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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15일 ~ 2021년 12월 31일
문화가 된 엘리베이터: 우리는 어떻게 엘리베이터 숭배자가 됐나
옛날에 임경업 장군은 맨 손으로 나무를 뽑았다고 한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그렇게 할 수 없다. 엘리베이터 때문이다. 나무를 뽑으려면 하체의 힘이 좋아서 두 다리로 땅을 든든히 버텨야 하는데 매일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하체는 부실하여 나무를 뽑을 수 없는 것이다. 만일 27층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오르내리면 그는 능히 300년 묵은 회화나무도 뽑을 것이다. 그러나 나무는커녕 랜선이나 뽑는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그런 일은 무리다. 그렇다면 엘리베이터는 오늘날의 사람들을 약골로 만든 원흉인가? 여기서 사람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나타난다. 사람과 엘리베이터는 별개가 아니다. 사람 있으면 엘리베이터가 있고 엘리베이터가 있으면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깔끔하고 빠르며 문도 부드럽게 여닫히는 엘리베이터에 타면 마치 좋은 옷을 입은 듯 몸과 마음이 편하다. 반대로 벽이 헐어서 흉자국이 많고 좁은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타면 어딘가 찝찝해서 빨리 내리고 싶다. 사람과 엘리베이터가 하나기 때문이다. 사람이 도구를 만들기 시작한 이래로 도구는 계속 확장됐고, 도구에 의존하는 인간의 신체와 존재도 확장됐다. 굳이 매클루언을 떠올리지 않아도 엘리베이터는 신체의 연장이다. 연장 정도가 아니라 도시에 사는 우리들 신체의 일부다. 브루노 라투어는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근대가 자연과 문명을 분리하려고 했지만 결국은 모든 것이 뒤섞인
하이브리드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딱 한 번 근대인이었던 적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우리가 엘리베이터를 탈 때이다. 인간을 흙이 있는 지면으로부터 떼어놓아 콘크리트와 철근으로 된 구조물 높이 올려다 주는 엘리베이터야말로 근대가 하려고 했던 분리—자연과 문명의 분리, 자연과 인간의 분리 등—를 실현해주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철근 콘크리트와 유리로 빌딩을 철통 같이지어놔도자연은악착같이빌딩안으로 쳐들어 온다. 비바람의 형태로, 지진의 형태로, 나아가 소리 없이 일어나는 마모와 오염 등을 통해서 말이다. 즉 엘리베이터가 있는 빌딩이라고 해서 문명을 자연으로부터 완전히 분리시키지는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엘리베이터는 더 중요한 분리를 해낸다. 그것은 엘리베이터 있는 도시와 없는 도시, 엘리베이터가 있는 생활권과 없는 생활권의 분리다. 즉 사회 안의 위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엘리베이터에도 사회가 있을까? 당연히 있다. 상하높낮이를 다루는 기계인 만큼 엘리베이터는 태생부터 위계의 기계일 수밖에 없다. 위대한 재즈 음악가 루이 암스트롱은 뉴욕의 최고급 플라자호텔에서 연주를 했는데 연주회장은 고층에 있었다. 그가 한창 활동하던 1930년대는 인종차별이 만연하던 때였다. 그의 연주를 들으러 간 백인 손님들은 ‘검둥이’와 같은 엘리베이터를 탈 수 없다고 해서 암스트롱은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야 했다. 엘리베이터의 위계를 내가 직접 느낀 것은 1989년 중앙일보사에서 기자로 일할 때였다. 당시 중앙일보사는 지금의 삼성생명 서소문 빌딩에 있었다. 내가 일 하던 부서는 7층에 있었는데 저 위층에는
도대체 뭐가 있을까 궁금해졌다. 그래서 빌딩 맨 꼭대기의 22층을 눌렀다. 22층에 이르자 전혀 다른 세계가 나타났다. 그것은 중앙일보 사장실과는 규모와 꾸밈새가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흡사 이탈리아의 고급 빌라를 연상시키는 장식을 한 그 공간은 아마도 삼성그룹 회장실인 것 같았다. 사무실에서 쓰는 누런색의 싸구려 쓰레빠를 신고 있던 나는 황급히 내려가는 버튼을 눌러 그곳을 빠져나왔다. 오늘날이라면 그런 곳에 가는 엘리베이터의 버튼은 결코 눌러지지 않았을 것이다. 고급 호텔에서 열쇠카드를 대지 않으면 층번호를 누를 수 없듯이 말이다.
그런데 설사 층번호를 눌러서 엘리베이터가 우리를 어떤 층으로 데려간다고 해도 우리가 자기 뱃속의 내장이 어떻게 기능하는지 모르듯이 매일매일 타는 엘리베이터가 어떻게 기능하는지 모른다. 마침 오래된 엘리베이터가 철거된다는 소식을 듣고 일단 엘리베이터란 어떻게 작동하는건지 궁금증과 호기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를 문화의 차원으로 밀어넣기로 작정하고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다음과 같은 단계들을 상상했고 실행하기 시작했다. 우선 엘리베이터의 전문가를 만난다. 엘리베이터는 어디에있는누가만들었고각부분은어떻게 기능하는지 얘기를 들었다. 그 다음 엘리베이터를 분해하여 부품들을 늘어놔 봤다. 그러자 엘리베이터는 구체성을 잃고 추상적인 부분으로 변해 버렸다. 그래서 또 전문가를 모셔서 각 부분이 뭐하는 것인지 자세히 얘기를 들었다. 어느 정도 엘리베이터에 대해 파악됐다고 판단되어 일단 사진을 찍어보자고 했다. 그래서 엘리베이터의 부분들이 무슨 대단한
예술작품이나 소중한 유물이라도 되는 양 사진 찍었다. 그 다음은 그 사진들에 제목과 설명을 붙여서 비록 도면상이기는 하나 재조립해 봤다.
