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갤러리
2026년 4월 3일 ~ 2026년 5월 17일
이름 붙여지기 이전의 세상을 바라보는 경험은 어떤 것일까.
우리는 보통 이미지를 ‘읽으려’ 한다. 눈앞의 형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짐작하며 서둘러 결론에 도달하려 애쓴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즉각 파악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양현모의 회화는 이러한 관성에서 비껴 서 있다. 특정한 대상을 재현하거나 메시지를 제시하지 않는 대신 조형 요소들이 만들어내는 관계에 집중한다.
최근 작업에 등장하는 기하학적 구조는 작가가 아이와 함께 초점책을 보던 순간에서 출발했다. 흑백의 대비에서 시작해 이제 막 색을 인지하기 시작한 영아를 위한 책을 보며 작가는 ‘언어 없이 이루어지는 보기’를 다시 떠올렸다. 점과 선, 패턴 앞에서 관람자가 이미지를 해독하기보다 조형의 울림을 먼저 느낄 수 있도록 이끈다. 이는 물질적 표면에서도 드러난다. 작가는 붓을 두드려 올리는 방식으로 화면을 만든다. 그 과정에서 뚜렷한 윤곽은 흐려지고 미세하게 흔들리며 겹쳐지는 뿌연 층이 생겨난다.
멀리서 보면 하나의 색면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무수히 반복된 두드림의 흔적이 드러난다. 붓자국들이 미묘하게 어긋나며 화면에 잔잔한 떨림을 만든다. 성긴 털실의 짜임을 연상시키기도 하는 이 질감은 형태의 경계를 지우고, 형상을 공중에 떠 있는 듯 보이게 한다.
“나의 그림은 반복, 대칭, 그리드와 같은 기하학적 조형을 그리는데, 이 무표정한 조형은 서사나 상징, 감정을 호출하지 않기에 해석을 유예한다. 이처럼 조용한 자리에서 시선은 의미를 찾기보다 색, 모양, 배열, 붓의 흔적과 깊이 같은 표면의 사건들에 집중하게 된다. 의미가 희미해질 때, 이미지는 더 선명해진다.“
– 양현모 작가 노트에서 발췌
비평가 수전 손택 Susan Sontag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술에 대한 해석이 아니라, 예술을 느끼는 감각의 회복이라고 말했다. 양현모의 회화는 색과 선, 표면의 떨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한다. 정답을 구하는 마음을 내려놓을 때, 시선은 비로소 화면 위에 오래 머물며 이미지의 기척과 깊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심지현
EM
참여작가: 양현모
출처: EM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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