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예술공간
2024년 12월 6일 ~ 2025년 1월 18일
안규철 설명?서
안규철은 누구인가? 안규철(安奎哲, Ahn Kyuchul)은 1955년 출생, 유년기를 춘천에서 보내다 국민학교 시절 상경하여 보성중고교를 졸업, 서울대학교 조소과에 73학번으로 입학, 졸업 후 1980년 『공간』 기자직을 잠시 거쳐 약 7년간 『계간미술』 기자로 활동하였으며, 1985년 <현실과 발언> 동인으로 참가하였고 1987년 프랑스를 거쳐 독일로 유학, 이듬해 독일 슈투트가르트 국립미술학교에 입학 후 주제페 스파뉼로(Giuseppe Spagnulo)에게 사사, 1992년도 유학 중 샘터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으며, 1995년 귀국 이후에는 1997년도 한국예술종합학교 창립 멤버로 참가하여 2021까지 미술원 교수, 미술원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라는 설명이 그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소위 연대기적 서술이 될 수 있을 테다. 그러나 이러한 정보는 그를 상술한다기보단 그저 안규철이란 인물에 대한 건조한 색인에 지나지 않는다. 그의 ‘정체’를 규명하라면, 우리는 일반적으로 인물의 지난 행위들로부터 그를 추론 해보려 할 수도 있을 텐데, 예컨대 직업적 분류의 차원에서 그의 행보를 되짚어 보자면 그를 기자, 저술가, 번역가, 교육자, 작가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중에서도 약 40여년 간 시각예술의 자장 내에서 ‘작가’로서의 활동을 고려했을 때, 그에겐 ‘작가 안규철’이라는 호명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
그렇다면 ‘작가 안규철’은 누구인가? 어떤 작가인가? 기실 ‘작가 안규철’에 대한 혹은 안규철-작업에 대한 설명을 모두 모은다면 ‘안규철 매뉴얼’이라든가 ‘안규철 사전’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한 두꺼운 책 하나가 족히 나올 정도로, 그 답변은 차고 넘친다. 방대한 설명에 따르면, 그는 “일상 사물을 사용”하되 사물의 “기표의 가장 드러나는 의미를 감추지 않은 채 의미의 그물망에서 다른 의미들을 건져내(1)”는 작가로, “단순한 형체 제거의 추상으로서가 아닌 개념적 언어로서의 초월을 가능케 한” “‘사물들의 통역가’로 불리’(2)“울 수 있는 작가다. 이러한 까닭에 그는 종종 ‘개념주의 작가’로 분류되며, “조형으로서의 작업이 아니라 관념적 아이디어의 유희”에 그치는 일종의 언어적 농담의 생산자처럼 평가되기도 한다. 하지만 대상의 이미지 자체보다는 언어에 의존한다고 해도 좋을, “시각적 금욕주의”자인 안규철은 동시에, 일상적 사물의 외형을 재현하는 데 있어 “전적으로 수공적 작업 방식을 고수할 만큼 조형 행위에 큰 의미를 두고 있(3)” 는 ‘조각가’이기도 하다. 작업의 주제에 있어서는, 그의 작업에 “일관된 주제가 있다면 (...) 객관적 시각 세계도, 정치적 현실도, 초월적 세계도 아닌, 또는 그 모든 것을 포함한 ‘미술’이라는 명제”라 설명되어 있다. 반면 그러면서도 그의 ‘메타 미술’은, “단일 논리의 허구를 노출시키고 그것에 의한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지향하는 점에서 정치적 제스처(4)”이기도 하다. 결국 ‘작가 안규철’ 또는 안규철이라는 (이름표를 단) 작업-작가는 개념이면서 동시에 형상이고, 미술이면서 동시에 정치다. 언뜻 모순된, 서로 어긋나는 것들의 종합이 결국 안규철-작업-작가인 셈인데, 이를 비약적으로 말하면 ‘작가 안규철’은 모든 ‘작가’이며 동시에 어떠한 ‘작가’도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안규철과 안규철들
“그 대신에 나는 질문을 하기로 했다. 교훈과 설교보다 질문이 내 작업의 목표라면, 그 작업의 성패는 그 질문들이 관객에게 회피할 수 없는 절실한 질문이 되느냐, 그렇지 않고 하나 마나 한 질문이 되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 안규철, 『안규철의 질문들』
“돌이켜보면 이리저리 기울고 되돌아오고 상처받으면서도 어느 쪽에서도 방향을 정하지 못했다. 우유부단한 탓인지 모든 것을 향해 항상 열려 있기를 바랐다. 이제 나는 내 속에 여러 명의 내가 들어 있음을 인정하고, 그 각자의 나들을 살아 내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 안규철, 「나의 작가적 전개 과정에 대해」
이러한 모순, ‘작가 안규철’이 안규철이면서 동시에 안규철 아닌 모든 ‘작가’가 되는 까닭은, 안규철 스스로가 “작가란 ‘질문하는 사람’”으로 규명하듯 ‘작가 안규철’이란 질문자, 아니 어쩌면 모든 질문들이기 때문이다. 다만 ‘작가 안규철’이란 질문의 특이성은 그가 첫 개인전에서 도발하듯 선언했고 약 30년이 지나서도 고수한 것처럼, ‘작가 안규철’이 “외람”될지라도 자꾸만 “잡아보라”며 “달아(5)”나는 질문, 즉 답을 희구하거나 스스로 답이 됨으로써 종결되지 않는 질문이라는 데 있다. 답으로부터 우회함으로써 답 아닌 것들의 차이를, 혹은 답의 윤곽만을 어렴풋이 드러내려는 반복되는 시도. 혹은 질문을 가장한, 답이 예상되는 질문으로 오히려 그 뻔한 답을 도출시키는 제조건을 상기시키는 반문이 ‘작가 안규철’이란 질문이다.”
