킵인터치 서울
2020년 8월 20일 ~ 2020년 9월 2일
안녕을 고하는 그림
안부의 ‘만나게 해 주쇼’ 프로젝트에 대하여
글: 김동규
누군가와의 관계의 양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오랜 시간을 걸쳐 형성된 가족 구성원 간의 관계일 경우 더욱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안부 작가는 지난 몇 년 간 진행해온 ‘만나게 해 주쇼’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애증과 불통으로 점철된 아버지와의 관계를 변화시키기 위한 작업들을 진행해왔다. 이를테면 외출하는 아버지의 모습들을 반복하여 사진으로 담아본다거나, 아버지의 생애에 대한 소소한 정보들을 묻는 설문지를 만들어 유포한다거나, 작가 스스로 그 설문에 참여하는 임상 실험자가 되어본다거나 하는 식이었다. 그리고 그는 급기야 아버지를 눈앞의 모델로 앉혀두고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한다. 그것은 대화가 고통스러워 함께 마주 앉는 자리를 피하다 보니 점점 더 소원해지기만 하던 부자 관계의 양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이었다 한다. 실물의 아버지를 대면한 채 그의 초상화를 그리는 행위는, 멀어져가던 두 인물을 반 강제적으로 마주하게 만드는 일종의 무대 장치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그는 마치 관계회복을 테마로 한 TV 예능프로그램의 프로듀서와 같은 태도로, 다양한 방법들을 고안해가며 자신과 아버지 간의 소통을 관장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이 일련의 노력들이 극적으로 두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켜 종국엔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린다는 식의 결론으로 연출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예술은 예능 컨텐츠가 아닌 현실의 사건이며 안부는 방송 프로듀서가 아닌 관계의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현실’은 언제나 ‘상상’ 이상으로 무자비하거나 무덤덤하기 마련이다. 혹여 이 프로젝트가 앞으로도 훨씬 더 긴 시간동안 지속되어 안부와 그 부친의 삶이 유의미한 변화를 겪는다 하더라도 그것이 전시 등의 이벤트를 통해 쾌적하게 ‘관람’할 수 있는 형태로 시각화되기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무척이나 매끄러운 과정을 통해 무척이나 아름답게 갈무리된 프로젝트가 무척이나 완결된 형식으로 시각화되는 케이스들이 없지 않은 것 같다만, 작업의 성취라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이다. 삶-그러니까, 예술-은, 근본적으로 수많은 결여와 오류들로 점철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프로젝트의 성취는 부친과의 관계 개선의 여부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다. ‘만나게 해 주쇼’ 프로젝트는, 자신의 삶 속에서 절박하게 느껴온 어떤 결여와 오류에 대해 한 창작자가 창작을 무기로 투쟁하는 과정으로 보아야한다. 아버지의 사진을 찍고, 아버지에 대한 설문을 제작하고, 아버지를 그리는 등의, 안부 작가가 고안해 낸 이런 저런 저런 대화의 형식들은 문제 해결을 위한 (유사)솔루션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그 개별적인 아이디어들이 발생시키는 장면들의 실상은 다음과 같다 :
ⓐ 안부는 아버지가 외출할 때마다 같은 장소에서의 같은 자세를 요구한 후 그의 외양을 촬 영-shooting 하였다.
ⓑ 안부는 아버지의 신상에 대한 소소한 정보들을 문장으로 기록하였다. 부정확하거나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정보들에 대해서는 아버지를 앉혀놓고 심문하였다.
ⓒ 안부는 아버지의 생활공간으로 침투하여 오랜 시간 아버지를 쇼파에 앉혀둔 채 그의 모습을 자신의 시각적 취향대로 캔버스 위에 재구성하였다.
유교 및 군대 문화의 영향 하에 있는 한국 사회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동등한 인격으로써 대화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평생 불통을 느끼며 아버지의 권위와 침묵을 올려다봐야했던 한 창작자가 변화를 모색하는 와중에 취한 첫 선택은, 다양한 창작의 도구들을 딛고 높게 서서 아버지와의 권력 관계를 역전시키는 것이었다. ⓐ 카메라 앞에서 아버지의 신체는 속수무책으로 굳어진다. ⓑ 세세한 질문과 답변의 문장들을 통해 아버지에 대한 정보는 적나라하게 객관화된다. ⓒ 캔버스에 휘두르는 붓과 나이프로 인해 아버지의 신체는 무방비로 변형된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 있어서 그 행위의 주체인 안부의 권위는, 절대적이다. 안부는 관계의 당사자이자 대화의 제안자이자 재현의 기술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난생 처음 안부의 지시에 순응한다.
이상이, 2019년까지의 ‘만나게 해 주쇼’ 프로젝트가 진행되어 온 양상이다만, 사실 안부의 권위에 대한 위의 언급에는 한 가지 오류가 숨어있다. 안부는 관계의 당사자이자 대화의 제안자이자, 사진 및 설문을 통한 재현의 기술자일 수는 있지만 아버지를 ‘그리는’ 행위 - ‘회화’라는 방법을 통한 재현에 있어서는 기술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진을 전공한 그는 ‘그림’을 그리는 데에 있어서는 문외한에 가까운 상태였다. 아닌게 아니라 아버지를 그리는 과정을 기록한 영상 속에서, 아버지는 의아해하며 ‘니 그림도 하나?’라던지 ‘니가 그림을 잘 그리나?’하는 식의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권력 관계의 역전’이라는 양상에 있어서의 결여, 혹은 오류는 이 부분이다. 안부의 그림 이력은 아버지와의 관계를 역전시킬 만큼의 권위를 갖지 못한다는 지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부는 그림 그리기를 강행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무방비로 주저앉아 안부에게 순응했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이 오류의 지점이 본 프로젝트의 분수령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을 저리 마주앉을 수 있게 해주었던 것은 무엇인가? 그 지긋지긋하고 끈적끈적하고 상투적인 단어를, 굳이 여기서 명시하지 않겠다. 하지만 안부는 어쩌면 이미 이 게임의 전제를 알고 있을 것이다.
2020년의 안부는, 지속적으로 회화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위압적이던 아버지의 모습을 꾸덕꾸덕 재현하던 초기 몇 점의 그림들과는 달리, 안부의 최근작들에서는 터치와 분절적인 선묘를 통해 대상-그러니까, ‘아버지’의 도상-을 해체하는 경향이 역력하다. 아버지라는 인물을 표상하던 ‘위압적인 기호’의 위상이 흔들린다. 안부가 해체하는 것은 아버지의 실존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속에 있던, 상징적인 기호로써의 아버지의 존재일 것이다. 안부에게 ‘회화’라는 방식이 필요했던 부분은 이 지점인지도 모른다. 안녕을 고하는 그림. 그리하여 이 프로젝트를 통해 안부가 떠나보내는 것은 오랜 시간 자신의 가슴에 맺혀왔던 ‘불통의 아버지’일 것이며, 그 빈자리를 ‘회화’라는 행위가 메우게 되지 않을는지, 조심스레 예상해본다.
참여작가: 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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