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175
2015년 10월 28일 ~ 2015년 11월 11일
풍경이 되는 말들
그 자체로 풍경이 되는 ‘말들’이 있다. <얼굴 없는 눈>*이란 제목을 작가들과 나눴을 때, 셋이 잠시 어떤 풍경을 공유하고 있음을 깨달았던 그 순간이 나에게 저 말을 일러준 셈이다. 그것은 당연하면서도 어떻게 보면 당연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 풍경과 순간은 아주 얇은 막이여서 쉽게 비춰볼 수 있는 반면 투과되는 것도 많아 흐릿한 상이 어지럽게 흔들리곤 했다.
전시를 앞두고, 주제기획전이라는 전시의 형태를 생각하면서 그 얇은 막에 뚜렷한 상이 맺히도록 해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 끝에 말을 뱉은 날이 있었다. 몇 마디는 주워 담아야만 했던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자체로 풍경을 깨트리는 말들이 있다.
말들이 풍경이 되고, 말들이 풍경을 깨트린다. 때문에 글을 쓴다는 것, 작업을 글로 언명한다는 것에 짙은 두려움이 있다. 글로 푸는 것에 앞서 감각을 어떻게 관객과 나눌 수 있을까란 질문은 여전히 어려운 것이다. 사적인 감각을 공적인 장에 풀어놓으면서 어떤 풍경을 공유할 수 있는 막을 만든다는 것, 그 막이 그날 우리에게 찾아왔던 순간과 같기를 바란다는 것, 이 말이 풍경이 될 수 있을까.
얼굴 없는 눈
본 전시의 제목은 조르주 프랑주 감독의 영화 ‘얼굴 없는 눈’ (1961) 에서 크리스티안이 스스로의 얼굴을 더듬으며 각성했던 공포[두려움∙불안∙윤리∙양심∙선언∙심판]의 감각을 빌려오기 위해 차용한 것이다.
온갖 묵시록과 예언, 심판이 난무하던 세기말을 넘어서면서 우리는 마치 스스로를 구원한 것처럼, 마치 모든 것이, 우리 모두, 21세기에 태어난 것처럼 그렇게 또-다시, 열다섯 소년으로 태어났다. ‘근대’에 대한 되새김질에도 불구하고 “20세기 소년들의 잔혹한 시기(황세준)”는 각성과 복기(復棋)의 감각을 되살리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우리는 어쩌다 공포의 감각을 잃어버리게 되었을까.
“우리의 얼굴이 인용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롤랑 바르트의 말을 빌리자면, 사건의 현장에서 우리의 얼굴은 멀쩡하다. 공포에 질린 얼굴은 망가진 얼굴일 것이다. <얼굴 없는 눈>은 그 얼굴 없는 눈으로 ‘대면’하는 각성과 복기에 관한 이야기다.
목해경 Horizon(s)
사자를 만난 프랜시스 머콤버, 카바(Kaba), 얼음을 처음 만진 마콘도의 어린아이, 페르시아 정원, 닐 암스트롱, 그리고 바벨의 도서관과 회오리 바람 속으로 들어가는 남자.

Horizon(s) 01, 투채널비디오, 12분 45초, 2015
당신은 <Horizon_01>을 바라보며, 횃불이 장작불로 점화되듯이, 사적인 기억을 떠올릴 것이다. 불은 인간이 쟁취한 선물이자 공포를 지우는 빛이다. 태초의 빛에는 그림자가 없었고 어둠은 그림자를 가지지 못한다. 남자는 그림자를 등에 지고 있다.

Horizon(s) 02, 투채널비디오, 5분 4초, 2015
당신은 <Horizon_02>를 바라보며, 달이 차오르듯이, 사적인 기억을 떠올릴 것이다. 달은 사람이 각인된 곳이다. 단 한 사람의 발자국을 모두가 공유하였고, 종교가 없이도 품을 수 있는 것이었다. 두 여자는 각자 자신의 머리 위에 달을 이고 있다.
박소흔 흉_터
벌어진 곳 사이로 그 일렁임이 차오르고 있었다.

흉_ 공중에 설치, 2015 l 터_ 실크, 바닥에 설치, 2015
당신은 누군가의 몸에 난 흉터를 감지하듯이, 천천히, 구김의 흔적을 더듬을 것이다. 천의 구김은 작가가 잠을 자는 동안 몸의 가장 가까이/ 밖에 허물처럼 선을 그리고-지운 복기의 시간이다. 잠은 죽음의 바깥을 맴돈다. 1991년, 1997년, 2008년, 2012년, 2013년, 나는 세 번 시신을 보았고, 두 번은 보지 않았다. 2014년은 시신을 보지 않아도 시신을 보는 해였다.

터_실크, 바닥에 설치_가변크기_2015
당신은 주름이 새겨진 천을, 망설이면서,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그 주름은 영상의 빛이 나타날 때, 잠깐 모습을 드러내는 흠집/ 돌기 같은 것이다. 찰나는 잠시 투사(projection)된다. 그 해는 조훈현이 제자 이창호를 꺾고 다시 정상에 오른 해였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환영을 보았던 시절이기도 했다.
출처 - 갤러리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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