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토리2
2015년 11월 6일 ~ 2015년 12월 13일
“자, 알베르가 의자에서 고꾸라질 때처럼 몸에서 힘을 쫙 빼봐. 그럼 몸이 코르크 마개처럼 물 위로 떠오를 거야. 아줌마에 대한 절대적 신뢰 속에 난 몸의 힘을 다 빼고 수면으로 다시 올라왔다. (...)
내일은 깊은 웅덩이에다 던져주세요. 너 혼자선 왜 못들어가는데? 무서우니까 그렇죠! 공포가 희열로 바뀌는 묘한 경험. 더 멀리 던져주세요. 더 높은 데서 던져주세요, 또요! 또요! 매번 불안감은 용기로, 용기는 즐거움으로, 즐거움은 자부심으로, 자부심은 행복으로 바뀌었다.”
- 다니엘 페나크, <몸의 일기>, 문학과 지성사, 352p.
이 전시는 비유컨대, 떠오름(floating)에 관한 것이다. 떠 있다는 것은 가라앉으려는 무게에 대한 반작용으로, 올라가려는 힘에 의해 지탱된다. 이 힘은, 상승과 하강, 유영과 침몰, 돌아봄과 직진을 목전에 둔, 아직 ‘어쩔 줄 모르는’ 것들 사이에 존재한다. 다시 말해, 떠 있다는 것은 반쯤 잠겨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게 위아래로 팽팽하게 잡아 당겨진 ‘떠 있는 것’은, 단단한 토대를 잃고 너울처럼 요동치는, 지금 이 세계 속 개인들의 아슬아슬한 모습과 닮아있다. 한국 사회를 완강하게 지배하던 제도나 관습, 혹은 생애주기와 같은 규범들이 약화되면서, 개인들은 '부유하는 느낌'을 받는다. 기존 트랙에 닥친 위기는 오히려 이를 수호하기 위한 움직임을 추동시키지만, 동시에 거기서 이탈한 개인들은 (표류하지 않으려는) 주관적인 삶에 대한 의지를 갖기도 한다.
이 전시의 참여 작품들 역시 고정된 형태를 지니지 않고 유동적인 경계를 이루면서 마주한다. 그렇게 전시는 한 공간에 놓인 서로 다른 물성들(회화와 설치, 무빙이미지와 사운드)의 상호작용에서 비롯한, 찰나의 감각을 섬세하게 드러내고자 한다. 이 유동적인 상태는, 오늘날 미술가와 작품의 존재 방식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개인이 처한 보편적인 현실을 지시하며, 전시의 질문을 끌어낸다. 너(나)의 부력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까. 등대가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 위를 떠다니며 서로에게 보내는 ‘여기라는 신호’는, 만남에 대한 불확실성 그리고 그 속에서 끝끝내 건져 올리고 싶은, 어떤 의지의 표징이다. ‘닿을 듯 말듯’, ‘보일 듯 말듯’, ‘돌아설 듯 말듯’ 한 그 찰나의 가능성은,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에선가 쏘아 올린 불분명한 신호처럼 상존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여기 스마트폰 화면 위로 부표처럼 떠오른 접속 (불)가능한 여러 네트워크의 신호일지도, 혹은 정박지를 잃은 누군가의 긴급한 조난 신호일지도 모른다.