그러자 원래의 엘리베이터는 아니지만 다른 엘리베이터가 생겼다. 재조립된 엘리베이터에는 문화라는 파생부품이 들러붙었고 문화는 가지를 쳐서 음악과 무용으로 부풀어났다. 결국 이 모든 것들은 전시가됐는데그모습은유물이된 엘리베이터의 부품들 사이사이에 음악과 무용이 결합하여 피어나고 꺼지는 유동적인 모양새가 됐다. 쇠로 된 부품들은 설사 녹이 슬어 부식된다고 해도 최소한 2천5백년은 그 자리를 지킬테지만 음악과 무용은 움직임만 있고 물질로 된 형상이 없기 때문에 바로 사라져 버린다. 그래서 부품들 사이사이에 57가지의 부식방지제와 경화제 등의 화학제를 도포하여 음악과 무용이 들러붙게 했다. 가짓수만 많았지 사실 대단한 화학제는 아니고 기획이라는 초라한 실천일 뿐이다. 그래도 그 작은 실천 덕분에 죽을 뻔 했던 엘리베이터는 문화라는 이름을 가지고 다시 태어났다.
대한민국에 수많은 건물들이 철거될 때 그 안에 있던 엘리베이터들도 끽 소리도 못 하고 무자비하게 같이 철거되 버리는 것을 생각해 보면 전시라는 작은 실천을 통하여 엘리베이터를 보존하는 것은 신라 금관을 보존하는 것 이상으로 의미 있는 일이다. 우아한 신라 금관은 왕만 썼지만 엘리베이터는 우리들이 타고 다니던 것이기 때문이다. 인류의 탈 것이 계속계속계속 진화하여 아주아주아주 나중에 엘리베이터도 사라지고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희한한
이동기계가 나타날 때까지 이 전시자료가 남게 된다면 그때의 인간들은 고리짝 옛날에 엘리베이터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 내고는 무릎을 치게 될 것이다. 오늘날의 분수는 다 전기의 힘으로 움직이는 모터 펌프로 물을 뿜어올리지만 베르사유 궁전에 있는 분수는 전기가 없던 시절에 멀리서부터 중력의 힘을 이용해서 물이 뿜어져 나오게 했다는 걸 알고나서 그 무모함에 무릎을 치게 되듯이 말이다. 전기 모터로 움직이고 전자회로로 그 움직임을 제어하지만 엘리베이터는 여전히 무모한 기계다. 지구에 중력이 있는게 순리인데 그 순리를 거스르고 사람과 화물을 높은 데로 올려주니 말이다. 건물의 층과 층 사이는 순환이 안 되는데 엘리베이터가 전기 에너지를 소비하며 강제로 연결해주니 억지가 아닌가? 하지만 우리는 모두 엘리베이터 숭배자들이다. 엘리베이터만 숭배 하는게 아니라 도로, 교량, 빌딩 등 근대를 이루는 인프라를 몽땅 숭배하고 있지 않은가? 자신이 믿는 신에 대해 의심하지 않듯이 모두들 이런 것들을 굳게 믿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하지만 현대의 컬트는 맹목적적인 믿음을 강요하지 않는다. 엘리베이터의 부품들을 찬찬히 들여다 보고 작동원리를 알게 되면 합리성에 기초한 컬트라는 기묘한 경지에 이르게 될 것이다. 현대인은 엘리베이터 덕에 새로운 길을 얻게 된 것이다.
/ 협력 큐레이터 이영준 (기계비평가)
연계프로그램
12월 28일 오후 3시
강연, 이자연 <중력, 영성, 명상>
<붓다의 명상법>의 저자 이자연은 끌어내리는 힘인 중력과 대비되는 인간 영성(spirituality)의 승화의 힘으로 맞춰지는 우주의 균형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12월 28일, 29일 오후 5시
공연, 이윤정 <3circles>
안무가 이윤정은 사회 시스템을 작동시키는 운반과 전달의 매커니즘을 신체 조직과 관계망을 흐르는 에너지로 발생시킵니다
12월 30일
오후 3시
강연, 남성택 <건축과 엘리베이터> 건축이론가 남성택은 렘 쿨하스의 사례를 경유하며 엘리베이터과 건축의 관계를 강연합니다.
오후 4시 30분
이영준 <도슨트 퍼포먼스>
12월 30일 오후 5시
공연, 이옥경x이윤정 <즉흥/discrete circulation> 뮤지션 이옥경과 안무가 이윤정의 즉흥
신청하기: https://forms.gle/CCg8RGmovNrUdFxC6
참여작가: 송호철, 아홉, 이옥경, 이윤정
기획: 김지연, 이민지, 이영준
협력: 남성택, 신경섭, 이자연, 조혜진
그래픽 디자인: 홍은주 김형재
공간 디자인: 공간의 기호들
자문: 황재빈
도움: 김덕진, 노대겸, 민서홍, 유지환, 조양연, 정창효, 정하승
주최: d/p
주관: 새서울기획, 소환사
후원: 우리들의 낙원상가,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출처: d/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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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12:00 -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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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12:00 -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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