그러나 반문의 모순은 또 다른 의문을 불러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무한한 되물음의 꼬리물기에 빠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품는다. 덕분에 반문은 특정한 질문의 대상과 조건을 넘어선 연속적 사유를 던져줄 ‘수 도’ 있다. 다만 반문의 가능성이 ‘태’에 지나지 않는 것은, 결국 반문은 그 태생적 모순으로 인해 질문이나 대답 어디로도 향하지 않은 것처럼 언뜻 보이기 때문이다. 안규철의 질문 역시 단편적으로는 지독한 회의에 젖은 평서문, 혹은 주장도 반론도 아닌 그저 질문을 위한 질문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반문은 연속적인 질답의 충돌 속에서야 그것의 가능태를 성질로 발현시킬 수 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안규철은 ‘작가 안규철’의 지난 40여년 간의 질문 끝에도 “아직 하지 않은 질문이 없는지” 수없이 되돌아본다. 또 하나의 물음표를 찍고 마치는 것을 마치 “작가적 한계를 스스로 받아들(5)”이는 섣부른 종결로 여긴다. 결국 안규철에게 있어 ‘작가 안규철’은 앞서 세운 논리를 부정하거나 우회하거나 뒤엎고 보충하는 상이한 반문들로 끝없이 연쇄해 등장(해야만)한다. 덕분에 ‘작가 안규철’은 “여러 개의 동시다발적이고 서로 상충하는 (...) 하나로 규정될 수 없는 작가(6)”로 분화된다.
정체하지 않는 ‘작가 안규철’의 정체성들은, 여기 아마도예술공간의 서로 엇비슷하게 다른 12개 공간을 임시 거처로 삼아 제각기 다른 형과 태의 작품으로 그 목소리를 드러낸다. 신뢰하나 무한히 의심하는, 진지하나 한낱 농담에 지나지 않는, 제자리를 맴도나 방향성을 띤, 무엇도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넌지시 가리키는 거짓 마침(7)의 부조리한 음성들. 그러나 불협화음도 연속되며 공명하는 하나의 곡을 만들어 내듯, 각기 다른 안규철들은 서로에게 묻고 또 응하며 또 하나의 물음으로 공진한다. 작가 안규철이란 누구인가, 무엇을 하는/해야 할 작가인가라는 재귀적 질문들로부터 동심원을 그리듯 증폭되어 전달된 의문문들. 그 수신항에, 수신항에, 당신은 서있다. 모든 반문이 전제하는 뻔한 답처럼 극히 일상적인 외형들 앞에서, 또 답변을 원하는 것인지 그저 선문답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 아리송한 문장들 앞에서 당신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여기 놓인 물음표들은 그 의구심을 당신의 내면과 그 바깥으로 되돌릴 것을 종용한다. 당연한 것처럼 놓인 이 세상 모든 온점들의 심부를 향해, 새삼스런 되물음의 갈고리를 드리울 것을.
[각주]
(1) 김해주, 「안부를 전하는 편지」,, 『모든 것이면서 아무것도 아닌 것』(워크룸프레스, 2014), 37
(2) 이건수, 「언어 같은 사물, 사물 같은 언어」, 위의 책, 301
(3) 안소연, 「삶의 부재를 사유하는 공간」, 위의 책, 309
(4) 윤난지, 「바깥의 ‘흔적’을 담은 메타 미술」, 위의 책, 435-442
(5) 안규철, 「그림, 요리, 사냥」(1992) / 안규철, 「나의 작가적 전개 과정에 대해」(2004)
(6) 안규철, 『안규철의 질문들』(워크룸프레스, 2024), 82
(7) 거짓 종지, 위장 종지(Deceptive Cadence). 화성학적으로 곡의 한 구조 또는 곡 자체의 긴장이 해결·종결될 것으로 예상되는 부분에 전형적인 종결 화성 대신 나타나는 진행. 거짓 마침 화성은 종결을 대리하여 기대감을 무너뜨리고 연결, 전조 등을 통해 곡의 확장을 가능하게 한다.
참여작가: 안규철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시각예술창작주체
* 이 전시는 2024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시각예술창작주체(공간)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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