이제(1979)는 삶에 대한 성찰이 통과하는 수행적인 ‘그리기’를 통해서 화면 속에 ‘온기’를 불러내 왔다. 이 전시에서 작가는 인물의 순간적인 동작을 여러 장면으로 나누어 연속적인 화면을 구성한다. 개별 화면 속의 인물은 한 명이면서 동시에 여럿으로, 한국 사회 속에서 여기저기로 ‘떠밀리는’ 아주 보통의 여성을 표상한다. 여기서 그녀(들)의 반쯤 비튼 자세는 외부(혹은 타자로서 ‘관객’)의 신호에 대한 양가적인 해석을 끌어낸다. 이는 누군가의 부름에 대한 응답일 수도 있고, 오히려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을 향해 전진하려는 의지일지도 모른다.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황 속에서 인물의 내적 갈등과 그녀의 고개 앞뒤에 존재하는 ‘현실’은 관객의 위치와 시점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이제, 거울 , the mirror, oil on canvas, 80.3x53cm, 2015
이윤이(1979)는 자신의 사/공적인 기억과 이야기들을 작업의 모티브로 삼아, 사운드와 이미지, 텍스트를 혼합한 영상으로 구현해왔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영상에서 나타나는 상승과 하강의 움직임과 정서적인 상태에 대한 표현 가능성을 고민한 영상 설치를 선보인다. 누군가를 향해 손을 뻗는 행위가 반복되는 ‘무빙 이미지’는 (어딘가에) “닿을 듯 말 듯”한 절박함을 드러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를 놓지 않고, 그것에 가닿겠다는 의지적인 태도를 남겨둔다. 특히, 전시 공간에서 고조와 저조를 반복하며 울려 퍼지는 양각 나팔 소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향한 원초적인 신호로써 작품의 공감각적인 심상을 건드린다.

이윤이, 나팔 불 때 나의 이름, 설치, 단채널 비디오, 흑백, 사운드, 반복재생, OHP 필름, 썬팅지, 747(W)mm x 1328(H)mm, 2015
오종현(1981)은 선, 면과 같은 단순한 구성에 의한 최소한의 개입을 통해 공간적인 경험이 유발하는 긴장을 드러내는 장소 특정적인 설치 작업을 해왔다. ‘실, 나무 막대, 쇠막대, 투명한 낚싯줄, 연필선’ 등 매우 단순한 선적인 재료들을 이용해서 공간에 즉흥적으로 반응하는데, 특히 전시 공간에 존재하는 중력, 빛과 조명, 그림자와 같은 요소를 작품에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지나칠 수 있는, 공간을 가로지르는 “보일 듯 말 듯”한 미세한 실선의 ‘장력’은 공간에 긴장과 떨림을 조성한다. 이렇게 공간과 작업의 아슬아슬한 균형 위에서 둘 사이의 경계는 모호해지고, 작가는 공간과 작품 사이에서 섬세한 균형을 맞춘다. 작가에 있어 이때의 ‘균형’은, 양쪽의 힘이 맞닿아 공존하는 상태이며, 이는 작품과 관객이 대면하는 순간을 은유한다.

오종현, 드로잉 룸(모노크롬), 아크릴판, 실, 페인트, 체인, 연필선, 쇠막대, 가변설치, 2014
신호 둘 / 팽팽한 부력에 의지해 유영하고자 하는 나(너)의 만남은, 전시 중에 이어질 총 두 번의 만남을 통해 연결되고 다시 흩어질 예정이다.
11월 28일 (토) 오후 5시 / 혐오의 시대, ‘공감과 상호인정’ - 이현재 (여성철학자,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 연구소)
12월 12일 (토) 오후 4시 / ‘네가 나를 만지는 시간’ with 스크리닝 - 김행숙(시인), 이윤이(참여작가)
조은비 / KT&G 상상마당 갤러리(2010-2012), 아트 스페이스 풀(2013-2015)에서 큐레이터로 일했다. 미술의 맥락에서 전개되어온 ‘출판’과 관련된 젊은 작가들의 다양한 시도를 묶어보려 한 <셀 수 없는 모음>(KT&G 상상마당 갤러리, 2011), ‘잉여’라는 키워드를 통해 동시대의 세대적 이슈를 다룬 전시 <파동, The forces behind>(두산 큐레이터 워크숍 공동기획, 두산 갤러리, 2012), 거주를 둘러싼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전시 <아직 모르는 집>(아트 스페이스 풀, 2013) 등을 기획한 바 있다. 공동 번역서 <자기 조직화하기 Self-Organized>(미디어버스)가 12월 출간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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