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22
2017년 4월 14일 ~ 2017년 5월 2일
엄상빈, 양양 1990 (Gelatin silver print, 16×20 in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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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 엄상빈은 <아바이마을 사람들>, <학교 이야기>, <생명의 소리> 등의 전시와 사진집으로 우리에게 분단 작업, 학교 현장 사진, 환경사진 등으로 익숙한 작가이다. 2008년 <들풀 같은 사람들>에 이어 2015년 <창신동 이야기>를 통해서 민중들의 삶을 사진과 구술로 엮어 내는 작가로도 평을 받고 있다.
이번 전시는 그의 작업 중 근간에 해당되는 분단 작업의 연장선이다. 아바이마을 30년 작업처럼 긴 호흡으로 지켜본 철조망 등 군 시설물과 지역민들의 모습들을 담담하게 기록한 다큐멘터리 작업이다. 군사정권, 문민정부 등 정권의 흐름과 통치이념이 작품 속에 그대로 담겨있어 마치 남북관계에 따른 철조망 변모의 연대기를 보는 듯하다.
작가가 직접 인화한 흑백사진 35점과 최근에 찍은 컬러사진 십여 장을 함께 전시한다. 점점 보기 힘들어지는 은염 흑백사진의 맛을 느껴볼 수 있는 전시가 되리라 기대한다.
작가 노트
철조망 애환
바닷가에 끊임없이 이어진 철조망은 그냥 철조망이 아니다. 우리 현대사의 정치적 담론을 함축하여 보여주는 한 단면이기도 하다.
1960년대 후반 바닷가에 처음 등장한 군 경계 시설물은 ‘흔적선 끌기’였다. 모래밭을 써레질하듯 평평하게 밀어 놓음으로써 밤사이 침입자의 발자국 등 흔적을 찾기 위함이었다. 그 무렵 섬뜩한 불빛이 수 킬로미터나 나가는 ‘서치라이트’라 부르던 탐조등도 등장했다. 그 다음은 나무 울타리를 연상케 하는 ‘목책’이 생겨났고, 1970년대 후반에 와서야 비로소 지금의 ‘철조망’이 등장했다.
철조망은 한 때 녹슬고 삭아서 기둥만 남을 정도로 관심 밖으로 밀려나기도 했지만 1996년 ‘동해안 북한 잠수함 침투’ 같은 사건에 따라 더욱 튼튼한 모습으로 규모와 형태가 바뀌기도 했다. 이러한 철조망의 변모는 당시의 통치이념이나 남북 관계의 분위기와 그 맥을 같이 했다. 철조망에 내걸린 문구도 ‘접근하면 발포함’, ‘접근금지’와 같이 군사정권다운 위협적이고 일방적인 명령어였다. 오후 6시만 지나면 살벌한 분위기가 감도는 통제구역으로 바뀐 채 밤을 맞았다.
그런가하면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성화 봉송 때는 ‘자연보호 The Preservation of Nature' 라는 거짓문구를 붙이는가하면, 7번국도에서 보이는 수많은 경계초소를 감추느라 커다란 소나무를 베어다 가려놓기까지 했다. 이는 성화 봉송을 취재하는 외신기자들의 눈을 속이려는 임시방편이었지만, 지나가는 한순간을 위해 베어진 소나무는 동해안만 해도 수만, 수십만 그루였으리라 짐작된다. 이와 같이 어처구니없는 일이 철조망을 두고 벌어지기도 했다.
7번국도변에서 자란 탓에 어려서부터 보아온 낯익은 바닷가 풍경이었지만, 철조망을 이용해 호박넝쿨을 키우고 때로는 빨래나 오징어를 널어 말리기도 하는 이 구조물의 의미는 무엇일까? 반공과 안보를 내세우는 허울 좋은 상징물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군사정권이 막을 내리고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이 지역은 군사작전지역이므로…’ 하는 식으로 경고 문구도 순화되고, 지역 주민들의 경제와 맞물린 요구가 거세지면서 부분적으로나마 철조망이 철거되기 시작했다.
