>(The One Hundred and One Nights of Simon Cinema, 1995)을 마지막으로 극영화 연출은 중단했지만 오히려 2000년대부터 다큐멘터리로 활동 무대를 전환하면서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Les Glaneurs Et La Glaneuse, 2000), <아녜스 바르다의 해변>(Les Plages D'Agnes, 2008)등 다수의 작품을 통해 디지털 영화의 새로운 경지를 열었다는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2015년 아녜스 바르다는 제68회 칸국제영화제에서 명예 황금종려상을 받게 되었는데, 이는 2002년 우디 앨런, 2009년 클린트 이스트우드, 2011년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에 이어 네 번째 수상이었다. 누벨바그의 유일한 여기수로 타계 전까지 왕성한 활동을 이어오던 아녜스 바르다는 2019년 3월 28일, 암 합병증으로 생을 마감했다. 파리 몽파르나스 묘지에 안장 되었으며, 2019년 제72회 칸영화제는 그녀를 추모하며 아녜스 바르다가 첫 영화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을 촬영하던 모습을 영화제의 공식 포스터로 지정해 마지막 헌사를 바쳤다.
상영작 및 상영시간표: https://cafe.naver.com/cinemagwangju
주최: 광주극장, 광주시네마테크
후원: 영화진흥위원회,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서울시와 서울영상위원회의 지원으로 아카이빙한 (사)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의 필름 라이브러리 제공)
출처: 광주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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