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도스 신관
2018년 8월 25일 ~ 2018년 9월 3일
열네살 합성수지에 채색, 조명 가변설치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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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異邦)의 새벽이 온다. - <그늘의 새벽>에 부쳐
백용성(철학자, 평론가)
필히 뭔가를 탐구하는 도인(道人)들에게 하산(下山)의 시간이 온다. '마의 산'에서 지낸 한스 카스트로프의 7년처럼 삶과 죽음, 종교와 극락, 예술과 구원, 불안과 어둠이 노니는 숲을 나오면 이제 속세가 펼쳐진다. <<그늘의 새벽 >>은 그렇게 약간은 낯선 속세의 평지에 밝아오기 시작한다. 이번 전시에서 우리는 안경진의 귀환 서사 같은 것을 보게 된다. 이전에 나타났던 산 속에서의 구도(求道)적인 자세와는 사뭇 달라졌다. 작품 크기는 작아졌고, 인물 군들은 일상의 모습을 취하고 있다. 작품에 색들도 더해졌다. 격렬한 고뇌 후의 어떤 고요한 단아함 같은 것이 깃들어 있다. 물론 표현의 형식과 달리 내용에서의 정념은 지속된다. 불안, 공포, 괴로움, 열정, 상심…….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낯설지만, <지금-여기>의 것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그늘의 새벽에서 감성의 대립들을 본다. 열네 살 아이의 천진함과 야수성, 미녀와 야수, 불안의 표정과 그 대상인 그림자, 일상의 피로한 모습과 방황의 그림자 형상들. 하지만 이러한 대립은 순전 서로 외적인 유희로 그치지 않는다. (그런 유희라면 작품들은 자신의 위치를 상실하고 한낱 빛-그림자 유희로 전락할 것이다.) 먼저 대립들을 내화하는 서사적 선(線)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외적인 대립이 아니라 내면의 자연스런 분비물처럼 정념의 방출, 방사가 있다. 한 청년이 피로한 하루를 마치고 퇴근하고 있다. 어깨는 쳐지고 비가 왔는지 코트차림에 우산을 들고 있다. 그리고 그가 방사하는 내면의 그림자는 어떤 절규하는 형상이다. <궂은 날>이 주는 독특한 순간이다. 이때 빛과 그림자 관계는 단순 외부의 조명과 그 효과가 아니라 작품 세계의 내부 요인으로 진입한다. <자유>가 주는 독특한 득도의 경지랄까 어떤 수준은 이러한 내화된 광학적 유희 속에서 스스로를 펼치고 있다.
물론 이런 유희들이 일종의 심리드라마를 연출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소위 말하는 현대인의 불안과 절망이라는 심리를 투사했다는 것, 그리고 현대 예술은 이런 서술기능에 종속되는 것, 구상으로 수렴되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 장 프랑소와 리오타르는 이런 부분을 가장 확고하게 비판했다. 문제는 담론에 종속된, 서술에 종속된 ‘시각적인 것’ 즉 ‘형상적인 것’의 해방을 어떻게 가능하게 할 것인가에 있다. 하지만 안경진의 조형언어들은 서술적이거나 서사적인 것에 단지 종속되고 그것에 보조적인 역할만을 하고 있을까?
여기서 우리는 두 번째의 내화하는 어떤 선을 말해야 한다. 우리는 여기서 어떤 서사의 시작과 동시에 나타나는 서사의 중단 같은 것마저 본다. 그 선이란 파울 클레가 말하는 동시적 다차원 현상을 이끄는 선이다. 그것은 먼저 주어-술어(주체-속성)관계의 단선적인 흐름을 방해하고 다른 차원들을 확장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예를 들어 <궂은 날>의 피로한 나(주어)와 그 ‘나’가 갖는 ‘절규하는 속성’의 관계는 조형의 형태, 무게, 빛과 색 자체의 드러남을 통해서 흐릿해지고 뒤로 물러나며 어떤 강한 하나의 현상을 이끌어낸다. 즉 어떤 압도적인 것 혹은 어떤 비범한 시간이 개입하면서 차원들이 동시화가 나타난다. <나를 믿는다>는 빛과 그림자의 광학효과, 조형화된 형상, 색들이 각각의 차원들을 펼치면서 한 순간의 어떤 동시성을 획득하고 있다. 거기에서 모든 것은 구상적인 익숙한 형태들을 유지하면서도(‘저것은 앉은 사람이다’, ‘저것은 날개다’) 그 이질성으로 인해 (조형물과 그림자는 이질적이다, 사람이 날개를 가졌다) 구상적인 것, 서사적인 것을 뚫고 나와 진정한 어떤 시각 자체의 새로운 다차원을 구성하는 하나의 힘이 된다.
도인은 모험가이며 모험가인 한에서 도인이다. 그가 뚫고 지나간 세월과 경지를 나는 믿는다. 우리는 늘 카프카의 주인공 칼 로스만('아메리카'')과 같다. 방황이 있고, 모험이 있으며 고통이, 즐거움이 있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꽃은 날리고, 다시 이방(異邦)의 새벽이 온다. 이제 자리를 털고 일어나면 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우리는 그 어떤 대답으로도 완전히 소진되지 않는 물음을 품고 오늘도 길을 걷는다.
출처: 갤러리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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