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당미술관
2016년 7월 9일 ~ 2016년 8월 31일
시간의 교차_정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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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사진 문화의 복원을 꿈꾸며
1 군산을 찾는 사람이 부쩍 늘고 있습니다.
월명동 초원사진관 앞에서 만난 젊은 여행자는 “인터넷으로 접한 군산 풍광이 궁금해 찾았다”고 말합니다. 내항의 부잔교 앞에서 마주친 한 쌍의 연인은 “영화 타짜의 촬영 장소를 보러 왔다”고 말합니다. 이성당의 빵이나 고추자장이 궁금해 1시간 이상 줄 선 사람도 있었고, 일제시대의 건축에 흥미를 느껴 찾아온 이들도 마주칩니다.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는데, 하나는 이들이 군산이 지닌 시간의 무게에 끌렸다는 점이고, 그들의 손에 하나같이 카메라가 들려 있다는 점입니다. 이들은 끊임없이 쇠락한 도심 골목과 기찻길과 항구에 카메라를 향하고 셔터를 눌러대며 현재에 스민 과거의 모습을 다시금 봉인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현재의 모습인지 과거의 모습인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습니다.
2. 우리가 쉽게 지나치는 사실이 있습니다.
바로 군산이 대한민국에서 상당히 중요한 예술적 중요성을 가진 도시이자 사진과 특히 연관이 깊은 “카메라의 공간”이었음을 말입니다. 이 도시가 생겨난 이래 사진은 도시의 일상이자 평범한 시민들의 소중한 기록의 도구였습니다. 더불어 적잖은 사진작가들이 이곳 골목골목에서 꿈을 키우고 무수히 많은 실험을 진행해왔습니다. 바로 도시와 이곳을 거친 많은 예술가들은 그 사실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가 서 있는 영화동이 바로 그렇습니다. 이곳은 군산이라는 항구가 처음 문을 연 장소이자 개화의 상징인 장소입니다. 우리나라의 모더니티가 시작된 장소이기에 더욱 더 특별합니다.
3. 아직도 살아 있는 군산의 사진관들은 이곳의 영화를 증명하는 훈장과도 같습니다.
특히 영화동 끝자락 주유소 앞 ‘군일유리’가 있는 건물은 1930년대 ‘대야사진관’이 있던 장소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8월의 크리스마스’를 촬영한 한석규의 사진관도 바로 이곳에 있었습니다. 해방 이후에는 미군이 주둔한 탓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항구이기 때문에 외국인들이 카메라를 들고 이곳을 찾았습니다. 동양의 낯선 항구도시를 기록하는 데 있어 사진만한 물건이 또 있을까요? 그러다보니 사진문화도 여타 도시보다 훨씬 더 일찍, 그리고 더 깊숙이 자리했습니다. 작가들의 면면도 깊습니다. 해방이후 더 큰 도시에서 내려온 홍건직, 채원석 선생들이 군산에서 본격적인 한국인 작가의 서막을 알렸고, 한국전쟁 중이던 1952년 사진모임 ‘군산사우회(群山寫友會)’가 발복하기도 했습니다. 이어 신철균, 김학수, 문길수 선생 등이 가세해 군산의 사진 문화를 본격화했습니다. 하지만 아쉬움도 없지 않습니다. 한때 화려했던 군산의 현대성은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이제는 추억의 앨범 속에 갇힌 옛 이야기가 됐을 뿐입니다.
4. 이 땅에 ‘모더니티’가 본격 정착한지 100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우리가 영화동에 주목하는 이유는 복잡하고 어려운 근대 역사가 배어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곳에 외세가 있었고, 군사정부가 있었고, 혹은 거대한 공장이 있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 구석구석 어디라도 영화동의 역사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저 군산의 역사와 서해안의 역사, 나아가 한반도의 역사를 가장 명료하게 드러내는 중요한 상징이자 실체로서의 영화동의 존재감에 주목하고 그 가능성을 다시 한번 살려보고자 합니다.
/ 2016년 7월 영화동 사진전 운영위원회
[기획자의 변] 모두가 알지만 모두가 무관심했던 영화동 이야기