철조망이나 초소가 생활 주변에 늘 가까이 있는 관계로 일상을 담듯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도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드러내놓고 찍을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때로는 눈치를 보며 찍어야 했고 발각되기라도 하면 곤혹을 치러야 했던 일이 어디 한두 번이었겠는가? 그래도 훗날 철조망이 걷히고 나면 ‘분단의 고통을 겪던 1980, 90년대 우리의 조국 풍경이 이러했노라’고 사진으로 말할 날을 기대하며 이어온 철조망 사진작업이 어느덧 30년 세월이 되었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은 순진한 기대와는 달리 철조망 조국 그대로다. 물론 해수욕장으로 개방되거나 상업시설이 들어선 곳 일부는 철조망이 사라지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본다면 ‘변함없음’이라 말할 수밖에 없다.
그간 교직에 있을 때 찍었던 교련, 체벌 등도 20여년이 지나면서 역사가 되었다. 고성산불, 태풍 ‘루사’ 때의 재해 장면들, 2차선 7번국도를 4차선으로 확장·직선화할 때의 장면들도 사진으로 과거를 말할 뿐이다. 아바이마을 30년 사진작업 역시 세대교체와 더불어 초창기 흔적들을 찾기가 쉽지 않다. 세상이 하도 빠르게 변하다보니 그간의 작업들은 2, 30년이 지나면서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옛 기록물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오늘의 남북 관계만큼이나 철조망 모습은 이 작업을 시작하던 1980, 90년대와 변함이 없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과거 중·고등학생들 수학여행 일정 중의 하나였던 동부전선 ‘통일전망대’를 일컬어 ‘통일절망대’라 하던 기억이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아울러 지난여름 수많은 피서객들이 마주했을 철조망은 그들에게 무슨 의미로 비쳐졌을지 의문이 앞선다. / 엄상빈
작가 약력
엄상빈(嚴湘彬)은 1954년생으로 강원대 사대에서 수학을, 상명대 예술‧디자인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했다. 1980년부터 20년간 속초고등학교 등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퇴직 후에는 상명대학교 등에서 사진을 가르쳤다. 민예총 강원지회장, 강원다큐멘터리사진사업 운영위원, 동강사진마을 운영위원 등을 역임했다.
「개발지구」(1987), 「Mt. Mckinley」(1988), 「신평리 풍경」(1995), 「고성 오늘 전」(1995), 「청호동 가는 길」(1997), 「고성산불」(1998), 「환경사진초대전」(2001), 「생명의 소리」(2006), 「학교 이야기」(2006), 「들풀 같은 사람들」(2008), 「창신동 이야기」(2015), 「강원도의 힘」(2015), 「또 하나의 경계 - 분단시대의 동해안 1986-2016」(2017) 등의 개인전과 광화문 갤러리 개관 기념초대전 「서울의 화두는 평양」(2000), 「한국다큐멘터리사진 33인전」(2004), 20세기 민중생활사 연구단 기획초대전 「어제와 오늘3」(2008), 「베이징국제사진주간2015」(2015), 「제3회 수원국제사진축제」(2016) 등 다수의 기획전 및 단체전에 참여하였다.
사진집으로는 『Mt. Mckinley』(대성, 1988),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팡』(광명, 1993), 『청호동 가는 길』(일, 1998), 『생명의 소리』(눈빛, 2006), 『학교 이야기』(눈빛, 2006), 『들풀 같은 사람들』(눈빛, 2008), 『평창 두메산골 50년』(공저)(눈빛, 2011), 『아바이마을 사람들』(눈빛, 2012), 『창신동 이야기』(눈빛, 2015), 『강원도의 힘』(눈빛, 2015), 『또 하나의 경계 - 분단시대의 동해안 1986-2016』(눈빛, 2017) 등이 있으며, 동강사진박물관, 속초시립박물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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