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예술공간
2017년 4월 24일 ~ 2017년 5월 21일
포스터
1 / 6
공통의 경험
박근혜 정권의 민낯이 떠올랐을 때, 사람들은 그들의 부패와 무능을 끌어내리기 위해 본능적으로 거리로 나갔다. 그렇게 2016년 10월 29일 제1차 촛불집회가 시작되었고, 운동은 현실정치의 상황에 따라 여러 국면을 마주해야 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촛불을 꼭 쥐었고, 명확한 목적을 향해 단일한 대오와 구호를 이뤄냈다. 국민들은 국가에 위임한 모든 권력이 합리적인 이성, 상식과 관계없이 작동한다는 것을 온전히 이해했으며, 잘못 쓰인 권력과 오작동하는 법을 바꾸기 위해 하나의 의지를 드러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운동은 산발적인 시위를 넘을 수 있었고, 집단적인 힘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었다. 사람들은 지성과 이성, 합리와 상식으로 지배계급에 대항했고, 촛불의 미래를 우리의 것으로 당겨오기 위해서도 애를 썼다. 그렇게 지배계급과의 긴 싸움에서 사람들은 모종의 동일성과 공통성을 경험했던 것이다.
이 전시 <역사의 천사에 대하여>는 우리의 특별했던 시공간, 그 현실의 운동을 이끈 주체에 대한 관찰이자, 그 운동성에 주목한 전시이다. 우리가 함께 했던 그 운동이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면, 함께 성숙하고자 했다면, 그것은 무엇이었으며, 그 운동을 이끈 주체들을 어떻게 볼 수 있을 것인가. 이 전시는 지난 6개월 동안 한국 사회를 감싸고 있던 어떤 힘 혹은 에너지, 그것이 무엇을 위해 어떤 방향을 향하고 있었는가에 대한 미술적 상상이다. 전시에서 작가마다 현실로부터 당겨온 구체적 소재는 다르다. 그럼에도 우리가 함께 믿었던, 싸웠던, 분노했던, 고민했던 것들의 총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운동
현실의 운동이 진행되는 과정에서는 긍정과 기대감, 희망 못지않게 실패에 대한 불안이나 두려움도 발생한다. 이러한 이중성은 사실상 늘 함께 있을 수밖에 없는 상태이기도 하다. 우정수의 도상과 양유연의 재현에는 상반된 모습이 명시적으로 나타난다. 우정수에게 그것은 내부의 단호한 힘 혹은 에너지가 표현되는 것이라면, 양유연은 자신이 관찰한 현상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데에 더 초점을 둔다.
우정수 회화의 도상들은 그 자신의 주어진 의미를 내뿜는다. <우로보로스 #1>은 자신의 꼬리를 잡아먹으면서 새롭게 태어나는 역사, 제 스스로를 부정함으로써새롭게 생성하고 거대해지는 사회를 상징한다. 작가는 반복되지만 변화하는, 그러면 서도 무언가를 바꾸고자하는 인간의 힘을 단단한 도상을 이용하여 추상화시킨다. 이러한 에너지는 <거부한다>, <손에 쥔 것들>을 통해 우리의 구체적인 행위로 분한다. 엑스, 촛불과 피켓을 쥔 손은 기존 질서에 대한 근본적인 저항을 나타내며, 흑백의 선명한 대비를 통해서 명확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그는 이야기를 최대한 생략하고, 집단적인 운동의 힘을 단일하게 드러낸다.
양유연은 <짧은 축제>에서 우리가 본 것, 한 것, 경험한 것을 적대자의 모습과 대비시킴으로써 분노를 표출한다. 탄핵 후에도 사태 파악을 거부하며 비열한 웃음을 띤 지도자의 모습과 촛불을 든 사람들을 오버랩한 이 장면에서 적폐의 화신은 사라지지 않을 것처럼 보이며, 이를 떠받치는 촛불의 불빛도 희미해 보인다. 그렇지만 작가는 악하고 무능한 실체를 껍데기만 남은 얼굴로 묘사함으로써 그를 풍자하고 있으며, 그의 권력이 결코 그 자신의 것이 아님을 촛불을 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암시해낸다. 또한 <애드벌룬>에서 작가는 ‘긴 그림자를 쫓는 밤들이 있었다’를 통해 우리의 공통 경험을 진술한다. 그럼에도 화면의 바닥에 자리한 사람들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는 명확히 보이지 않으며, 애드벌룬도 과거처럼 혹은 미래처럼 동떨어져 있다. 과연 우리가 쫓았던 긴 그림자는 사라졌을까. 작가는 우리 인민의 힘을 믿었지만, 그 방향을 명확하게 바라볼 수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앞으로 나아간다고 믿었지만, 어떤 불안이나 두려움도 우리와 함께 있었다는 것을 부정하기 어려웠듯이 말이다.