“영화동에서 발견한 미학적 언어, 그리고 긍정의 이미지”
< 군산-영화동> 展은 이당미술관이 있는 영화동에 대한 예술적 이해이자 사진을 통한 해석입니다. 특별히 이번 전시는 군산 도시재생센타와 협력관계 아래 진행되었습니다. 이는 도시의 문화적 재생이라는 관점과 요구에서 시작하는 것이지만, 이러한 프로젝트에서 예술가의 시선도 필요함을 보여주는 사례일 것입니다.
널리 알려진 대로 군산은 일제강점기 제국주의 자원탈취의 1번 도시로 숱한 곡절을 겪었습니다. 특히 영화동은 월명동과 함께 식민통치를 위해 전략적으로 조성된 곳입니다. 근대화 초기는 일본인의 주요 거점 공간으로, 또 해방과 더불어 이어진 군정기부터 1980년대까지는 미군 군대의 유락과 유흥의 장소로 쓰인 영화동은 그만큼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역사적 맥락뿐만 아니라 삶의 현실이 누적되거나 지체된 장소인 이곳은 이번 프로젝트의 중심 텍스트였습니다.
예술로서의 사진은 기록이자 해석의 작업입니다. 공간은 주체와 타자가 만나는 곳이자 역사와 현실이 부딪치거나 어그러지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같은 매체와 공간의 특성 속에서 추진된 이번 작업에는 9명의 작가가 전시장 전시와 거리전이라는 두 가지 방식으로 참여했습니다.
전반적으로 참여 작가들은 젠트리피케이션 과정에 있는 영화동의 모습 속에서 변화하는 것과 남겨진 것이 혼재된 상황에 주목했습니다. 이 가운데 찾아야 할 것은 아마도 낡은 근대의 이미지가 고급한 현대적 이미지로 탈바꿈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부침의 속에서 끊임없이 외곽으로 내몰린 비주류들의 상처를 걷어낼 삶의 실재들일 것입니다.
작가들의 작업은 거리와 공간에 주목해 기록한 작업-양지영, 시간의 흐름 속 현상하는 도시와 공간의 의미를 탐색한-김성윤, 신도시와 구도심의 대비 속에 도시를 읽어보는-최창재, 도시의 역사와 함께 살아온 사람들에 주목하여 작업한 박애란, 사회역사적인 메타의식보다는 한 사람의 예술가이자 자연인 감각으로 도시와 공간을 드러낸 김영경, 역시 이 곳을 특별한 해석 없이 담담한 영상과 스틸컷으로 구성한 정상용, 현직 사회학자의 관점으로 도시를 포착한 민경배, 공간의 낡은 간판과 비슬로건적 밤 풍경을 담아낸 신석호, 그리고 군산 도시이해를 식민지 근대역사와는 좀 다른 결에서 바다를 끼고 살아온 일상의 생산과 산업의 현장을 기록한 전영석, 등의 작업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사회적 과정에 결합하거나 도시연구와 연관된 문화와 예술이 곧바로 도시의 미래 비젼을 제시하거나 정체를 바꿔 놓을 수는 없습니다. 이번 전시는 자본이나 경제에 종속된 문화패러다임의 한계를 극복하고 지역적 삶의 특수성에 기반을 둔 긍정적 요소를 찾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그것을 미학적 언어와 연결지어 다른 도시연구나 지역연구에 함께하거나 경합할 근거를 찾고자 했습니다.
길지 않은 작업이었지만 치열했던 작가들의 시선 속에서 몇몇 단초들은 찾아졌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어려운 일정 속에 작업해 주신 작가들과 사진촬영을 넉넉한 마음으로 포용해 주신 영화동 및 군산 시민 여러분께 감사를 전합니다.
/ 2016년 7월 영화동 사진전 디렉터 신석호

신석호

영화동 방범창 #1

군산 CD053-01_최창재

그저 지나간다 3_민경배
오픈기념 특강 : 7월 9일 오후 4시
- 군산의 도시재생과 외부인의 시선 (민경배 교수)
- 도시의 문화적 재생과 예술 (신석호 작가)
- 근대 문화재로서의 가능성을 지닌 군산의 방범창 (정호재)
총괄기획 : 이당미술관
디렉터 : 신석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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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시간
월요일 휴관
화요일 휴관
수요일 10:00 - 18:00
목요일 10:00 - 18:00
금요일 10:00 - 18:00
토요일 10:00 - 18:00
일요일 10:00 - 18:00
휴관: 월요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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