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프로젝트 서울
2025년 6월 10일 ~ 2025년 6월 21일
이소연과 영원의 드로잉은 중심이 아닌 모서리를 기준으로 화면을 구성한다. 이소연은 모서리 바깥을, 영원은 모서리 안쪽을 향해 선을 긋는다. 중심이 없는 이들의 드로잉은 화면 전체를 사용하며, 가장자리까지 시선이 닿게 한다. 이러한 드로잉은 감각과 시간이 축적되는 하나의 방식이며, 이는 모든 제스처를 화면 위에 그대로 남기고자 하는 태도와 맞물려 있다. 이 태도는 두 작가에게 다르게 작동된다. 이소연에게는 애써 흐리지 않고 모든 흔적을 드러내는 일이며, 드로잉을 몸과 표면의 접촉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게 한다. 영원에게는 움직임이 겹쳐진 흔적을 통해 중첩된 시간을 한눈에 바라보는 일이며, 감각으로 매개되는 몸과 세계, 화면 사이의 관계를 드러내는 조형적 실천으로 이어진다.
이소연에게 드로잉은 표면에 접촉의 흔적을 남기는 행위이며, 선은 눈과 손끝의 궤적이다. 틀이 없는 천은 화면을 하나의 표면으로 느끼게 하고, 손으로 팽팽히 당겨도 생기는 주름으로 선은 끊기며 그어진다. 어깨는 바닥을 향해 수직으로 압력을 가하고, 두 장을 포개어 그은 선은 아래 장에 옅은 흔적을 남긴다. 문질러 마모된 표면에서는 섬유가 부드럽게 일어나고, 색은 체온을 닮은 온기를 띤다. 선들이 모여 응축되며 다층적인 접촉의 풍경이 드러난다. 화면을 접촉면으로 다루는 일은 표면의 물질성을 인식하게 하고, 이는 그 표면이 가진 모서리의 경계를 횡단하는 일로 이어진다. 장지와 천을 가로지르는 큰 원은 모서리를 넘으며 네 개의 곡선이 된다. 겹친 두 장을 분리해 양 벽에 배치할 때, 작업은 ‘드로잉 설치’가 되고, 원은 열린 공간이 되며 주변과 융화된다. 이소연이 다루는 작업의 장은 화면의 안도 밖도 아닌, 유연하고 넓은 ‘사이’ 공간이다. 드로잉 설치는 감각적 차원의 사이공간을 물리적 공간 속에 구현하며, 시각을 넘어 더욱 가까이 관객과 상호작용한다.
영원에게 산책과 드로잉은 흡수와 발산이라는 상반된 방향의 몰입이다. 이는 몸이라는 연속성 속에서 순환하며 영향을 주고받는 두 가지 감각적 수행이다. 산책은 자신을 둘러싼 시공간과 맞닿으며 열린 감각으로 세계를 흡수하는 일이다. 미묘한 차이와 변화를 발견하며 한걸음 옮길 때마다 모든 것은 다가오고 멀어진다. 팔과 손목을 축으로 빠르게 둥근 선들을 긋는다. 순간의 감각과 감정이 화면과 만나 선의 강도와 속도로 드러난다. 겹쳐진 선 속에서 나타난 빈 공간을 선으로 분할한다. 면에 조심스레 색을 칠할 때 칠하지 않은 면의 형태가 함께 드러난다. 선과 빈 공간, 색이 채워진 면과 비워진 면을 조율하며 화면을 구성한다. 그날의 산책은 화면 속에 투과되어 표면에 공감각적 심상의 풍경을 남긴다. 날씨를 느끼듯 생생한 색면은 햇빛이 일렁이는 유리조각 같다. 화면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조형하는 일은, 다시 세계와 적극적으로 공명할 수 있도록 한다. 이러한 순환 속에 있는 영원의 드로잉은 전시장이라는 다른 시공간, 그리고 관객과 상호작용하며 확장된다.
이소연과 영원의 드로잉은 선으로부터 출발하여 어떤 화면이 나타날지 기대하며 빠르게 진행된다. 완성된 드로잉을 보고 의미를 추측하고 해석하며 그것으로부터 다시 나아간다. 드로잉을 통해 결과를 정해두지 않고 새로운 화면을 발견하는 일은, 목적지 없이 걷는 산책과 닮아 있다.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하며, 그 안에서 세계를 새롭게 감각하고 관찰한다. 그 끝에 예기치 않은 가능성과 마주하게 된다. 산책은 예측 불가능하고 계산 불가능한 일들을 탐구할 수 있게 하고, 드로잉은 도래하지 않은 발상이나 형상을 발견할 수 있게 한다. 드로잉은 수단인 동시에 목적이며, 산책인 동시에 목적지이다.1
글 황유진
1 리베카 솔닛, 『길 잃기 안내서』, 『걷기의 인문학』
참여작가: 영원 이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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