신정균은 영상 작업 <Dust, Wind & Fire>에서 우리가 한 것, 우리가 싸웠던 것 이 과연 무엇을 향했던 것인지, 우리가 행했던 운동에 대한 복합적인 생각을 서사적으로 고찰한다. 그런데 그는 현실과는 무관해 보이는 영상, 자료와 이미지를 조합하여 되레 우리 현실을 하나의 모험담 혹은 여행담으로 치환한다. 어떤 집단 혹은 권력자가 자연현상마저 통제할 수 있다는 두려움은 우리 현실에 대한 작가의 실존적 고민의 출발점이었다. 그렇지만 이처럼 외부에서 촉발된 사건, 진실을 찾기 위해 그가 떠나는 여정은 사실상 우리의 모습이기도 했다. 그 길을 찾아나가는 과정에서 그가 끊임없이 갈등하고, 질문을 던졌던 것처럼, 우리도 ‘그곳’ 혹은 또 다른 ‘경계’를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Dust, Wind & Fire>는 그 여정 혹은 우리의 싸움이 많은 것을 변화시킨 사건이라는 것을 상기시키면서도 다른 세계를 기대하도록 한다.
범박하게 말하면, 이정우와 서평주의 작업은 이번 운동의 원인과 결과에 대한 모종의 상상을 끌어낸다. 먼저 이정우 작가는 자신이 목격했던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를 통해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키워드로 ‘공포’를 읽어낸다. 이에 작가는 <괴담시리즈, 에피소드 1. 망태할아버지를 보신 적 있으신가요?>에서 영화와 현실이라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의 공포의 문제를 다룬다. 영화제작자들은 자신이 다루는 영역에서 공포가 어떻게 생산되는지를 일러주고, 이와 함께 좀비와 귀신, 시신 등이 병치된 영화 장면은 가상세계의 공포를 명확하게 마주하게 한다. 이와 달리 작가가 추적하는 한국사회의 잠재된 공포는 명확한 그림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그가 제시하는 드로잉, 사진, 이미지 자료들은 지금 우리 현실에서 발생한 일들에 대한 기원 혹은 단초들을 제공한다. 이를 통해 작가는 우리 현실의 모순이 과거의 사건들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서평주의 <숟가락 구부리기>는 많은 날들을 촛불을 들고, 피켓을 들었던 그 손으로 대통령을 탄핵시켰지만, 이제 투표만 남아 버린 현실에 대한 직설적인 풍자이다. 집회가 거듭될수록 탄핵이라는 실질적인 성과뿐만 아니라 적폐청산과 함께 여러 사회적 의제들이 등장했다. 그러나 대선을 앞둔 지금 누구도 촛불의 정신을 계승하지는 않고 있으며, 우리의 노력도 결국 정치가들에게 위임되어 버렸다. 작가는 이 상황에서 투표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고 대항한다. 1992년부터 2012년까지 대선 투표개표방송과 유리 겔라(Uri Geller)의 초능력 영상을 배치한 <숟가락 구부리기>는 완전히 다른 것이 어떻게 유사한 환상을 드러내는가를 보여준다. 그래서
그의 이어지는 작업인 <잘라라 투표하는 그 손을>과 <새로운 독재자>가 더 단호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투표에 대한 부정은 사실상 광장정치의 가능성과 기대를 반대로 표현한 것이다.
새로운 천사
우리가 함께 보았던 역사의 천사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우리의 힘으로 만들었던 새로운 역사는 곧바로 우리 인민의 것이 되지는 못했다. 그 힘은 현실정치의 장안으로 소급되어 버렸고, 우리 운동은 새로운 세계를 그릴 집단적 동력을 잃어버린 것처럼 보인다. 벌써 우리 운동은 과거가 되어 버린 것일까. 선거가 끝나면 다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일까. 사실 우리는 단지 역사라는 숙명에 따라 움직였던 것만은 아닐 것이며, 또 우리가 함께 만들었던 것도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우리와는 다른 상황이었지만 레닌은 러시아 혁명기, “혁명은 우리를 가르치고, 인민 대중을 가르칠 것이다.”라고 했다. 물론 다른 세상을
향한 기대는 잠재성으로만 남은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우리의 이번 운동이 계급적대와 계급투쟁의 격렬한 표현이었다는 사실을 숨길 수는 없을 것이다.
전시는 이러한 현실적인 상황을 미술언어로 드러내는 것이 어떤 의의를 가질 수 있는가를 고민했다. 이에 참여 작가들은 본인의 기존 형식 혹은 형태를 유지하기도 했지만, 때로는 그것을 넘어서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물론 이것은 내용적인 부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작가들은 사회를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를 우리가 가담했던 현실로부터 끌어내고자 했다. 물론 작품을 통해 드러난 현실이 아름다울 수만도 없고, 그 표현 또한 애정으로만 넘쳐나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 주체들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양면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그 모든 것은 사실 우리들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결국 이 전시는 우리가 함께 싸웠던 공통의 경험으로부터 같지만 다른 것을 드러내고, 또 다르지만 같은 것을 드러내고자하는 시도이다.
글. 신양희 아마도예술공간 큐레이터
아마도예술공간에서 개최하는 <역사의 천사에 대하여>는 2017년 4월 24일부터 2017년 5월 21일까지 진행되며 전시에는 서평주, 신정균, 양유연, 우정수, 이정우 작가의 작품이 소개된다.
오프닝: 2017년 4월 24일 (월), 저녁 6시, 아마도예술공간 1층 Bar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출처 : 아마도예술공간
* 아트바바에 등록된 모든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
운영시간
월요일 휴관
화요일 11:00 - 18:00
수요일 11:00 - 18:00
목요일 11:00 - 18:00
금요일 11:00 - 18:00
토요일 11:00 - 18:00
일요일 11:00 - 18:00
휴관: 월요일, 6월 3일
모든 프로그램은 주최측의 사정으로 변경될 수 있으니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를 확인하시기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